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7일 <일요일 일요일 밤에>에 방송된 모유 수유 장면 때문에 논란이 있는 모양이다. 물론 진짜 논란인지는 알 수가 없는 노릇이다. 게시판에 한 개의 글이 올라 와도 그것을 엮어서 뉴스로 뿌리면 논란이 되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문제의 장면은 요가를 하고 있는 어머니에게 다가와 모유를 먹는 아기의 모습을 담은 것이었다. 어머니의 젖가슴이기 때문에 괜찮을 법하다. 그래서 방송 제작진은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일 법하다.
하지만 어느 분은 지하철에서 어머니들이 아기들에게 수유하는 장면을 보고 민망하다는 반응도 보인다. 똑같은 사안이라도 다양한 견해는 있을 수 있다.
방송법 제5조 ⑤항은 “방송은 건전한 가정생활과 아동 및 청소년의 선도에 나쁜 영향을 끼치는 음란·퇴폐 또는 폭력을 조장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했다. 제6조 ③항은 “방송은 국민의 윤리적·정서적 감정을 존중하여야 한다”고 되어 있다.
해당 장면이 건전한 가정생활에 역행하지는 않았을 것이고, 음란하거나 퇴폐적이라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여성의 젖가슴은 방송규제의 대상이지만, 어머니의 젖가슴은 대개 그렇지 않아 왔다. 적어도 모성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는 내용이라면 말이다. 그렇다고 어머니가 여자가 아니라는 말은 아닐 것이다.
또한 해당 방송 내용은 젖가슴의 전체가 다 드러난 것은 아니었다. 초점은 그 내용이 성적인 감각을 자극하는데 목적이 있거나 그러한 개연성이 있는가에 있을 것이다. 제작진은 이러한 점을 강변하고 있다. 그럼에도 방송에서 아무리 그러한 의도가 없었다고 해도 항상 주의를 하는 것은 필요하다.
그런데 한 가지 이상한 일이 있다. 전체 가슴이 다 드러난 장면이 있었는데도 논란이 전혀 없었던 사례가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 4월 23일 구족 화가 앨리슨 래퍼를 다룬 <시사매거진 2580>을 생각할 수 있다. 이 프로에서는 여성의 가슴이 다 드러났다. 물론 그녀는 어머니이기도 했다. 그러나 논란은 없었다. 이상하지 않은가.
이 프로그램은 팔, 다리가 없거나 짧고 손발이 붙어있는 ‘해표지증’의 장애를 안고 태어나 온갖 역경을 뚫고 화가로써 성공한 래퍼의 삶을 농밀하게 다루고 있다. 그런데 그녀의 누드 사진이 그대로 방송되었던 것이다. 그녀의 가슴은 전혀 모자이크나 다른 조치로 가려지지 않은 상태였다.
이를 보고 작가 방귀희씨는 'PD저널'에 기고한 글에서 이는 장애인을 무성의 존재로 보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즉, 장애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녀의 가슴을 전혀 가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는 또 하나의 차별이라고 할 수 있다. 만약 <일요일 일요일 밤에>에서 방영한 장면이 문제라면 정작 우선적으로 논란이 되었어야 하는 것은 래퍼의 누드 사진 방송 장면이었어야 할 것이다.
아니, 래퍼가 팔이 없는 비너스와 같은 조각으로 보여서 그냥 내보낸 것일까? 그것보다는 장애인을 바라볼 때, 아직도 성적인 욕망이 있는 존재로 바라보지 않으며, 성 정체성이 없는 것으로 여기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장애인 여성을 여성으로 보지 않는 경향은 사회적 편견을 갖게 만든다.
여성 장애인도 똑같은 여성이고 그녀들의 젖가슴은 똑같이 보호되어야 한다. 이런 점들 때문에 장애인들의 성적인 문제는 공공 담론에 오르지 못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오죽 하면 2004년 10월 제주 장애인 자립센터의 한 간사가 자신의 누드 사진을 공개하며 여성 장애인의 성적 소외를 표현했을까 싶다.
요컨대 <일요일 일요일 밤에>에서 방송한 장면과 <시사매거진 2580>장면 중 어느 것을 더 공공적 명분에 따라 주목을 해야 하는 것인지 생각해 볼 일이다. 꼭 우선의 문제가 아닐 수도 있지만, 진짜 논란의 대상은 무엇인지 말이다.
덧붙이는 글 | 데일리 서프라이즈에 보낸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