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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산동성 웨이하이에서 무상 건립한 인천차이나타운 패루. 머리 공자상이 보이고 오른쪽은 일본 조차지 왼쪽은 청나라 조차지였다.
중국 산동성 웨이하이에서 무상 건립한 인천차이나타운 패루. 머리 공자상이 보이고 오른쪽은 일본 조차지 왼쪽은 청나라 조차지였다. ⓒ 유창하
인천항에서 중국 리엔윈항(連云港)까지 운행하는 국제여객선을 타기위해 인천에 머무르게 되어 '한국 짜장면(일부에서 '자장면'이라 주장하지만 고착 발음인 '짜장면'으로 표기함)'의 발상지인 공화춘(共和春)을 둘러볼 요량으로 한국 속의 외국거리인 북성동, 선린동 일대의 인천차이나타운을 찾아가보았다.

중국을 옮겨온 듯한 붉은색의 중국거리 풍물모습을 보며 문득 '상하이 도시 짝퉁'이라는 느낌이 들었지만 한편으로는 130년 전통의 역사도시를 가꾸고 보존하려는 인천광역시와 민간 그리고 화교들의 보이지 않는 의지가 엿보였다.

상하이와 인천 공통점 너무 많아

구 일본제일은행. 건물 안내 표지판에 붙어 있는 설명을 보면 마치 상하이 고건물을 보는 듯하다.
구 일본제일은행. 건물 안내 표지판에 붙어 있는 설명을 보면 마치 상하이 고건물을 보는 듯하다. ⓒ 유창하
사실, 인천과 상하이의 과거와 현재 모습에선 몇 가지의 유사점을 발견할 수 있다. 서구 열강 함대가 들어와 함포를 사격한 중요 포구라는 것과 외세 압력에 굴복하여 강제로 문호를 개방한 항구도시라는 점이다. 또 외국인 조차지가 조성된 역사의 거리가 있는 것과 두 도시 조차지의 흥망성쇠도 비슷하다.

1842년 영국과의 아편전쟁에 패한 후 난징조약을 체결하여 상하이를 개항했고 상하이에는 영국, 미국, 프랑스 조차지역이 만들어졌다. 인천은 서구열강, 일본들의 침입과 임오군란의 와중에 어쩔 수 없이 1883년 인천항을 개항하고 청나라와 일본에게 조차지를 내주게 된다.

상하이 조차지는 개항을 한 후 100여 년 동안 외국 상인들이 대거 거주하며 무역거래를 하고 경마장, 바가 운영되는 유락 산업이 활발하게 일어난 '서구 모험가들의 낙원'이고 정치인들의 망명도시였다.

그러다가 공산당 정부가 들어선 1949년 이후 외국인들이 상하이 조차지를 떠나자 한때 '죽의장막'으로 세계인의 관심에서 사라진 도시가 되었다가 마오쩌둥(모택동)의 노선인 농촌 우선정책보다 동부 연안 도시개발정책을 앞세운 등소평의 개방개혁정책으로 100여년 만에 다시 상하이조차지는 세계무대에 화려하게 부활하였다.

인천의 중국 교회건물이나 상하이의 중국 건물이 똑같다.
인천의 중국 교회건물이나 상하이의 중국 건물이 똑같다. ⓒ 유창하
마찬가지로 인천 조차지도 일본과 청나라의 조차지역으로 일본인과 중국인들이 대거 몰려와 잡화, 식품, 소금, 사금을 거래하는 등 상업 활동이 활발히 일어난 지역이었고, 산둥반도까지 여객선이 정기적으로 다닐 정도로 유동인구가 많았다.

하지만 1937년 중·일전쟁이 일어난 이후 화교들이 대만, 미국, 동남아 등 다른 나라로 떠나고 일본인들마저 1945년 해방이후 자취를 감추자 차이나타운은 떠나지 않은 소수 화교들의 생활터전으로 겨우 명맥을 유지했다. 그 후에도 차이나타운은 한국전쟁으로 큰 화를 입고, 한국정부의 부당한 화교정책으로 차이나타운은 쇠락의 길을 걸었다.

뒤늦은 감은 있지만 2000년 들어 인천광역시와 민간, 화교자본이 인천 역사거리 조성, 중국풍 거리 리모델링 등 화교들의 투자유치를 위한 과거명성 찾기 '부활 프로젝트' 인프라 구축에 나섰고 그 후 상권이 살아나고 외부 방문객의 수도 지난해 40만 명을 넘는 등 급격히 변화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차이나타운 건물, 상하이 조차지 옛 거리와 흡사

인천항이 훤히 보이는 자유공원 계단을 내려와 상하이에 흔히 보던 건물 양식의 일종인 일본인이 개설했다는 구 일본제일은행 인천지점 건물을 지나 인천차이나타운 입구에 들어서니 중국 산둥성 웨이하이에서 기증했다는 중국식 대문인 패루(牌樓)가 깔끔하게 단장된 모습으로 여기가 차이나타운임을 알린다.

