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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토바이! 기름값 나오게 뭐하게 사냐? 자전거 타면 되지!"
아버지의 자전거는 일명 신사용 자전거로 알려져 있는 것입니다. 요즘 유행하는 MTB 자전거도 아니고, 허리 굽은 날렵한 사이클도 아닙니다. 장바구니가 달려 있는 여성용 자전거는 물론 아닙니다. 이 자전거의 특징은 중년층이 주로 이용하고, 짐받이와 야간 주행에 필요한 라이트가 부착되어 있으며, 핸들이 위로 들려 있어 허리를 굽히지 않고 탈 수 있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신사용 자전거는 신사만 타는 자전거는 아닙니다. 이 자전거를 실지로 주로 이용하는 분들은 바로 농부입니다. 신사용 자전거는 삽이나 괭이를 옆에 끼기 좋은 구조를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짐받이도 아주 튼튼해 쌀 한 가마니를 실어도 될 정도이기 때문입니다.
신사용 자전거는 느립니다. 보통 자전거가 몇 단의 기어와 가벼운 차체를 이용한 스피드를 추구한다면 아버지의 신사용 자전거는 특별한 기어 조작 장치도 없이 천천히 농부처럼 묵묵하게 나아갑니다. 천천히 느릿느릿 가지만 사이클은 진입도 불가능하고, MTB도 가기 힘든 논길, 진흙 길도 천천히 여유롭게 빠져 나갑니다. 신사용 자전거에는 체인 커버가 있어 흙이 바지에 묻지도 않고, 바퀴 커버가 빗물이 바퀴를 타고 올라오는 것을 막아줍니다. 또한 옆으로 세워두는 일반 자전거와는 달리 곧게 세워져 짐을 실기도 편합니다.
삽 하나를 자랑스럽게 옆에 끼고, 허리를 곧게 세우고, 모자를 쓰고, 장화를 신고, 논으로 향하는 아버지의 모습은 아버지라는 말을 떠올릴 때마다 아버지의 모습과 함께 연상되는 모습입니다.
몇 해 전 이 자전거가 고장이 났다면서 수리를 하러 가신다기에 형제들끼리 모여 이번 기회에 스쿠터를 사주면 어떠냐고 논의를 한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단 한마디로 거절 하셨습니다. 기름값 나오는 오토바이는 부담스럽다는 것이죠. 멀리 갈 일도 없는데 "자전거나 타면 되지 오토바이가 무슨 필요가 있냐"는 것입니다.
아버지는 오늘도 자전거를 타고 논으로 가셨을 것입니다. 논은 아버지가 매일 출근하는 직장입니다. 아버지는 땅 욕심이 없습니다. 그래서 아버지가 할아버지에게 물려받은 땅 3천 평은 단 한 평도 늘지도 줄지도 않았습니다. 그 땅을 일구어 평생을 사셨고, 지금도 살고 게시니 3천 평의 땅과 고된 노동이 자신의 생명과 다섯 자식을 키워낸 것이죠.
언젠가 아버지에게 농사를 그만 짓고, 땅을 팔고 편하게 살라고 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아버지 딱 한 말씀만 하시더군요. "땅은 파는 것이 아니"라고 말입니다. 이 말을 들은 후로 아버지에게 두 번 다시 땅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습니다. 땅은 파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시는 아버지에게 땅을 팔아서 편하게 살아보라는 말은 이미 말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아버지는 느릿느릿 자전거를 타고 그가 평생을 일했고, 지켰던 땅을 행해 가고 있을 것입니다. 이제 68살, 꽃을 피우고 홀씨까지 날려 보낸 민들레 꽃대처럼 늙으신 아버지, 그가 허리를 곧추 세우고 삽을 옆에 끼고 자전거를 타고 논으로 향하는 모습을 오랫동안 볼 수 있기를 희망해 봅니다.
덧붙이는 글 | 당신의 거래가 세상을 바꿉니다. "참거래 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