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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수정 : 28일 오전 9시 15분]

▲ 통일교가 만든 '트루월드그룹'이 미국내 일식집에 생선을 공급하는 '큰손'으로 알려졌다.
ⓒ 윤새라
문선명 목사가 창설한 통일교가 '사이비 종교'라는 비난을 받으며 미국 사회에 떠들썩하게 회자됐던 것도 어느새 20~30년 전 일이다. 1980년대 이후 태어난 미국 청년들은 통일교를 잘 모른다. 그런 통일교가 최근 미국 언론의 전면에 등장했다.

지난 4월 12일 <시카고 트리뷴>지는 1면 머리기사로 '특별 취재: 초밥과 문 목사'(Sushi and Rev. Moon)를 실었다. 이 기사는 바로 전국적 관심을 끌어 그날 저녁 공영 라디오 방송(NPR)에도 보도됐다.

<시카고 트리뷴> "초밥 수익금 일부, 통일교로" 보도

세 명의 기자가 투입돼 탐사보도로 쓰여진 <시카고 트리뷴> 기사는 여태껏 일반인들이 잘 알지 못하고 있던 통일교와 미국 내 일식집 간의 관계를 파헤치고 있다. 기사를 요약하면 이렇다.

30여년 전 문 목사는 장차 생선 장사가 크게 이익을 남기리라 보고 '트루월드그룹'(True World Group)이란 수산물 취급 회사를 차린다. 그의 예상은 적중했다. 30여년 사이에 미국의 입맛은 급격히 변했고, 그 사이에 생선초밥을 비롯한 일식음식은 고급 음식의 대명사가 됐다.

'트루월드그룹'은 배를 만들고 생선을 잡는 것은 물론, 생선 유통·소매업까지 손을 대고 있다. 생산부터 공급까지 수산업의 전분야를 아우르는 셈이다. 요즘처럼 일본 음식이 인기를 누리는 때 '트루월드그룹'의 사업이 호황을 누림은 불문가지다.

<시카고 트리뷴>의 통계에 따르면, 미국 전역에 걸쳐 매일 '트루월드그룹'의 생선을 공급받는 음식점이 7천개에 이른다. 또한 시카고 일식집들의 대다수도 '트루월드그룹'과 거래한다고 알려졌다.

그러나 <시카고 트리뷴>이 주목한 문제는 딴 데 있다. '트루월드그룹'이 올리는 수익금 일부가 문선명 목사의 통일교로 넘어간다는 것이다. 즉, 비싼 초밥을 사먹는 미국인들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통일교에 돈을 내는 사태가 발생하고 있다고 <시카고 트리뷴>지는 지적한다.

"해산물을 즐기는 사람들 중 알고 그러는 사람은 거의 없겠지만 입에서 살살 녹는 참치회나 장어구이를 먹을 때 그들은 바로 문 목사의 종교 활동을 간접적으로 돕고 있다."

그래서? 초밥을 먹지 말라고?

▲ '다시는 초밥을 먹지 않겠다'고 선언한 에릭 조른의 블로그.
<시카고 트리뷴>의 기사는 당장 독자들의 논쟁을 촉발했다. 논쟁의 초점은 역시 통일교로, 과연 이 기사가 '통일교 박해' 성격의 글이냐 아니냐로 모아졌다.

통일교가 미국 사회에서는 컬트 및 극우보수로 통용되고 있는 만큼 정치·문화적으로 통일교를 싫어하는 사람들은 통일교의 생선장사를 알게되자 더이상 일본 음식을 먹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대표적 예가 <시카고 트리뷴>에 공식 블로그를 운영하는 에릭 조른이다. "드디어 초밥을 시키지 않아도 되는 좋은 이유가 생겼다!"고 운을 뗀 조른은 자신의 입장을 블로그에서 다음과 같이 밝혔다. '문 목사의 어젠다와 목표는 내 의견과 너무나 달라서 내 돈을 그에게 주고 싶지 않다"며 통일교의 극보수성을 조목조목 지적한 후 발언 수위를 더 높인다.

"우리들은 소비자로서 매일 투표를 한다. 우리 돈을 어디에 쓰느냐에 따라 어느 회사를 지지하고 어떤 사주를 지지하는지 투표하는 셈이고, 또 그럼으로써 그들이 추구하고 대표하는 가치를 지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당신들이 먹고 구입하는 행위가 아무런 차이를 만들지 않는 듯 가장하지 말라."

