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비음산 정상에서 진례산성 남문으로 가는 길.
비음산 정상에서 진례산성 남문으로 가는 길. ⓒ 김연옥

우리는 창원 사파정동 동성아파트를 거쳐 11시 40분쯤 비음산(510m, 경남 창원시) 산행을 시작했다. 비음산은 창원시 동부지역인 토월동, 사파정동과 김해시 진례면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산이다. 소달구지 덜컹대는 시골길 같은 정겨운 길이 먼저 우리를 맞았다.

싱그러운 오월을 맞이할 채비를 하는 듯 나뭇잎들은 더욱 초록빛이 짙었다. 바람결에 바르르 떠는 연둣빛 잎새들이 내게 부드러운 손을 흔들어 대는 것 같았다. 찬란한 봄날이다. 상쾌한 연둣빛 세상에 내 마음마저 환해졌다.

ⓒ 김연옥

ⓒ 김연옥

우리는 그날 느긋하게 산행을 하기로 했다.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를 하며 천천히 오르다 보니 어느새 연분홍 철쭉 꽃길에 이르렀다. 봄 햇살이 밀려오는 연분홍 철쭉밭 어디에선가 맑은 새소리가 들려왔다. 때가 묻지 않은 천상의 소리이다. 그래서 산행을 하다 아름다운 새소리를 듣게 되면 늘 고마운 마음이 든다. 갑자기 나는 천진한 아이처럼 구불구불하고 좁다란 철쭉 꽃길을 따라 마구 달음박질치고 싶었다.

연분홍 철쭉 꽃길. 나는 갑자기 좁다란 꽃길을 달음박질치고 싶었다.
연분홍 철쭉 꽃길. 나는 갑자기 좁다란 꽃길을 달음박질치고 싶었다. ⓒ 김연옥

나는 진달래를 보면 연분홍 저고리를 곱게 차려입은 가녀린 여인을 바라보는 느낌이 든다. 그런데 철쭉꽃을 보면 왠지 마가렛 미첼의 소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 나오는, 강인하면서도 아름다운 여인 스칼렛 오하라가 떠오른다. 영화에서 스칼렛으로 분한 비비안 리가 커튼을 찢어 옷을 만들어 입던 장면이 지금도 생생히 기억이 난다.

비음산은 해마다 진달래 축제를 한다고 들었는데 내 생각엔 오히려 철쭉 축제를 해야 할 것 같다. 온통 연분홍 철쭉밭이다. 군데군데 예쁜 철쭉꽃 앞에서 사진을 찍던 사람들의 행복한 웃음소리가 내 귓가에 맴돈다.

ⓒ 김연옥

비음산 정상. 그날 세찬 바람이 몹시 불어댔다.
비음산 정상. 그날 세찬 바람이 몹시 불어댔다. ⓒ 김연옥

우리는 낮 1시 20쯤 비음산 정상에 도착했다. 마치 큰 파도가 밀려오는 듯한 소리를 내는 세찬 바람이 정신없이 불어댔다. 내 몸도 그 바람살에 떠밀려 갈 것만 같았다. 우리는 계속 진례산성(경상남도기념물 제128호) 남문으로 가는 길로 내려갔다. 나는 그 길 따라 피어 있는 연분홍 철쭉꽃에 취해 어지러웠다. 몸이 이리 비틀 저리 비틀 하다 철쭉 꽃밭에 그만 쓰러질 것 같았다.

ⓒ 김연옥

진례산성 남문으로 가는 길.
진례산성 남문으로 가는 길. ⓒ 김연옥

우리는 봄 햇빛이 아름답게 부서지는 곳에 자리를 잡고 사 가지고 간 김밥을 먹었다. 온화한 인상을 주는 그 후배는 목소리도 나직하다. 지난 해 사량도 지리망산 산행을 같이 갔을 때 그가 준 향긋한 모과차 맛이 문득 그립다. 그날 비음산 산행은 갑작스레 떠나게 되어 먹을거리를 미처 준비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맛있는 김밥 도시락에 따뜻한 이야기가 있는 즐거운 시간이었다.

ⓒ 김연옥

ⓒ 김연옥

진례산성은 뒷날 다시 비음산에 와서 찾기로 하고 우리는 낮 2시에 하산을 하기 시작했다. 하산 내내 봄은 한없는 축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비음산의 아름다운 철쭉꽃으로 나는 행복한 여자가 되었다. 한동안 팍팍한 일상을 잘 버텨 나갈 수 있을 것 같다.

덧붙이는 글 | <찾아가는 길>
남해고속도로 동마산IC→창원역→경남도청→창원지방법원→사파정동 동성아파트→비음산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1978.3.1~ 1979.2.27 경남매일신문사 근무 1979.4.16~ 2014. 8.31 중등학교 교사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