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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학리 할머님 댁 전경
장학리 할머님 댁 전경 ⓒ 박준규

자식보다 더 살가운 자원봉사자들

작년 12월 제 생일 때, 라면 세 봉지를 선물로 주신 독거할머님(조옥춘·82)댁을 지난 4일 다시 찾았습니다. 어느덧 얼어 있던 앞마당도 모두 녹고 파릇파릇 나뭇가지엔 새잎이 돋았으며 작은 텃밭에는 벌써 심어 놓으신 파와 부추, 호박 등이 제법 자라 있었습니다.

변함없이 "할머니~"를 외치며 댁으로 들어가니 어딘지 모르게 환해진 집안 분위기와 어김없이 할머님의 밝은 미소가 저를 맞이해 주셨습니다. 솔직히 일주일에 한 번씩 찾아뵙고는 있었지만 이날은 왠지 더욱 집안 분위기와 할머님 얼굴이 밝아 보인 것이었지요. 봄이 그새 짙어져 굳이 방으로 들어가지 않고 허름한 마루에 앉아 얘기를 나누어도 춥지 않을 것 같아 할머님과 나란히 마루에 걸터앉아 수다를 떨었습니다.

장학리 할머님 모습
장학리 할머님 모습 ⓒ 박준규
집안이 환하게 바뀐 이유는 다름 아닌 도배와 장판을 새로 한 것이기 때문. 며칠 전 자원봉사 하는 사람들이 찾아와 해주고 갔다고 할머님께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여기서 자원봉사 하는 사람들이라 하면 "관내의 자원봉사활동 팀이 아닌 인터넷 카페(춘천따듯한세상만들기)에서 마음 맞는 사람들 끼리 만나 일주일에 1-2회씩 정기적인 방문, 봉사활동을 하는 착한 사람들의 모임"을 뜻합니다. 이들의 적극적인 활동으로 장학리 할머님 댁 집안이 환해진 것이었고요. 뿐만 아니라 집안을 대대적으로 청소를 하여 평소보다 훨씬 깨끗해지고 환해져 있었습니다.

카페 회원인 박모(남·36세)씨에 따르면 이 카페회원들은 장학리 할머님 댁만이 아닌 총 세 곳의 독거노인 댁은 일주일에 1-2회, 장애아동 복지시설 및 노인복지관은 각각 한 달에 1회 정기방문·봉사를 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할머니 집안이 밝아져서 좋으시겠어요?"
"그럼, 좋지! 도배한 지도 벌써 몇 년이 지난 건데 그동안 한 번도 못했잖아? 그래서 어떤 사람이 와서 장판 바꿔준다고 그러기에 내가 하려면 도배도 해주고 함 좋잖아? 하고 또 야단을 쳤더니 지난주에 많이들 와서 싹~ 해주고 가더라. 근데 내가 좀 넘했지? 그냥 장판만 해주는 것도 고마운 건데 도배까지 하라고 그래서 말이야."

이렇게 말씀하시며 할머님은 멋쩍은 듯 미소를 지으셨습니다. 장학리 할머님은 말씀도 잘하시고 찾아가는 사람에게 금방 친근감이 들도록 해주시는 정말 우리 할머님 같은 분이십니다. 봉사를 받으시는 입장에서도 하고픈 말(봉사자들에게) 거침없이(?) 하고 사시는 재미있는 할머니시기도 하고요.

그렇게 집안이 바뀐 얘기들로 한참을 웃고 떠들었습니다. 그러기를 1시간 30분 정도? 허기가 지셨는지 사들고 간 봉지를 가리키시며 "사 온 거 먹자?" 하십니다. 치아가 없으신 관계로 죽과 부드러운 빵, 유산균 음료를 늘 조금씩 사가지고 가는데 그동안은 먼저 먹자는 말씀 안 하시더니 이날은 웬일로 먼저 말씀을 꺼내시더군요. 역시 말씀을 너무 많이 하신 듯했습니다. 팥죽을 드시며 할머님이 먼저 말씀을 꺼내십니다.

"요즘은 사는 게 참 재밌어. 사람들도 자주 찾아오고 와서 얘기도 들어주고 이것저것 챙겨주니 말이야. 자식들도 멀리 살면 그렇게들 못하자나."
"그래서 좋으세요? 할머님."

