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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랜덤하우스중앙
저녁 7시쯤 집에 가는 길이었다. 편도 2차선이긴 하지만, 차가 뜸하게 다니는 동네 길에 승용차 한 대가 인도 쪽에 붙어 섰다. 운전자는 조수석 쪽으로 창을 내리더니 마침 지나가던 초등학교 4~5학년쯤 되어 보이는 여학생을 손으로 불러 길을 물었다. 아이가 차 가까이로 다가서서 뭔가 이야기를 나누기에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내가 가까이 가서 '어딜 찾으신다고요?'라면서 참견을 했더니, 운전자는 "됐다"며 차를 몰고 떠났다.

내가 좀 과민한가 생각도 해 보았지만 요즘 세상을 생각하면 조심해서 나쁠 일은 없었으리라.

최근 검거된 '어린이 상대 성범죄' 피고인들의 수법을 보면, "교회까지 짐을 들어 달라"는 식으로 접근해서 아이들을 유인하는 사례가 있었다. 사람을 의심하지 않고 어른을 믿는 아이들의 마음을 악용한 것이 더 잔인하게 느껴진다.

며칠 전 옆집이 발칵 뒤집힌 일이 있었다. 그 집은 맞벌이를 하느라 아이들끼리 있는 시간이 많은 집이었다. 모르는 어른이 전화를 해서는 부모님 친구인 것처럼 말을 둘러대면서 아이들의 이름과 학교, 집 주소, 부모님이 들어오는 시간 등을 캐묻더니, 급기야 전자자물쇠 번호까지 물었다는 것이다.

마침 우리 집에서 부침개를 했기에 옆집 아이들에게 전해 주려고 들린 아내가 전화 내용을 수상하게 여겨 전화를 받아들자 그냥 끊어 버렸다는 것이다.

세상이 여러 범죄로부터 안전하지 못하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는 것이지만, 특히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각종 범죄가 늘고 있어 부모들 마음을 어둡게 하고 있다. 방송과 신문을 통해 차마 입에 올리기도 힘든 사건들이 보도될 때마다 부모들은 마음이 덜컥 내려앉기 마련이다.

그렇다고 아이들을 세상에 내놓지 않고 무조건 끼고만 키울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런 부모들에게 실질적인 행동 지침을 이끌어 주는 책이 있어 소개해 올린다.

<내 아이를 범죄로부터 지키는 65가지 방법>은 일본의 '아이 위험 예방 연구소'에서 펴낸 책이다. 65가지 상황이 문답식으로 되어 있어 궁금한 곳부터 펼쳐 보면 실질적인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일본은 우리나라와 사정이 비슷한 점이 많은데다 심각한 어린이나 청소년 관련 범죄를 먼저 겪은 나라이기 때문에 그 경험에서 배울 부분이 만다. 이런 내용을 '우리 아이지키기 시민연대'에서 감수를 맡아 우리 실정에 맞도록 적지 않은 내용이 추가되었다.

옆집 할아버지까지 가해자로 나서는 마당이어서 이전처럼 "어른 말씀 잘 들어라"거나 "다른 사람을 도와줘라"고 가르치지도 못하는 사정이다. 반면 경계심을 키워주는 나머지 세상을 너무 불신하게 만드는 것은 아닌가 걱정도 들곤 한다.

이런 문제에 대해 이 책이 제시하는 방법은 "다른 사람이 도움을 요청할 때 친절하게 대하면서도 손을 뻗쳤을 때 닿지 않는 안전거리를 확보하면서 타인을 대하라는 것"으로 실질적인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이 책에 적혀 있는 표현처럼 "아이를 지키는 것은 어른의 책임"이다. 아이들에게 자신을 방어할 방법을 가르쳐 주는 것은 물론 아이들이 안심하고 뛰놀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할 책임이 분명 어른들에게 있을 것이다.

자원봉사와 시민운동이 발전한 일본답게 이 책은 이웃이 협력하고, 지역 사회에서 일종의 시스템을 구축할 것을 제시하고 있다. 이런 점은 우리도 주의 깊게 살펴보고 우리 실정에 맞는 대안을 세우고 실천해야 할 것이다.

우리 부부는 소심한 편이라 어린 딸아이에게 모르는 어른과는 가급적 대화를 하지 않도록 좀 방어적으로 가르치는 편이다. 지하철에서 아이를 데리고 가다가 귀엽다고 말을 거는 경우 아이가 대꾸를 하지 않으면 "모르는 사람하고는 얘기하지 말라고 배웠구나?"라고 하면서 이해하시고 그냥 가시는 분들도 계신다. 하지만 "어른이 말하는데 버릇없다"며 야단을 치거나 굳이 손에 사탕을 쥐어주고는 "고맙습니다 해야지"라고 시키는 분들도 있다.

'아이들의 안전'이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는 요즘 사정을 고려해 보면,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실질적인 안전 지침을 주어야 할 필요가 있고 어른들은 모르는 아이를 대할 때 아이들에게 일관된 지침을 줄 수 있도록 불필요한 접촉을 자제해 줄 필요가 있다.

아이가 귀엽다고 사탕을 주려 하거나 쓰다듬으려 할 때 옆에 있는 보호자에게 양해를 구하는 예의 정도는 확실히 지켜줘야 하지 않을까?

처음 보기로 들었던 승용차 운전자의 경우도 굳이 아이에게 길을 묻기 보다는 다른 어른들에게 물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경제도 어렵고 어른들의 어깨에 짐이 너무 무거운 시대지만 웃고 살아가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자라나는 아이들 때문이리라. 밖에서 고된 일과 중에 동료들과 잠깐 이야기를 나눌라치면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얼굴에 번져 나가는 미소를 보면서 그 마음을 느낄 수 있다.

이 소중한 우리 아이들이 생각하기도 싫은 범죄에 노출되어 있다. 부모들은 아이들의 안전에 보다 주의를 기울이고, 아이들에게 정확한 행동 지침을 주어야 할 것이다. 학교와 사회, 그리고 정부는 아이들의 안전을 위한 시스템 구축에 확고한 의지와 분명한 노력을 보여 주어야 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장익준 기자는 국어능력인증시험(KET) 시행본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내 아이를 범죄로부터 지키는 65가지 방법

요코야 마리 지음, 안경실 옮김, 김영희 감수, 랜덤하우스코리아(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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