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 MBC
MBC 대하사극 <신돈>이 지난 7일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최종회 시청률은 TNS 미디어 리서치 조사결과 11.8%로 그리 높은 편은 아니었다. 하지만 마지막까지 초심을 잃지 않고 대장정을 완수한 제작진과 배우들의 노고에 시청자들은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고려사에서 요승의 이미지로만 알려진 신돈을 '미완의 개혁가'로 재조명한 실험적인 시선, 오랜만의 대하사극에 도전한 중견 배우 손창민·정보석의 혼신을 다한 열연과 신예 서지혜의 발견은 낮은 시청률에도 불구하고 <신돈>이 고정 팬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다.

미완의 개혁가 신돈이 남긴 것

마지막 회에서는 그동안 극을 이끌어왔던 중심인물들이 모두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하는 것으로 가슴 아픈 여운을 남겼다. 고려 말기 정치 구조의 개선을 통하여 사회 변혁을 꿈꾸던 신돈은 쓸쓸한 한줌 재로 사라지고, 노국공주의 죽음 이후 삶의 의지를 상실했던 공민왕도 비참하게 살해당한다. 그들이 추구하던 개혁은 결국 이루지 못한 꿈으로 남겨졌다.

신돈의 스토리는 조선조 중기의 개혁가였던 조광조의 이야기와 유사하다. 두 사람 모두 변화가 절실히 요구되던 때 시대적 소명을 띠고 정치 개혁을 주도했던 인물들이다. 지나치게 급진적인 변화를 추구하다가 기득권 세력의 반격으로 좌절했다는 점도 유사하다.

특히 그들의 가장 중요한 정치적 후원자였던 군주(공민왕·중종)와의 불화가 궁극적으로 목숨까지 잃는 결과를 초래했다는 사실도 같다.

신돈은 조광조와 달리 그동안 역사적으로 그다지 평가받지 못했던 존재였다. 고려 중기 서경 천도를 주도했다가 실패한 묘청처럼 승려 출신으로서 정치와 유착관계를 유지한 데 대한 유교적 사관에 따른 인색한 평가, 후계자인 우왕의 출생과 정통성을 둘러싼 정치 스캔들은 후세에 신돈의 이미지를 부정적으로 만든 가장 큰 원인이었다. '공민왕이라는 정치적 배경을 등에 업고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며 국정을 농단함으로써 고려 멸망의 빌미를 제공한 인물' 정도가 그간 신돈에 대해 알려진 상식이었다.

그러나 제작진은 승자의 기록에서 벗어나 사회 변화를 추구하던 개혁가로서 신돈의 일대기를 재조명했다. 그의 개혁은 결국 성공하지 못했지만, 공민왕과 신돈이 뿌린 씨앗은 정도전, 정몽주 등으로 이어져 후대의 개혁세력에 영향을 미쳐 정체되었던 고려 말기 역동적인 사회 변화의 물꼬를 트는 역할을 해주었다.

급변하는 국내외 정세 속에서 외세의 위협과 기득권 세력의 저항이라는 이중고에 시달리면서도 자주적인 근대화의 의지를 잃지 않았던 공민왕과 신돈의 꿈은 시대의 운을 타고나지 못해 좌절해야 했던 '위대한 패배자'들에 대한 연민을 드러낸다.

ⓒ MBC
배우들의 열연과 아쉬운 극적 구성

지난 해 하반기 MBC 최고 야심작으로 첫 출발하며 기대를 모았던 <신돈>은 막대한 제작비와 해외 로케이션에도 불구하고 방영 내내 10% 초중반의 시청률을 벗어나지 못했다. 올해 3월 한때 기록했던 16.9%가 <신돈>의 자체 최고 성적.

<신돈>은 초반 원나라와 고려를 오가며 등장인물들의 캐릭터와 시대적 배경을 소개하는 데 많은 시간을 소비해 시청자들의 시선을 모으는데 실패했고, 정하연 작가 특유의 웅장한 정치 사극과 무협·멜로적 요소를 아우르는 퓨전 사극의 분위기가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지 못하며 한때 KBS 외화 <징기스칸>에도 못 미치는 한 자릿수 시청률로 고전하기도 했다.

그러나 <신돈>은 인터넷을 통해 젊은 네티즌들의 지지를 받으며 새롭게 평가받기 시작했다. 낮은 시청률에도 불구하고 시청자 게시판에는 방영 기간 내내 배우들의 호연과 참신한 이야기 구조에 대한 찬사가 끊이지 않았고, 인터넷에서는 드라마에 대한 네티즌의 기발한 패러디와 합성물들이 인기를 끌기도 했다.

역시 <신돈>을 지탱한 가장 큰 원동력은 최선을 다한 배우들의 열연이었다. 80년대를 대표하는 꽃미남 스타 손창민은 지난해 <불량주부>에서의 깜짝 코믹 연기에 이어, 처음 도전한 대하사극 <신돈>에서 중후한 카리스마로 또 한 번 연기 변신에 성공하며 깊은 인상을 남겼다. 초반 현대적인 이미지가 강해 사극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평가도 있었지만, 특유의 호탕한 웃음과 강렬한 눈빛 연기로 인물에 대한 기록이 거의 남아있지 않은 신돈의 캐릭터를 훌륭하게 창조해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실패한 군주 공민왕을 비극적인 로맨티스트로 되살려낸 정보석과 당당한 여걸 노국공주를 호연한 신예 서지혜도 인상적이었다. 날카롭고 섬세한 인상의 정보석은 우유부단하면서도 상처받기 쉬운 영혼의 인물을 잘 표현해냈고, 연기력이 부족하다는 우려에도 불구하고 노국공주와 반야의 1인 2역을 잘 소화해낸 서지혜도 안방극장의 히로인으로서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무려 100억의 비용을 투입한 용인 세트장과 고려 말기 사회를 재현해낸 섬세한 고증은 안방극장의 블록버스터로서 현대 사극의 가능성을 다시 확인시켜주는 기회가 되었다. 기대만큼 높은 성적은 아니었지만, 시청률에 흔들리지 않고 초기의 기획의도를 지켜나간 점도 돋보인다.

최근 안방극장에 불고 있는 사극 열풍의 물꼬를 트는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 <신돈>은 올해 드라마 시장에서 중요한 한 축을 장식한 작품으로 기억될 것이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