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철거를 앞둔 상암 633번지 앞. 보상을 앞두고 가옥주와 세입자들 사이에는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고 있다.
철거를 앞둔 상암 633번지 앞. 보상을 앞두고 가옥주와 세입자들 사이에는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박수원
'그린벨트 33년, 쓰레기장 18년, 저탄장 수십 년 강제수용 웬일인가!' '우리의 생존권과 재산권은 내가 지킨다.'

SH공사(옛 도시개발공사)가 지은 월드컵파크 7단지 아파트와 큰길 하나를 두고 있는 상암동 633번지 일대(9만 9000여평, 상암 2지구)는 요즘 뒤숭숭하다. 철거를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26일 오후 이곳을 찾았을 때 처음 접한 문구는 개발지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반대 구호였다.

SH공사에 따르면 이 곳의 세입자와 가옥주는 모두 430가구. 5월 중순부터 감정평가를 진행해 토지와 건물 등의 보상가를 산정하고, 개별 계약을 체결할 계획이다. 9월 정도가 돼야 철거가 진행될 수 있다.

SH공사는 수십 년 된 판잣집들을 걷어내고 2630세대(분양 876세대, 임대 1754세대)의 아파트를 건설할 예정이다.

주민들은 사이에는 기대와 우려가 공존하고 있다. 대한석탄공사 수색사무소 앞에서 가게를 운영하는 이 아무개(69·여)씨는 70년 평생을 여기서 살았다.

"어디에 팔고 나갈 데도 없고 해서 그냥 살았어. 그린벨트, 군사시설, 거기다 난지도. 그 때는 이것 저것 묶여 있어서 팔리지도 않았고, 팔아도 그 돈으로 어디 나가서 살 수도 없었어. 이것 저것 못하게 하는 게 너무 많아서 개집도 맘대로 지을 수 없었다니까. 난지도 있을 때, 득실 거리는 파리와 모기 때문에 '파리구 모기동'이라고 불렀어. 먼지가 너무 많아서 전깃줄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니까. 무척 어렵게 살았지."

이씨는 10년 넘게 누워있는 남편과 함께 살고 있다. 조그만 가게를 가지고 있어 그나마 보상에 대한 기대감이 높았다.

"난지도에 월드컵 경기장이 생기고, 옆에 시설(DMC)이 들어온다고 해서 물론 많이 좋아졌지. 이 정도면 아주 깨끗하고 살 만해 진거야. 이제 제대로 보상을 해줘야 두 노인네 두 다리 뻗고 살 텐데. 모르겠어. 이거 보상 받아서 아파트 들어갈 수나 있을지."

물론 걱정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보상 받아서 좋은 집 들어가도 걱정이 없는 건 아니야. 누가 늙은이들 먹여주나. 어차피 가게 정리하면 다른 일 찾아봐야 하는 데 그것도 걱정이야. 어디서 70 노인네 써주겠어."

개발 기대감이 높아지면서 외지인 유입이 급격하게 증가했다는 게 이 지역 통장의 설명이다.

"외지인이 많이 들어와 있지요. 사업 등록도 일부러 해놓고, 집도 분할해놓고 살고 있고. 집들이 많이 늘었어요. 어디나 마찬가지 아닙니까? 얼마나 보상해 줄지는 아직 미지수입니다. 20~30평 가지고 공시지가 500만원 남짓 기준으로 보상을 받으면 아파트에 들어가기 쉽지 않을 겁니다."

보상금만으론 이사갈 집 구할 수도 없고...

30년이 넘는 상암 2지구 집 뒤로 월드컵 파크 아파트 7단지가 보인다.
30년이 넘는 상암 2지구 집 뒤로 월드컵 파크 아파트 7단지가 보인다. ⓒ 오마이뉴스 박수원
"이사 갈 집 구했어?"
"구하긴. 요즘 잠이 안 와. 돈이 있어야지. 개발 때문에 집값이 너무 많이 올라서 6000~7000만원 정도는 있어야 근처에 집을 구한다는데."
"1억원 정도는 아주 우습군 그래."
"옛날에 잘 해서 땅이라도 좀 차지하고 있는 건데."
"그러게. 남들 돈 벌 때 뭐했나 몰라."


