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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어린이날, 어느 시골 초등학교의 6학년 교실입니다. 당시엔 어린이날이 되면 연례 행사처럼 부잣집 친구의 어머니들이 음식을 장만해 학교로 찾아오곤 했습니다. 대부분 시중에서 판매하는 과자들이 전부였습니다만 가끔은 떡 같은 음식을 해오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서울에서 전학온 친구의 어머니가 샌드위치라는 낯선 음식을 학교에 가져왔습니다. 사실 저는 그때까지 샌드위치라는 음식을 먹어본 적도, 직접 본 적도 없었습니다. 당시 우리 반 아이들은 대부분 샌드위치를 먹어본 적이 없었을 것입니다.
샌드위치를 보는 순간 '무슨 맛일까' 하는 기대감에 부풀었습니다. 그리고 잠시 후, 교탁 위에 쌓여있던 샌드위치는 아이들 손으로 전해졌습니다. 물론 제게도 전해졌습니다.
하지만 난생 처음 보는 음식을 '어떻게 해야 할 지' 고민되기 시작했습니다. 선뜻 입 안에 넣기가 힘들었습니다. 빵 사이에는 양배추와 마요네즈, 노란색 치즈와 붉은 햄이 있었습니다.
양배추, 마요네즈, 치즈, 햄 모두 제가 초등학교 6학년이 될 때까지 한 번도 먹어보지 못했던 것들이었습니다. 다른 아이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다들 샌드위치를 받아놓고는 아무도 선뜻 먹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서로 눈치만 보면서 '어떻게 해야 할까' 하고 고민했던 것이죠. 교실에는 잠시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습니다.
난생 처음 본 샌드위치... 무슨 맛일까?-> 어떻게 해야 하지?
서울에서 전학온 아이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맛있게 먹었습니다. 하지만 친구의 어머니는 갑자기 벌어진 대치 상태를 이해하지 못해 당황하는 모습이 역력했습니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선생님은 선생님대로 즐거운 어린이날에 교실에서 벌어진 음식 문화의 차이를 어떻게 극복해야 할 지 난감해했습니다.
용기 있는 아이들이 먼저 샌드위치를 먹기 시작했지만 한 입 베어 물고는 더 이상 진전이 없었습니다. 화장실로 뛰어가는 아이까지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행히 모든 일정이 끝날 무렵 샌드위치를 나눠줬기 때문에 당황스러운 짧은 대치 상태는 약간의 소요와 갈등으로 끝이 났습니다.
샌드위치를 가져온 친구의 어머니와 친구가 교실을 나가자마자 아이들은 샌드위치를 쓰레기통에 버렸습니다. 저 역시 호기롭게 먹어봤지만 도저히 삼킬 수가 없었습니다. 13년 동안 된장과 고추장만 먹어본 제게 마요네즈와 치즈, 그리고 정체를 알 수 없는 햄은 너무 낯선 맛이자 문화였기 때문입니다.
하교길은 아이들이 샌드위치를 성토하는 장으로 바뀌었습니다. 우리는 샌드위치라는 알 수 없는 음식을 가지고 온 것에 대해, 어떻게 그런 음식을 우리가 먹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지에 대해, 그것 때문에 얼마나 비위가 상했는지에 대해, 그리고 입에 넣었을 때 들었던 이상한 느낌에 대해 쏟아놓으며 묘한 동질감을 느꼈습니다.
결국 아이들에게 새로운 음식을 선물하려 했던, 서울 살던 친구 어머니의 도전은 시골 아이들의 음식 문화를 이해하지 못한 덕분에 선물이 아니라 문화적 차이를 확인하는 도구가 되어버린 셈입니다.
김치·된장·야채 안 좋아하는 건 식성 탓?... "후천적 현상"
요즘 아이들은 김치나 된장, 야채를 싫어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런 대치 상태는 고작 20여년 전에도 있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시골 아이들은 햄과 치즈, 마요네즈 같은 음식을 삼키지도 못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요즘 아이들이 김치나 된장, 야채를 많이 먹지 않는 것은 아이들의 취향이나 식성이 아니라 부모와 문화가 만든 후천적인 현상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요즘도 샌드위치를 못 먹느냐고요? 아닙니다. 지금은 샌드위치를 먹을 수 있고, 가끔은 마요네즈나 치즈도 먹습니다. 그때마다 그날의 대치 상태와 함께 동무들의 얼굴도 떠오릅니다. 그때 쓰레기통에 샌드위치를 버리며 동지임을 확인했던 동무들은 지금 그 날의 추억을 생각하고 있을까요?
덧붙이는 글 | 당신의 거래가 세상을 바꿉니다. "참거래 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