통일교를 지지하지 않는다면 초밥을 '보이콧' 하라고 이해될 수 있는 이같은 암묵적 독려에 우려를 나타내는 독자들도 있다.

"난 초밥을 자주 먹지는 않지만 이 이야기를 객관적으로 보려한다. 한 예로 우리가 소비하는 석유 대부분이 여성들에게 운전할 자유도 주지 않는 나라에서 수입된다. 그리고 문 목사의 종교를 난 지지하지 않지만 주류 종교도 더 나을 건 없다. 주류 종교들은 세계 1·2차 대전 때 군대를 축복해줬고 그럼으로써 수백 만 명의 죽음을 야기했다. 따라서 난 앞으로도 가끔은 초밥을 먹을 거다."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다. 보아하니 통일교가 법적인 수입원을 찾은 것 같은데. 카톨릭 교회는 부동산에 의존한다든지 하는 식으로, 많은 종교단체들이 그렇게 한다. 내가 생각하기에 문제는 그들이 그 돈으로 뭘 하느냐, 즉 인간을 위해 긍정적인 일을 하는가 아니면 부정적 일을 하느냐다."


온라인에서는 와글와글, 오프라인에서는 조용

▲ 지난 2001년 7월 문선명 목사가 국회 의원회관에서 연설하고있다.
ⓒ 연합뉴스
그럼 오프라인에서는 이 기사가 어떤 파장을 몰고 왔을까? <시카고 트리뷴> 기사에 통일교가 공급하는 생선을 취급한다고 이름이 공개된 일식집 한 군데와 연락을 취해봤다.

음식점을 직접 경영하는 주인은 "기사를 보고 몹시 충격을 받았다"면서 "절대로 가게 이름을 밝히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자신의 말이 와전된 부분도 있을 뿐만 아니라 "트루월드그룹의 생선 공급 점유율이 6~7년 전에 비해 많이 떨어졌다고 분명히 말했는데도, 기사를 부각시키기 위해 그 사실을 덮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이 기사가 나간 후 고객들에게 불평을 듣거나 고객 수가 줄었는지 묻자 "전혀 그렇지 않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항의 전화 일절 없었어요, 그 기사 얘기가 나오면 손님들은 웃어 넘기던데요, 단골 손님도 전혀 줄지 않았구요"라고 답했다. 가게 영업에는 전혀 지장이 없었다니, 초밥과 문 목사의 '은밀한 관계'를 폭로한 기사가 일식 업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지는 않은 듯하다.

그보다는 이번 보도로 미국 언론이 통일교에 대해 가진 '비호감'의 단면이 불거졌다는 문화적 해석이 더 유효할 듯싶다. 이번 기사를 보면 장장 3페이지에 걸쳐 게재된 심층보도인 만큼 통일교의 전력까지 고구마 줄기 캐듯 엮여 나왔다.

21세기 초엽, 미국에서 건재한 통일교

사실 미국에서 통일교의 과거는 화려하지만 자랑스러운 것이 못 된다.

거대한 합동 결혼식을 주최하고 젊은 신자들을 공항에 내보내 꽃을 팔게 했던 통일교는 1970년대와 1980년대를 산 미국인들에게 잊지 못할 인상을 남겼다. 미국 언론은 통일교를 컬트로 대했고,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그런 부정적 이미지는 일반 여론에도 악영향을 끼쳤다. 문선명 목사는 탈세 혐의로 1980년대 중반 13개월간 옥살이까지 했다.

이후 통일교는 언론에 잘 드러나지 않는 저공비행을 계속해왔다. 다른 한편으로는 보수적 공화당에 꾸준히 거금을 기부해 정치권과 관계를 개선하고 스스로 <워싱턴 타임스>라는 보수신문을 창간해 운영하고 있다. 1980년대만큼 눈에 띄이지는 않으나 영향력은 절대로 감소하지 않았다는 것이 통일교에 대한 미국 언론의 중평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에 보도된 초밥과 문 목사의 '은밀한 관계'. 그리고 그에 나타난 비판적 태도는 통일교에 대한 미국 언론의 기본 정서가 많이 바뀌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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