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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극 <15세나 16세 처녀> 중에서 백미로 꼽힌 인당수 장면.무대와 조명의 오묘한 조화와 도창과 배우들의 합창 그리고 국악관현악이 잘 어울어졌다.
창극 <15세나 16세 처녀> 중에서 백미로 꼽힌 인당수 장면.무대와 조명의 오묘한 조화와 도창과 배우들의 합창 그리고 국악관현악이 잘 어울어졌다. ⓒ 김기
지난달 26일부터 30일까지 닷새간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무대에 올려진 국립창극단(예술감독 유영대)의 창극 <15세나 16세 처녀>가 뜨거운 반향을 일으키며 막을 내렸다. 마지막 공연은 관객들의 환호로 가득 찼으며 공연이 끝난 후에는 기립 박수를 보내는 모습도 보였다.



한국예술종합학교 김홍승 교수의 연출로 올려진 이번 작품은 '한류 예감'을 강하게 예고했다는 것이 대체적인 반응이었다. 전문가의 반응도 좋았지만 특히 국악계보다는 일반 공연관계자들의 평이 더욱 좋았다. 또한 고무적인 것은 젊은 층의 구미에 잘 맞는다는 것이다.

이번 창극을 관람한 고려대 강소연씨는 "풍물패 활동을 하는데도 창극은 이번에 처음 봤으며 창극에 대한 낡은 선입견을 깨게 됐다"며 "뮤지컬을 볼 때 같은 신선함과 강렬한 인상을 얻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또한 창극단 게시판에는 "(예전의 창극이) 매년 하는 공연. 늘 특별 할 것이 없는 배역만 다른 그런 공연이었다면 올해의 15세나 16세 창극은 참으로 색다른 느낌이 있다"는 칭찬도 눈에 띄었다.

신선한 무대와 잘 짜여진 구성

1부의 정서를 확정해준 심청 모친의 장례대목.  상두꾼들의 소리를 보완해준 여성구음화성이 특히 구성졌다.
1부의 정서를 확정해준 심청 모친의 장례대목. 상두꾼들의 소리를 보완해준 여성구음화성이 특히 구성졌다. ⓒ 김기
막이 오른 후 곧바로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미니멀한 무대와 독특한 조명이었다. 이번 창극의 무대는 평평한 여느 무대와 달리 7도의 각도로 언덕처럼 보였다. 이 언덕 식 무대는 상황에 따라 돌면서 장면의 구조적 의미들을 상징했다. 또한 무대 전면에는 유리가 마루 형태로 깔려 있어서 다양한 변화를 자아냈다.

도입부에서부터 관객들에게 큰 인상을 준 상여 행렬은 리얼리티와 더불어 관객의 너른 시야를 확보해주다. 실제 상여와 흡사하게 제작한 상여를 메고 가며 노래를 해야 하는 배우들은 언덕 무대를 오르고 내리는 일이 쉽지 않아 절로 노래에 힘을 줄 수밖에 없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또한 이 상여 행렬에서는 상여소리에 애잔함을 한층 더 해주는 여성의 구음화성이 합쳐지면서 기존의 상여 장면과의 차별성은 물론 음악극의 완성도를 높여주었다. 이번 작품 음악은 국립창극단 기악부 단원들이 수성반주(몇 가지 악기만으로 소리꾼의 소리를 따라가는 형식의 전통반주 방식)를, 국립국악관현악단이 관현악을 분담했다.

이번 국립창극단의 정기공연 작품 <15세나 16세 처녀>는 판소리 심청가와 춘향가의 전후반을 나눠서 엮은 것이다. 관객들은 3시간이 넘는 공연에도 자리를 뜰 줄을 몰랐다. 특히 비련의 정서만큼은 아주 확실하게 전달해준 작품이었다.

이번 작품의 작창과 도창을 맡은 전 예술감독 안숙선 명창의 유명한 눈대목인 '범피중류'를 독창하고 이어 남경상인들과 함께 '뱃노래'를 부른 후 심청의 인당수 투신 장면까지를 이번 작품의 백미로 꼽는다.

이 장면 역시 언덕무대의 전환과 조명이 크게 한몫을 했다. 또한 보통 수성반주로 음악을 채웠던 경우와는 달리 이번에는 관현악으로 전체적인 소리를 풍성하게 채워 극음악의 역할에 충실했다. 음악은 작년까지 국립국악관현악단 지휘를 맡았던 이용탁 창극단 음악감독이 작·편곡을 직접 담당하였다.

