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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무슨 일이 있는 것일까. 지난 주 금요일, 평소 조용하고 한가롭기만 하던 미국 버지니아주 JMU(제임스메디슨대학교) 캠퍼스에 난리(?)가 났다. 학교 안 도로는 밀려드는 차량으로 옴짝달싹 못했고 여기저기서 극심한 교통체증이 벌어졌다. 파릇파릇한 잔디밭은 외지에서 온 차들로 이미 주차장이 되어 버렸다.
"오늘이 학기 마지막 날이어서 학생들이 짐을 꾸려서 집으로 가는 거예요. 내일 졸업식에 참석하는 학생들이나 서머스쿨을 듣는 학생들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떠나는 거지요. 해마다 반복되는 일이어서 학교 경찰이 총출동한 겁니다. 저기 있는 아르바이트 학생들도 캠퍼스를 떠나는 학생들의 'move-out(이사)'을 돕고 있습니다."
제복을 입은 여성 경찰관이 무슨 일인지 궁금해 하는 내게 자세히 설명을 해준다. 경찰관의 말대로 널찍한 잔디밭 입구에는 주차와 차량 안내를 맡은 아르바이트 대학생들이 허리춤에 찬 무전기를 통해 신속하게 상황 보고를 하고 있다.
"저는 셜리예요. 회계학을 전공하고 있어요. 3학년인데 학교에서 시간당 7달러 50센트를 받고 이 일을 하고 있어요. 방학 때 계획이요? 여행을 갈 거예요."
주차 안내를 맡고 있는 아르바이트 학생 가운데 유난히 목소리가 큰 여학생이 있어서 취재 요청을 했더니 흔쾌히 응해 준다. 셜리는 이곳 주차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미국에 와서 인상적으로 느끼는 것 중의 하나는 여학생들이 상당히 용감(?)하다는 것이다. 여성들도 아주 씩씩하다. 언젠가 학교 비품을 공급하는 대형 트럭의 운전사와 그 운전사를 돕는 조수가 모두 젊은 여성인 것을 보고 놀란 적이 있다. 연약한 여성이라는 말은 이곳에선 안 통하는 것 같다.
이 날도 학교 경찰을 도와 주차 안내를 맡은 학생은 모두 여학생들이었다. 아마 모르긴 해도 우리나라 같았으면 대학 구내에서 이런 일을 하려고 하지 않았을 것이다. 속된 말로 '쪽 팔린다'고 하면서 말이다. 더구나 햇살이 쨍쨍 내리쬐는 곳에서 이런 아르바이트를 할 여학생이 과연 몇이나 있을는지.
하지만 이곳에서 만난 주차 단속 아르바이트 학생 중에는 여학생들이 많았다. 이들은 아주 늠름하게 일을 잘 한다. 학교에서 종종 만나는 이런 여학생들을 보면서 나는 두 딸들에게 '건강한 노동'에 대해 잔소리 같은 충고를 하기도 했다.
학생들의 대이동
이야기가 잠시 옆으로 샜지만 다시 학생들의 '대이동'으로 돌아가 보자. 방학과 졸업을 앞둔 학생들의 대이동 사태는 이미 예견되었던 사실이었다. 발 빠른 상혼이 타이밍을 놓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5월이 되면 미국의 대학들은 학기가 끝나고 졸업식을 하게 된다. 그래서 졸업식을 앞둔 지난 4월 말경부터 대형쇼핑몰에는 '2006 졸업(Grad) 축하' 코너가 등장했다. 이곳에는 갖가지 축하카드와 선물용 쇼핑 리스트가 비치되어 있고 짐을 꾸리는 학생들을 위한 빈 박스 코너도 있다.
그런데 학기 마지막 날인 지난 금요일에 내가 목격한 학생들의 대이동은 학생 혼자만의 이동이 아니었다. 임시 주차장으로 사용되던 학교의 넓은 잔디밭에는 집안 식구들이 총출동하여 카트를 이용하거나 '맨주먹'으로 짐을 나르고 있었다.
짐을 옮겨주는 사람은 학생 한 명당 평균 두 명 정도가 달라붙어 일을 거들고 있었다. 친구들이 와서 도와주는 경우도 있었고 부모와 형제들이 와서 온 가족의 '거족적인' 행사로 짐을 옮기는 경우도 있었다.
그들 가운데 다정하게 이야기를 건네며 짐을 나르는 부녀가 눈에 띄었다.
- 어디에서 오셨어요?
"피츠버그에서 왔어요. 이곳에서 두 시간 반 걸리죠."
- 따님이 뭘 전공하나요?
"간호학을 전공해요. 데이지는 1학년이에요. 방학 동안 기숙사를 비워줘야 해서 제가 차를 가지고 왔어요."
- 데이지양은 방학 동안 뭘 할 거예요?
"가족들과 여행을 할 거예요. 아마 오하이오에 가게 될 것 같아요. 방학 동안 일도 할 거구요."
일반적으로 미국 가정에 대해 우리는 몇 가지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다. 그 중 한 가지는 미국 부모들은 상당히 냉정(?)하고 자녀들은 매우 독립적이라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자녀들이 독립적이라는 건 상당 부분 맞는 건 같다. 물론 모두가 다 그런 건 아니겠지만 말이다.
이곳에 와서 내가 만나 본 미국 부모와 자녀들은 한국 부모와 자녀 이상으로 정이 도탑고 따뜻한 가정들이 많았다. 아마도 방학을 맞은 자녀들의 짐을 나르면서 그동안 못 다한 이야기를 나누고 웃음꽃이 피어나는 가정들은 아마도 이런 가정들이 아닐는지.
미국 대학생들은 이제 긴 여름방학을 맞아 각자 집으로 돌아갔다. 이들은 모처럼 주어진 자유를 만끽하며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자신의 무한한 가능성과 잠재력을 실험하며 눈부신 청년의 때를 보내게 될 이들 대학생들 - 내게도 그 시절이 있었으련만 솔직히 이들이 부럽게 느껴지는 건 순전히 나이 탓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