청나라와 일본의 경계선을 기념하는 석물. 오른쪽은 일본식 석등이고 왼쪽은 청나라 석등이다.
청나라와 일본의 경계선을 기념하는 석물. 오른쪽은 일본식 석등이고 왼쪽은 청나라 석등이다. ⓒ 유창하
전형적인 중국식 옛집. 상하이에 있는 마오쯔둥의 옛집과 흡사하다.
전형적인 중국식 옛집. 상하이에 있는 마오쯔둥의 옛집과 흡사하다. ⓒ 유창하
'이곳이 짜장면의 발생지였다'는 것을 알리는 플래카드가 걸려있는 길을 따라 공자 동상 있는 쪽으로 올라가니 입구에 청나라 조계지역과 일본 조계지 경계선을 알리는 기념석물이 있다. 일본 거주지 방향으로는 일식 석등을 청나라 거주지 쪽으로는 청나라 석상을 만들어 놓아 이채롭다.

왼편을 바라보니 <내 마음을 뺏어봐> <육남매> 드라마 배경으로 많이 나온 청나라 목조 건물이 나온다. 집의 모양이 상하이 징안스(靜安寺) 인근에 있는 마오쩌둥 옛집과 닮아 마치 상하이 오래된 건물을 옮겨온 듯하다. 오른쪽에는 일본식 목조건물들이 보인다.

상해 가라오케. 한-중-일 공동 유흥 오락 문화이다.
상해 가라오케. 한-중-일 공동 유흥 오락 문화이다. ⓒ 유창하
붉은색 홍등이 걸린 인천차이나타운은  상하이 예원상가 일부를 모셔온 듯하다.
붉은색 홍등이 걸린 인천차이나타운은 상하이 예원상가 일부를 모셔온 듯하다. ⓒ 유창하
붉은 홍등이 걸려있는 잘 정돈된 왼쪽 길을 따라 들어가니 '상해 K-TV'란 간판 밑에 '가라오게'라고 설명을 달아 놓은 주점이 있다. 상하이에서 많이 보던 'K-TV' 간판을 여기서도 만난다. '가라오케(K-TV)' 유흥문화가 '한-중-일 국경을 넘나드는 공동 매개체'임을 새삼 실감하며 웃음이 절로 나온다.

2002년에 문을 열었다는 '짝퉁' 공화춘에 다다르니 더욱 붉은색 홍등으로 치장된 거리 모습이며, 중국식 소상품시장 대형건물이 나와 마치 상하이의 대형 전통시장인 위위엔(豫園 예원) 상가건물 일부를 옮겨 놓은 듯하다.

지어진 지 100년이 넘었다는 붉은 벽돌의 쿵푸 도장 의선당이 나오고, 1917년 지었다는 인천중화기독교회 건물도 보인다. 두 건물은 중국 상하이에서 봤던 오래된 주택과 교회 건물, 성당건물과 너무 흡사하다.

짜장면 발생지 공화춘

이곳이 100년 전통 자장면 발상지임을 알리는 플래카드
이곳이 100년 전통 자장면 발상지임을 알리는 플래카드 ⓒ 유창하
처음 목적지였던 짜장면의 발생지인 공화춘 건물을 찾아 나섰다. 인천역 방향으로 내려가는 작은 도로를 조금 내려가니 1905년에 건립된 공화춘(선린동 38번지)이란 간판이 선명히 드러나는 낡은 건물이 나온다.

목(目)자 형의 청나라 건축양식으로 화교 2명이 주인인 2층 개인소유 건물이다. 이 건물의 역사적 가치로 인천 중구에서 공화춘 건물을 사들여 '짜장면 박물관'으로 개조하고자 집주인과 매입 협상을 벌이고 있는 중이라고 한다(공화춘은 1984년 경영난으로 문을 닫은 후 지금까지 방치되어 오다 올해 101년 만에 근대문화재로 등록).

짜장면은 인천 개항 후 이 일대 5천여 평에 청나라 조차지가 설정되자 거주 중국인들이 늘어났고 인천항에 일하던 중국 노동자들이 쉽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 필요하자 당시 공화춘 주인이 춘장(중국 된장)에 중국국수에 비벼먹는 요리방식의 '짜장면'을 만들었다.

최근에야 근대문화재로 등록된 최초의 짜장면집 공화춘 노란색 간판이 선명하다
최근에야 근대문화재로 등록된 최초의 짜장면집 공화춘 노란색 간판이 선명하다 ⓒ 유창하
한국의 '짜장면'이 과거 공화춘에서 만든 중국 짜장면 '짝퉁'에서 출발하였는지 아니면 '신개발품'인지는 명확하게 검증되진 않지만, 그 원류는 중국에서 나왔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 중국에는 '짜장면'이 지방마다 조금씩 다르게 몇 종류로 만들어지고 있다.

이곳 차이나타운을 '중국 상하이 눈'으로 바라보았다. 인천차이나타운이 서구근대 문물을 받아들인 관문이었던 역사적 의미를 재창출하는 중국어현장마을, 짜장면 발생 유적지, 중국 관련 축제 중심지, 인천 근대역사 체험학습장, 중-한 무역 실거래 상업기지로 거듭나기를 기대 해본다.

인천 시내를 달리는 버스에 달린 태극기가 유독 대한민국임을 일깨워 준다.
인천 시내를 달리는 버스에 달린 태극기가 유독 대한민국임을 일깨워 준다. ⓒ 유창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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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오랜 기간 오마이뉴스에서 쉬었네요. 힘겨운 혼돈 세상, 살아가는 한 인간의 일상을 새로운 기사로 독자들께 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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