이날 오후 동네 텃밭에서 쑥을 캐고 있던 한아무개(72·여)씨와 김아무개(70·여)씨 입에서는 탄식이 흘러나왔다. 이들은 철거를 앞둔 상암 633번지에 살고 있는 세입자들로 요즘 도통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1000만원도 안되는 전세금에 얼마 되지 않는 이주비를 받아 삶의 터전을 어떻게 마련할지 막막할 뿐이다.

일당 2만원짜리 일을 하며 혼자 살고 있는 김씨는 동사무소에서 알선해 주는 일거리를 받아 한 달에 30만원을 벌어서 겨우 먹고 살고 있다. 한씨 역시 혼자다. 그는 "조금 더 젊었을 때 쫓겨났어도 이렇게 힘들지는 않았을 것"이라면서 "내 처지를 생각하면 가만히 TV를 보고 있다가도 눈물이 어느새 주루루 흘러내린다"고 말했다.

자기 소유로 된 땅 한 평 없이 세입자로 살아온 이들에게 상암동 개발은 달갑지 않은 일이다. 세입자들에게는 임대아파트가 주어지지만, 당장 이주할 공간이 없는 이들은 한두 달 앞일이 걱정이다. 김씨는 체념한 듯 이렇게 말했다.

"개발, 그거 다 돈 있는 사람 이야기지. TV보니까, 돈이 궤짝으로 왔다 갔다 한다는 데 누가 그런 박스 하나만 안 던져 주나."

사면 무조건 오른다?

"한 달 사이에 1억원 이상 올랐어요. 지금 사시면 후회는 안 하실 겁니다."

마포구 상암동 2단지에 있는 B부동산중개업소 김아무개 대표는 가격을 문의하는 손님들에게 '적극적 구입'을 권했다.

"상암 4단지 32평을 지난주에 계약하는데 5억7000만원에 시작을 했다가 갑자기 다시 전화를 해서는 3000만원을 올려 받아달라는 거예요. 맨 처음에는 황당했죠. 그러면서 더 안 주면 안 팔겠다고 배짱을 부리더군요. 결국 6억2000만원에 최종 계약했다니까요."

상암동에서 최근 가장 인기가 있는 곳은 4단지. 10월 입주를 앞두고 있는 32평 로얄층은 7억원을 호가하고 있다. 분양가가 2억7000만원선임을 감안할 때 2.5배나 뛰어올랐다.

상암 6단지의 H공인중개업소의 김아무개 대표도 '이 곳이 앞으로 유망한 지역'이라는 데 이의를 달지 않는다.

"방송국과 IT 회사들 들어오죠. 백화점과 편의시설 들어오죠. 오를 수 있는 조건은 아직도 많아요."

상암이 이처럼 높은 호가를 구가하는 이유로 그는 상암DMC를 꼽는다. 공사가 지연되고는 있지만, 언젠가는 완공된다는 믿음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기자가 만난 공인중개업자들은 DMC가 투자의 가장 핵심 포인트라고 언급했다.

이 곳에서는 딱지 거래도 공공연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철거를 앞둔 상암 2지구의 경우 딱지 가격이 1억2000만~1억8000만원 사이에 거래되고 있다는 게 중개업소의 설명이다.

이날 중개업소에서 만난 40대는 물량을 찾다가 딱지에도 관심을 보였다.

"그거 요즘 위험 부담이 많다고 하던데…. 그래도 확실한 거 있으면 연락주세요."

상암 아파트 단지에서 만난 공인중개사들은 이구동성으로 강남과 목동 지역에서 찾아온 투자자들이 이 곳을 선호한다고 설명했다. 강남 가격이 오르면, 그 다음은 목동이고, 그 여파가 다시 상암으로 이어진다고 것이다. 상암이 강남 영향권에 있다는 이야기다.

발전 가능성을 찾는 투자자들에게 상암 아파트들은 여전히 매력적인 투자처다. 33평의 가격을 8억~9억원까지 높여 잡고 있는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다.

강북 속의 강남을 표방하고 있는 상암아파트 단지에 상암 DMC 사업의 지연은 오히려 악재가 아니라 호재로 작용하고 있는 셈이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모든 시민은 기자다'라는 오마이뉴스 정신을 신뢰합니다. 2000년 3월, 오마이뉴스에 입사해 취재부와 편집부에서 일했습니다. 2022년 4월부터 뉴스본부장을 맡고 있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