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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먼타임스
린 마굴리스는 기존 생물학의 단편적 해석에서 벗어나 지구상에 현존하는 세포들의 다양한 양상과 그 내부구조를 관찰한다. 그 결과 그는 세포들이 다른 생명체 안에 자리 잡고 생활하면서부터 각자 고유한 기능을 통해 나름대로 더욱 효율적으로 생명활동을 영위하게 된다는 ‘세포 안 공생의 관계(endosymb iosis)’를 입증한다. 진화의 동인이 약육강식이 아니고 ‘공생’이라는 그의 주장은 당시 정통 과학자들로부터 조롱당한다.

그러나 20여 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세포 내 공생’은 고도로 발달한 생명 전략이며 자연의 질서임이 확인돼 교과서에 실리게 된다. 이처럼 유전학을 한 단계 끌어올린 매클린톡과 저명한 생물학자 린 마굴리스의 업적이 뒤늦게 입증된 것은, 정복과 통제를 중시하는 기존 남성학자의 근대과학론 때문이다.

과학이란 뛰어난 과학자가 발견한 사실을 절대 진리로 받아들여 무조건 숭배하고 따르는 것이 아니다. 어떠한 권위나 선입견에도 굴하지 않고 늘 깨어 있는 마음으로 세상을 다시 보는 것이다. 그러나 기존 과학은 문명/자연, 사실/가치, 이성/감성 등 사물을 우월한 쪽과 열등한 쪽으로 분류하는 이분법에 의해 지탱되어 왔다. 그 결과 과학은 절대적인 객관성을 확보하기 위해 자연이 갖는 감성과 순환의 원리를 무시해왔고 인류는 현재 생태계 파괴와 자원 고갈에 따른 심각한 환경위기에 처해 있다.

지난 4월18일 ‘과학의 경계를 넘어서’라는 주제로 열린 전국여성과학기술인지원센터 세미나에 참가한 여성 과학인들은 근대과학의 이분법 논리를 극복해야 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 했다.

발표자로 나선 김재희 페미니스트 저널 ‘이프’ 편집인은 “근대과학은 자연현상의 평균특성에서 벗어나는 개체를 통제하거나 축출했던 반면 여성주의 과학은 개체 사이의 차이에 관심을 갖는다”며 “생명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탈근대적인 ‘생태여성주의’가 우리 삶을 자연친화적으로 변형시킬 것”이라고 설명했다.

근대과학론의 이분법이 현 과학계에도 큰 오류를 발생시키고 있는 예는 황우석 사태에서도 잘 드러난다. 줄기세포를 만들어내는 것까지는 가능할지라도 그것이 인체 안에서 어떻게 분화할지는 전혀 알 수 없고, 암세포로 분화할 가능성이 더 클 수도 있다는 위험은 간과됐다.

이에 대해 최무영 서울대 물리학과 교수는 “생명 현상은 복잡계 현상이기 때문에 우리가 크게 받을 수 있는 환경 영향을 현실적으로 제어할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여성 과학자들 사이에서는 근대과학의 이분법 논리를 극복하려는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전길자 전국여성과학기술인지원센터 원장은 “여성 과학기술인들이 참여하는 세미나에서 과학사 속의 여성을 다루고 있으며, 현재 역사 속의 여성 과학자를 발굴하는 기획을 진행하고 있다”며 “그동안 남성 과학자들이 발견하지 못한 가치를 끌어냈지만 표출되지 못했던 여성과학 분야를 공론화하는 노력에 심혈을 기울일 것”이라고 말했다.

생명을 실험 대상이 아닌 정신적 교감의 대상으로 봤던 바바라 매클린톡은 “종양을 이해하려면 나 자신이 먼저 종양이 되어야 한다”는 말을 남겼다. 정복이 아닌 생명을 위한 과학을 지향한 매클린톡의 뒤를 이어, 과학사 전반의 패러다임에 도전하는 여성 과학자들의 노력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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