"너무 좋지. 난 모두가 아들딸이고 손자·손녀야! 꼭 내 배로 낳아야만 내 자식인가? 이렇게 나를 찾아와 주고 아껴주는 사람이 내 가족이지? 안 그래? 그래서 우리 집에 오는 사람(봉사자)들은 모두 내 자식들과 같이 생각해"라고 하시며 더욱 환한 웃음을 보이셨습니다.

경찰들은 모두 내 큰 아들, 큰손자·큰손녀

할머님 앞집에는 안 형사라는 분이 사신다고 합니다. 연세는 50이 넘으신 분이며 직업은 형사. 성(姓)이 안 씨고. 그런데 이 안 형사라는 내외분도 할머님께 참 잘 해주신다고 하시더군요. 할머님은 안 형사님을 부르실 때 "큰아들"이라고 하신답니다. 이 그 이유를 여쭈어보고 안 웃을 수가 없더군요. 왜냐면 큰집(경찰서)에 있는 사람이라 큰아들이라 부르신다네요.

그리고 젊은 경찰들에겐 큰손자·큰손녀라고 부르신답니다. 역시 장학리 할머님의 낙천적인 성격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또한 최근에 일 년에 한 번씩 경찰청에서 경로잔치를 하는데 장학리에선 우리 할머님만 경찰들이 직접 와서 모시고 가신다며 으쓱해 하십니다. 참 순수하신 우리 장학리 할머님이시죠? 안타깝게도 이날 안 형사님은 만나뵙지 못했습니다. 평일 낮엔 댁에 아무도 계시지 않는다 해서.

75년 전 할아버지가 알려주신 살아가는 법

82세 할머님이 7세 일 때, "할아버지가 무릎에 앉히고 해 주신 얘기를 지금껏 잊지 않고 그대로 실천하며 살려고 노력하고 있어" 하시며 역시 할아버지의 말씀이 옳으셨다고 흐뭇해 하셨습니다. 할아버지가 해주신 말씀.

"이 다음에 할아버지가 먼저 가고 네가 커서 살다가 사람들이 집에 찾아오면 절대 그냥 보내지 말거라. 하다못해 물 한사발이라도 떠 주고 먹여서 보내. 그래야 네가 어디 가서도 대접 받을 수 있는 거니. 그리고 집을 구할 때는 사람들 모인 중간에 얻어 살아. 즉, 산 밑이나 강과 가까운 집, 또는 외딴 곳은 좋지 않으니 사방으로 집들이 있는 중간을 얻어 살아야 좋은 거야"라고 해주신 말씀이 지금껏 잊혀 지지 않아 꼭 지키고 사시려고 노력하신답니다. 정말 그래서 그런지 장학리 할머님 댁 사방은 이웃집들로 둘러싸여 있더군요. 그 75년 전 할아버지가 알려준 간단한 살아가는 법을 아직도 잊지 않으시고 살고 계신 우리 할머님이 참 멋져 보이셨습니다.

삶은 베풀며 사는 것

2시간 넘게 할머님 댁 마루에서 정겹게 수다를 떨다 일어서려는데 우리 할머님, 굽으신 허리로 작은 냉장고 문을 열어 뒤적거리시다 작은 비닐봉투(떡)를 풀어 보이며 말씀하십니다.

장학리 할머님가 싸준 떡
장학리 할머님가 싸준 떡 ⓒ 박준규
"이거 가져다 쪄먹어. 엊그제 누가 가져온 것인데 오늘 너 오면 주려고 싸놨어"하시며 오늘도 역시 챙겨 주시느라 바쁘셨습니다. 할머님 성의를 무시할 수 없어 감사히 가지고 집을 나섰네요. 오늘도 역시 골목까지 나와 배웅하시는 할머님을 뒤로 하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장학리 할머님의 배웅
장학리 할머님의 배웅 ⓒ 박준규
오늘도 장학리 할머님은 제 마음에 보이지 않는 그 무언가를 또 하나 곱게 심어 주셨습니다. 과연 그 보이지 않는 그 무엇이란 어떤 것일까요? "감사하는 마음과 삶은 베풀며 사는 것?" 아마도 그런 것 같습니다. 감사와 베푸는 것에는 조건이나 자격이 필요치 않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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