국립창극단 배우들의 진면목 보인 무대

공양미 삼백석을 구하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심청. 7도 각도로 세워진 언덕무대가 보는 각도에 따라 장면의 정서를 잘 살려주었다.
공양미 삼백석을 구하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심청. 7도 각도로 세워진 언덕무대가 보는 각도에 따라 장면의 정서를 잘 살려주었다. ⓒ 김기
더블 캐스팅으로 열연한 왕기철, 김학용은 서로 다른 색깔로 무대를 채웠다. 왕기철은 소리로, 김학용은 뛰어난 연기력으로 관객들을 울리고 웃겼다. 또한 트리플 캐스팅 중 메인인 심청 역의 박애리는 발군의 소리와 연기로 관객들을 사로잡았다.

2부 춘향 이야기는 변학도의 남원부사 부임부터 시작해서 거침없이 춘향 수청 요구까지 단숨에 치닫고는 바로 이몽룡과 월매의 상봉부터 호흡을 조절한다. 이 대목에서 관객들은 비로소 한숨 돌리며 잦은 웃음기도 입에 물게 된다. 월매, 향단이 그리고 암행어사 이몽룡의 속이고 속는 대화 속에서 판소리 춘향에 담긴 '한과 흥'의 구분할 수 없는 판소리 속의 혼재된 정서를 발견할 수 있게 된다.

이몽룡으로 분한 왕기석의 너스레와 월매역의 김경숙, 김금미는 관객들로 하여금 울 때인지 웃을 때인지 종잡을 수 없도록 흐벅진 연기를 보여주었다. 향단역을 맡은 김미진은 능청맞으면서도 처연한 연기와 소리로 짧지만 짙은 인상을 남겼다. 그리고 춘향 역 김지숙의 칼이 담긴 듯한 성음으로 부르는 쑥대머리 등은 긴 여운을 남겨주었다.

창극을 보면서 중간 박수가 이번처럼 잦았던 적을 본 일이 없다. 오페라의 아리아에 해당하는 주인공의 독창 때에는 여지없이 박수가 쏟아졌고, 1부 마지막 장면인 인당수 대목에서는 슬픈 장면인데도 불구하고 가장 큰 박수가 터져 나왔다. 또한 창극의 프리마돈나 안숙선 명창의 위력은 대단히 커서 도창 한 대목마다 추임새는 물론 박수가 그치지 않았다.

국립무용단 이문옥 위원이 안무한 무용부분은 쑥대머리 대목에서 결합되는 창작무용을 통해 관객들의 호평을 받았다. 또한 1부 마지막 춘향의 최후 이후에 무대의 변환과 더불어 멀리서부터 다가오는 소복 입은 여인의 독무는 강한 인상을 주었다.

물론 다 좋았다고 한다면 거짓말이다. 우선 너무 길다. 차츰 줄어들긴 했어도 첫날의 경우 전체 공연시간이 4시간 가까이 걸렸다. 혹시 저녁을 거르고 온 관객이라면 끝날 즈음에는 시장기가 만만치 않았을 것이다. 마니아라면 굶고도 볼 작품이라 할만은 하지만 그렇다고 굶으라고 강요할 수는 없는 일. 그리고 두 편의 판소리 대가를 동시에 보여주고자 했던 의욕이 100% 충족되기는 여러모로 어려웠다.

서양 뮤지컬과 맞설 토종 창극, 월드 프리미어로 한 발 내딛어

이번 작품의 백미인 도창과 남경상인의 '뱃노래' 합창 부분.
이번 작품의 백미인 도창과 남경상인의 '뱃노래' 합창 부분. ⓒ 김기
연출자 김홍승 교수는 "다른 어느 때보다 힘들었던 작품이었다"고 말은 뗀 뒤, "성공적인 작품보다는 두 개의 작품을 잇기 위한 모든 극 안팎의 상황들을 자연스러우면서도 세련되게 만드는 것만을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유영대 예술감독은 첫 작품에서 얻은 성과에 고무되어 향후 계획에 대한 포부를 밝혔다. "외국 블록버스터가 들어와 우리 공연계를 잠식하는 것에 대응할 방법과 자신이 생겼다"면서 "이번 작품을 통해서 터득한 긍정과 부정의 요소들을 잘 챙겨서 월드 프리미어의 대표작으로 우리 창극을 올려놓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춘향 국문 장면. 전체적으로 회전무대가 들쭉날쭉하고 비틀어진 각도로 보여진다. 이런 구조는 이 상황의 부조리함을 은유한다. 또한 무대뒷면의 반영은 그런 부조리의 은유와 상징성을 더욱 드높였다.
춘향 국문 장면. 전체적으로 회전무대가 들쭉날쭉하고 비틀어진 각도로 보여진다. 이런 구조는 이 상황의 부조리함을 은유한다. 또한 무대뒷면의 반영은 그런 부조리의 은유와 상징성을 더욱 드높였다. ⓒ 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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