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춘천시 K리조트
춘천시 K리조트 ⓒ 박준규
5월의 햇살이 짙던 어느 날 오후, 춘천시 K리조트 호숫가에서 몇 해 전 알게 된 기러기 아빠 장씨(42·남)를 만났다. 8년 전 결혼하여 착한 아내와 예쁜 아들 하나를 둔 평범한 가장 장씨. 그는 2년 전 본의 아니게 기러기 아빠가 되었다. 가족과 친척들이 모두 캐나다로 이민가고 고국에 혼자남아 벌여놓은 일들을 정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떨어져 있어야 알게 되는 가족애

그의 가족과 친척들이 캐나다로 이민을 가게 된 근본 원인은 소아마비 장애를 앓고 있는 아들(8세) 때문.

장씨는 젊은 시절부터 이민을 가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생활형편이나 기타 조건들이 맞지 않아 차일피일 미루던 상황이었다. 그러던 중 늦게 얻은 아들이 생후 10개월이 될 무렵 소아마비 장애를 얻었고 사람들 편견 속에서 6년 정도를 키웠다.

그는 사람들이 아들을 바라볼 때 대부분 동정의 시선으로 바라봤다고 고백했다. 꼭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만 살 수 있다는 눈빛들이 부담스러웠다는 것.

또한 한국의 부족한 장애인 복지정책에 대해서도 꼬집었다. 장애인 교육여건과 취업문제, 인권문제, 가깝게는 이동권(대중교통)이나 편의시설 문제 등이 너무나 부족하다고 한숨을 쉬었다. 캐나다 이민을 결정한 데는 이런 배경들이 깔려 있었다.

그는 집을 처분하고 현재는 단칸 전세방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그는 벌여놓은 일들이 모두 정리돼, 며칠 뒤면 가족들에게 간다며 조금은 들뜬 마음을 내비쳤다. 2년 조금 넘게 혼자 생활하는 동안, 가장 힘들었던 점은 역시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었다고 토로한 장씨. 막상 살을 부비며 함께 지내던 그때는 가족에 대한 소중함을 크게 느끼지 못했으나 한 달 두 달 시간이 지나면서 가족 생각으로 많이 힘들었다고.

이루지 못한 소원, 그림 같이 예쁜 집

왜 이민을 꿈꾸었냐는 질문에 그는 "그냥 어릴 때부터 외국에 나가 한 번 살아보는 게 꿈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꿈만 갖고 외국행을 결심하긴 힘들었는데, 아들이 예상치 못하게 장애인이 되고 보니 서둘러 결정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그는 "내가 한국을 떠나는 입장이기는 한데 어서 빨리 한국도 문화 여건이나 복지정책 같은 것들이 좋아져서 부디 외국으로 나가지 않고도 모든 사람들이 평등하고 불편 없이 사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라며 씁쓸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며칠 후 가족들 품으로 떠나는 기러기 아빠는 아직 이루지 못한 소원을 남기고 가게 돼서 아쉽다며 말끝을 흐렸다. 그가 이루지 못한 소원이란 과연 무엇일까? 반 강제적인 질문에 그는 선한 눈빛으로 대답했다. 그가 벌여놓은 일은 한적한 시골에 작은 복지시설 건물을 짓는 일. 그는 건축가였다.

2년 전 관할 군청에서 허가를 맡고 일을 시작했으나 좋지 않은 일들이 중간 중간 일어나 제대로 공사도 못하고 빚만 졌다. 공사를 맡긴 업체 몇 군데가 부도나 공사비와 자재비 등을 고스란히 빚으로 떠안게 된 것. 거기에 아들이 소아마비에 걸려 이 병원 저 병원 치료하러 다니면서 더욱 어려워지게 됐다.

그가 끝내 건축사업을 그만두고 일반 건축사 사원으로 일하게 된 동기다. 하지만 그는 이루지 못한 소원을 타국에 가서라도 꼭 이룰 것이라며 다시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 나라 좋다, 싫다 해도 우리는 애국자?!

마음 넓은 아저씨 같은 그를 만나고 돌아오면서 생각했다. 역시 아직은 이 나라가 살만한 곳이 아닌가 싶었다. 비록 그는 고국을 떠나, 보다 잘 산다는 타국을 찾아 가지만 그처럼 착하고 선한 마음을 갖게 한 나라 또한 이 나라가 아니겠는가? 이 곳의 복지정책이나 모든 정책들이 아직까지 완벽하진 않더라도 현재 진행 중이다. 무엇보다 가족을 위하고 나보다 남을 더 생각하며 살려는 사람들이 많은 것을 보면 그래도 이 나라는 살만한 곳이 아닌가 싶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모두가 함께하는 사회가 될 수 있는 날을 꿈꾸는 사람입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