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우내 동면에 들었던 한라산에도 봄이 왔다. 흰눈이 녹아내리는 물소리가 새소리보다도 더 아름답게 지저귀는 Y골짜기, 깊은 그 계곡을 따라 모데미풀이 봄소식을 전하려고 나비처럼 내려앉았다.
봄이 늦게 왔다고 오래 머무는 것은 아니다. 바닷가엔 벌써 여름에 밀린 봄이 멀찌감치 물러나 앉으려 한다. 한라산의 깊은 계곡에 핀 모데미풀은 겨울과 여름의 사이에서 소식을 전하러 온 전령사일 뿐 짧은 봄을 탓하지 않는다. 늦게 온 봄은 늦게 온 만큼 걸음을 서두를 뿐.
버섯을 만나기 위해 산을 찾았건만, 건조한 황사바람에 야생버섯은 눈을 크게 떠도 보이지 않고 모데미풀 꽃이 화사하게 모습을 들어 낸다. 따사로운 햇살은 눈부시게 흰 꽃잎에 머물러 비로소 부서지고, 내사 이 고즈넉한 계곡에 모데미풀 옆에 오래오래 머무르고 싶어라.
안 그래도 작은 키가 햇살에 눌려 더욱 왜소해지면 어떡하나. 키를 한껏 길게 빼어보지만 한 뼘의 키도 얼마나 어려운지... 기껏 목을 길게 늘여 봐도 손가락 길이만도 못하다.
모데미풀 꽃은 금세 지고 햇살은 기어이 꽃잎을 까맣게 태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