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달 전 즈음 잡지를 넘기다 흥미로운 인터뷰 기사를 읽게 되었다. 자신을 강남의 일급 룸살롱 대마담이라 지칭하는 한 여자의 인터뷰였다. 전직 음악학원 원장이었던 그녀는, 자신이 현재 몸담고 있는 룸살롱의 구조와 자신만의 고객관리 비법에 대해 스스럼없이 털어놓았다. 술집에서 일하는 나이 든 여자라는 주위 시선과 편견이 아직도 지배적이지만, 정작 그녀 자신은 자기가 하는 일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녀가 속한 세계도 그 나름의 질서와 규칙이 있으며, 성공하는 방법이 존재한다는 말과 함께.
하지만 나는 그녀의 얘기에 전적으로 동조할 수 없었다. 그렇게 '잘 나가는' 강남 술집의 대마담이라는 그녀, 한 번 업소를 옮길 때마다 몸값이 3억원을 호가한다는 그녀가 인터뷰 말미에 남긴 한 마디 때문이었을까. "여기저기 진 빚만 갚으면, 예전의 피아노 치는 모습으로 돌아가고 싶다." 왠지 씁쓸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서점으로 가서 그녀가 고심 끝에 냈다는 <나는 취하지 않는다>란 책을 찾아 읽었다. 주변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일상적인 이야기 보다는, 뭔가 저 멀리 있는 듯 한 은밀한 이야기에 솔깃해지는 사람 심리 때문일까. 사실 그 비밀인 듯한 이야기도 뚜껑 열고 보면 그 나름의 현실에 불과할 뿐이지만 말이다.
택시를 타고 "좋은데 갑시다" 하면 모셔다 주는 곳은 일급이 아니다. 왜냐하면 일급은 뜨내기 손님은 받지 않기 때문이다. 외국 바이어를 접대하는 고객을 위해 외국어를 하는 아가씨들까지 대기하는 곳, 한 번 움직일 때마다 억대의 계약금이 따라다니는 곳. 그 곳이 룸살롱이다. - 본문 중에서
저자는 자신이 일하는 강남 P업소와 같은 곳에서는 뜨내기손님을 아예 받지 않는다고 설명한다. 예약손님만을 받는데다, 그 손님들의 경제력이라든가 사회적 지위가 상당한 수준이라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룸살롱에서 술을 마시려면 일인당 100만원은 있어야 한다니, 돈 없는 사람은 업소 주인으로서 반갑지 않을 것이다.
그녀는 '빌딩타기'와 '고객 관리 노트'를 자신의 성공 요인으로 꼽는다. 빌딩타기란, 업소의 홍보를 위해 강남에 있는 사무실을 방문하는 일을 뜻한다. 같은 회사를 몇 번이고 방문해 업소 홍보를 하고, 그 사람이 자신의 고객이 될 때까지 줄기차게 꽃을 보내는 등의 노력을 기울인다는 것이다. 그런 식으로 손님을 유치한 후, 그들이 단골이 되면 그녀의 고객관리 노트에 이름을 적어 넣는다.
2000여명 정도의 고객 정보가 들어있는 노트가 다섯 권이나 되는데, 그녀는 이 노트를 늘 가지고 다니며 그날그날의 주요 상황과 방문고객의 정보를 입력한다고 한다. 고객 한 사람 한 사람의 특성을 세세히 파악해 그에 맞는 접대를 하는 것이 그녀가 대마담이 될 수 있었던 비결이라 설명한다. 그 외에도 자신이 데리고 일하며 월급을 책임지는 룸살롱 아가씨들에 관한 이야기라든가, 저자의 살아온 이야기 등이 페이지를 장식한다.
저자는 유부남과 사랑에 빠졌던 이야기라든가, 자신의 아픈 연애담도 감추지 않고 털어놓는다. 빚을 갚지 못해 구치소에서 지낸 10개월의 생활에 대해서도 덤덤하게 이야기한다. 사람들이 어두운 세계라고 생각하는 룸살롱 문화에 대해, 그녀 나름대로의 주장을 담아 펼쳐낸 흥미로운 책임은 틀림없다. 그럼에도 이 책의 장점보다는 단점이 도드라지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책을 읽는 내내 수 없이 반복되는 '강남 최고 룸살롱 대마담'이라는 말은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다. 자신이 일하는 업소가 일반 술집과 차원이 다른 곳이라는 것을 강조하고픈 마음을 알겠지만, 내내 일인칭으로 진행되는 그녀의 이야기가 자신에 의해 일정부분 미화되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160페이지, 비교적 적은 분량의 책 한 권은 중간 중간 빈 공간이 눈에 띄어 내용의 부실함을 드러낸다. 문장 역시 불안정하다.
서점에 서서 흥미 위주로 쭉 읽어내려 갈만한 책은 되겠지만, 구입해서 두고두고 읽을 책은 아니라는 생각이 읽는 내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