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적거리는 시장통은 '싸요 싸' 상인들의 외침과 할머니들의 구수한 입담으로 가득 차 있었다. 어떤 식으로 누구에게 먼저 말을 걸어야 할지 몰라 시장을 빙빙 돈 지 30분이 지났을까. 왜소한 몸집으로 시장 바닥에 철퍼덕 앉아계시던 할머니 한 분이 눈에 띄었다. 다가가 말을 붙였다.
"할머니, 이번 5월 31일에 지방선거 있는 거 아세요?"
할머니의 대답은 예상대로였다.
"몰라~ 관심 없어. 장사 안되아 죽겄어. 오늘도 하나 못 팔았어."
할머니를 뒤로 하고 다시 시장 속으로 들어갔다. 몇 걸음 지나지 않았을 때 '대파요. 대파. 무사세요' 외치고 있는 한 아주머니가 보였다. 너무 열심히 장사를 하시고 계셔서 한 마디 건네기도 죄송스러워 주변에서 한참을 서성이다가 조심스레 여쭤봤다.
"지방선거가 다가오고 있는데요. 바라는 점이 있으세요?"
조금 무서워 보였던 첫 인상과는 달리 아주머니는 솔직하게 이런 말씀을 해 주셨다.
"별로 할 말이 없어요. 정치에 그다지 관심이 없어. 정직하게 하겠다는 사람들도 막상 뽑아놓고 보면 다 안 그렇고…. 정직한 사회 되는 게 가장 중요해요."
감사하다는 인사를 한 뒤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이번엔 양말을 팔고 있는 젊은 부부에게 눈길이 향했다. 마침 마음에 드는 양말이 있어서 몇 개 구입한 후 슬며시 질문을 했다.
"이번 지방선거에 나서는 정치인들에게 하실 말씀 없으세요?"
"어휴. 경기나 좋아졌으면 좋겠어요. 지금 IMF 때보다 더 어려워요. 노점상 단속이나 안 했으면 좋겠고...뭐 다른 관심은 없어요."
아주머니가 업고 있던 갓난아기를 봤다. 이제 겨우 한 걸음 한 걸음 아장아장 걸을 나이의 이 아기가 클 때까지 젊은 부부의 바람이 꼭 이뤄졌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했다.
보석가게 앞, 인상 좋으신 할머니 한 분이 무언가를 열심히 드시고 계셨다. 시장에서 사신 찹쌀도너츠였다. 찹쌀도너츠를 드시다 말고 이런 말씀을 해 주셨다.
"정치인들 서로 싸우지 말고 서로 합의 좀 했으면 좋겄어. 테레비 봐봐, 그거 보면 맨날 싸우더만. 싸우면 정치는 언제 햐~?"
좋으신 인상만큼이나 구수한 입담에 한바탕 웃을 수밖에 없었다.
나물 파시는 아주머니 주변으로 깔깔 웃음소리가 들렸다. 뭐가 그리 재미난지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계신 분들에게 말을 걸었다.
"다가오는 5월 31일이 지방선거 날인거 아세요?"
아줌마 1 "그려? 나는 몰랐는데."
아줌마 2 "난 후보가 하도 많아서 누가 누군지도 모르겄어."
아줌마 3 "다들 말뿐이지 실천을 다 못 하잖어, 우리가 한 두번 겪어~?"
"그럼 이번에 투표 하실 의향은 있으세요?"
아줌마 4 "투표야 당연히 해야지. 정치를 잘하든 못하든 국민된 사람으로 내 주권 행사는 해야지."
아줌마 2 "근데 어디서 여론조사 온 겨?"
"아~ 여론조사 아니구요. 옥천에 살고 있는 학생인데요,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 어르신 분들이 정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취재하고 있어요."
아줌마 2 "아~ 그려? 발품이나 나와야 할 텐디."(웃음)
아줌마 1 "요새 경기는 더 나빠. 있는 사람들이야 좋지. 대형마트 때문에 재래시장도 안와~"
옥천 5일장을 돌아다닌 지 1시간 30분이 지났을 무렵, 맛있어 보이는 생과자를 팔고 계시는 아저씨를 찾아 생과자 2000원어치를 샀다. 그러면서 은근슬쩍 질문을 드렸다.
"크게 바라는 거 없어요. 그냥 장사만 잘 됐으면 좋겠어요. 뭐 서민들만 잘 살게 해주면 좋지."
건어물 파는 아줌마도 마찬가지였다.
"경제나 살려줬으면 좋겠어요. 예전보다 더 어렵거든요. 서민들이 잘 사는 게 최고지. 다른 할 말은 없어요."
옥천 5일장에서 만난 사람들 모두 비슷한 말을 했다. 경제가 어렵다고, 서민이 잘 살게 해달라고, 재래시장이 활성화 됐으면 좋겠다고. 시장을 나서면서 다가오는 5·31 지방선거가 이들의 소박한 소망을 이룰 수 있는 작은 계기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했다.
취재를 마치고 보니 인터뷰를 위해 크게 필요하지 않은 물건을 주섬주섬 많이 샀다. 그러나 바쁘신 와중에도 질문에 응해 주시는 분들에 대한 작은 감사의 표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