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용주 시인은 열네 살에 가출한 뒤 세상 온갖 풍파, 별별 일을 다 체험했다. 그 기막힌 삶은 자전적 소설 <마린을 찾아서>에 상세하게 그려져 있다. 그 체험 속에서 유용주의 문학은 싹을 틔우고 꽃을 피웠다. 나는 유용주의 이런 시를 눈물을 찢고 피어난 꽃이라 명명(命名)하고 싶다. 그의 '눈보라'에서 빌려 쓴 말이다. 물을 찢고 피어난 꽃, 눈보라를 향해 쏟아지는 기침 언 손으로 틀어막고 비틀거리며 간다는 위 시는 유용주 시의 서시(序詩)로 읽혀진다. 눈보라의 세상에 맨몸으로 부대끼며 "정면돌파의 우직함"으로 한 땀 한 땀 새겨나간 시편들의 묶음이 시집 <은근 살짝>이다.
한 방송 프로그램에 지하 선생께서 나와 인생이란 은근살짝 다녀가는 것이라고 '은근살짝'은 '은근설쩍'의 전라도 말로 모름지기 인생이란 소리 소문 없이 살다가는 것이 최고라고 자기처럼 시끄럽게(표시 나게) 사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특유의 밑바닥 철학을 설파하셨는데, 아랍에미리트연합 두바이 행 상선을 얻어타고 여러 날째 수심 5,000m 인도양 새벽을 건너고 있을 때 누군가 뜨끈한 이마를 쓰다듬는 차가운 손길이 있어 소스라치며 일어났더니 바다보다 더 넓게 퍼진 하늘에 떠 있던 한 떼의 별무리, 은근살짝 내려와 글썽이고 있더라 - '은근살짝' 전문
"시끄럽게 사는 거"이 아니라 "인생이란 은근살짝 다녀가는 것이라고" 설파하신 김지하 선생의 말씀도 소중한 것이지만, 그 말씀을 듣고 우주적 생명과의 교감으로 시 한 편을 턱하니 짜놓은 유용주의 시작 솜씨도 보통이 아니다.
그는 지난 해 박남준(시인), 한창훈(소설가), 안상학(시인) 등 이른바 문단의 골통들과 현대상선을 타고 부산항에서 아랍에미리트 두바이항까지 17일간 함께 항해를 한 적 있는데, 그 때 그가 쓴 항해 일지에 이 시를 쓰게 된 메모가 나온다. 망망대해의 바다 한 가운데서 몇 가지 음식을 차려놓고 돌아가신 아버지께 제사를 올리고 동료들과 대취하여 잠이 들었는데 새벽꿈에 아버지가 다녀가시는 기미를 몸으로 느꼈다는 것이다. 돌아가신 아버지를 만나고 밤하늘의 별무리와 교감하는 시인의 시선은 깊고도 깊다. '물 속을 읽는다', '다래끼', '집', '11월', '목격자를 찾습니다', '가을을 꿈꾼다' 등의 시편들은 한 소식을 얻은 듯 독자들에게 많은 생각을 안겨다 주는 작품이다.
유용주의 새 시집 <은근 살짝>에는 "흙이라도 파먹고 싶을 때가 많았다/바위라도 깨먹고 싶을 때가 많았다"는 시인의 말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 지독했던 가난과 그 속을 헤쳐 나온 시인과 그 가족의 신산(辛酸)한 삶이 제재가 된 시편들이 또한 많다. 그리고 불혹(不惑)을 넘기고 사십대 중반이 된 유용주 시인이 현재 자신을 두고 자기 한 몸에만 매달려 있는 중견(中犬)이라고 한 고백도 감동적으로 다가온다.
시인 유용주와 아주 친한 후배 작가 한창훈이 쓴 발문이 일품(一品)이다. 시집 <은근 살짝>을 읽는 재미를 배가 시키고 있다. 유용주 시인이 오래 전 구두닦이 시절 펴낸 시집 <오늘의 운세>가 "우연한 길거리 카바이트 불빛 아래, '한석봉 천자문'과 '강한 남성 단련법' 사이에서 일금 삼백 원 달고 누웠다가 택시 기다리던 백낙청 선생 눈에 띄"어 창작과비평사에서 나온 시집 <가장 가벼운 집>이 나오게 된 사연, 국졸이 최종 학력인 그가 전국의 수재들만 채워진 한국교원대학교를 졸업한 초등학교 여선생을 아내로 맞이하게 된 사연, 서울 원남카바레서 봉걸레를 밀던 시절부터 배운 그의 현란한 춤 솜씨 등 별별 재미난 이야기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 눈물과 웃음으로 인간 유용주의 진면목을 감동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유용주의 문학에는 거짓과 사치가 없다. 우직하리만치 정직하다. 그것이 그의 힘이다. 이런 유용주의 시를 두고 후배 시인 이정록은 "혀엉, 하고 불러보니 밥 냄새가 나의 허기를 감싸고돈다. 뜨건 솥뚜껑이 쓴 시, 그의 시가 밥을 푼다"고 말한다. 잘 익은 그의 밥을 먹으면 배가 부르다. 힘이 팍팍 생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