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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별난여자 별난남자> (하)<하늘이시여>- 요즘 가족 드라마에는 '가족'대신 '엽기'만이 가득하다.
(상)<별난여자 별난남자> (하)<하늘이시여>- 요즘 가족 드라마에는 '가족'대신 '엽기'만이 가득하다. ⓒ KBS/SBS
일일극이나 주말극의 기획의도라는 것도 알고 보면 다 거기서 거기다. 혈연주의의 전통이 뿌리 깊은 우리 문화에서, 가족은 언제나 공동체의 마지막 정신적 보루처럼 묘사된다. 핵가족이 보편화된 시대에 오히려 트렌드를 선도하는 드라마에서 대가족들이 밥 먹듯이 등장하고, 고리타분할 정도로 공동체의 회복을 부르짖는 모습은 진부해보일 수도 있지만, 정작 사람들간 정이 살아 있고, 현실의 부족함을 채워주는 드라마의 낭만적 가족주의가, 시청자들에게 위안과 대리만족을 안겨주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이런 가족주의 전통이 왜곡되거나, 비정상적인 갈등구조만 부각시킨 드라마들이 늘어나고 있어서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현대 사회에서 가족의 참다운 의미와 공동체의 정을 되짚어 보자는 기획의도는 간 데 없고, 오히려 시청자의 눈을 사로잡기 위해 갈등 자체가 주는 이야기의 자극적 긴장감만 부각시키는 데 치우친 것 같은 느낌을 준다. 또한 이 과정에서 드라마가 본래의 플롯에서 어긋나 다른 곳으로 새거나, 시청률에 기댄 에피소드 잡아 늘리기로 고무줄 편성을 하는 사례도 빈번하여 빈축을 사고 있다.

일일극이나 주말극의 주류를 차지하는 가족드라마는, 대개 각 방송사의 간판 드라마인 경우가 많다. 드라마 시장에서도 가장 대중적인 작품으로 분류되는 만큼, 시청률 수치에 유달리 민감할 수밖에 없다. 2개월 남짓 방송되는 트렌디드라마와 달리, 일일-주말극은 대개 4~6개월 이상의 장기 레이스를 펼친다. 여기서 인기 있는 작품치고 드라마 늘이기의 '고무줄 편성'을 시도하지 않은 작품을 찾아보기 힘들고, 반대로 인기가 떨어지는 작품치고 조기종영의 비애를 피해간 작품도 찾기 어렵다.

현재 시청률 선두를 다투는 <하늘이시여>를 비롯하여, <보고 또 보고> <인어아가씨> <왕꽃선녀님> 등 지상파 방송사의 인기 가족드라마들을 대거 집필한 임성한 작가의 작품들이 가장 대표적인 케이스다. 임성한 작가의 히트작 중에서 고무줄 편성을 피해간 작품은 거의 없다.

임성한 작가는 자신을 버린 아버지에 대한 딸의 복수극이나, 이복동생의 남자를 빼앗아서 결혼하는 언니, 어린시절 잃어버린 친딸을 자신의 의붓아들과 결혼시키려는 어머니 등 가족드라마에 어울리지 않은 각종 '엽기적인' 설정을 즐겨하는 것으로도 화제를 모았다.

최근 <하늘이시여>와 시청률 쌍두마차를 달리고 있는 <별난여자 별난남자>의 경우도, 드라마가 후반부에 접어들면서 점점 초반의 기획의도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평가다.

가난하지만 야무지게 자신의 삶을 개척해나가던 여주인공의 모습을 통해 일상의 단면을 건강하고 유쾌하게 풀어나가던 초반에 비해, 지금의 <별난여자 별난남자>는 며느리의 뱃속에 있는 친손자를 지우라고 강요하는 엽기적인 시어머니와의 고부 갈등, 주인공의 불치병 같은 요소들이 끼어들면서 70~80년대 풍의 진부한 신파 드라마로 우향우 해버린 느낌이다.

결국 문제는 최근 가족드라마들이 잇달아 보여주는 파격적이고 자극적인 설정들에 비해, 내러티브의 당위성이 떨어지는, 말 그대로 '갈등을 위한 갈등'을 이어나가고 있다는 점이다. 바로 오랫동안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기 위해서는 계속 강한 자극이 필요할 수밖에 없고, 자극을 위해서는 인물들간 첨예한 갈등만큼 좋은 것이 없다.

우스운 것은 이런 드라마들이 진부한 구성으로 욕을 먹으면서도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다는 점이다. 시청률은 제작진에게 언제나 무한의 면죄부를 선사해준다.

가족드라마는 다른 드라마 장르에 비해 이야기를 풀어나갈 수 있는 구성이나 소재의 폭이 제한되는 한계가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드라마가 현실의 모습과 고민을 반영하려는 시도를 외면한 채, 언제까지나 낡은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상투적이거나 자극적인 설정으로 이야기의 빈틈을 메우려 한다면, 언젠가는 그 밑천을 드러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부족한 소재, 비현실적인 인물들, 엽기적인 설정으로 넘쳐나는 지금의 우리 가족드라마 속에는 제작진이 이야기하는 진정한 가족의 모습은 존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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