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에 자주 들르던 인터넷 게시판이 한 시간 동안 접속이 안 된다면 사람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아마도 무척 갑갑해 할 것이다. 그럼 하루동안 그런다면? 아마 항의 소동이 벌어질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런데 실제로 이런 일이 일어났다. 하루, 이틀도 아니다. 6일씩이나 사전에 아무런 예고나 설명도 없이 한 게시판이 인위적으로 폐쇄됐다. 그것도 법을 수호해야 할 사법부에서 말이다.
발단은 '판사에 의한 직원 감금 사건'이 법원의 내부통신망에 오르면서부터다. 사법부에는 '코트넷'(이하 내부통신망)이라는 내부통신망이 있다. 지난 4월 20일 이곳에 "직원들을 7시간 판사실에 감금한 ㅈ판사를 처벌하라"라는 내용의 글이 올라왔다.
그러나 이 글은 게시 10분 만에 법원행정처에 의해 직권으로 삭제되었다. 삭제 이유는 "사실관계가 확인되지 아니한 상태에서 그대로 두는 것은 명예훼손의 소지가 있다"는 것이었다.
이때부터 내부통신망의 접속자가 폭주하기 시작했다. 얼마나 직원들이 접속을 많이 했으면 서버가 다운되기를 반복했을까.
법원행정처에서도 발 빠른 반응을 보였다. 4월 26일, 법원행정처장 명의로 사건결과 발표가 있었다. 내용은 "판사든 직원이든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일반 직원들은 즉각 반발했다. "일반직원이 판사를 그런 식으로 대했다면 과연 대법원이 그냥 넘어갔겠느냐"며 분통을 터트렸다.
다음날인 4월 27일, 법원노조는 사법부 최초로 대법원에서 '남부지방법원사태를 부당하게 처리한 대법원장 항의방문 및 규탄대회'를 열었다. 법원노조는 이날 오후에 규탄대회 동영상을 내부통신망에 올렸으나, 법원행정처는 이마저 즉각 삭제했다. 그것만으론 부족했는지 같은 날 오후 3시 4분, 내부통신망을 전격 폐쇄하기에 이른다.
다시 내부통신망이 개통될 때까지 법원은 암흑세계에 빠졌다. 자연스레 직원들은 법원노조 홈페이지로 몰려들었다. 평소 600여명이던 방문객이 순식간에 6000여명으로 불어났다. 10배 이상 늘어난 것이다. 직원들은 이곳에서 내부통신망 폐쇄를 강력하게 성토했다. 법원노조위원장과 사무총장은 삭발을, 광주지부장은 단식까지 결행했다.
법원행정처는 지난 2일 퇴근 무렵에서야 내부통신망을 다시 열었다. 그러나 내부통신망은 크게 훼손되어 있었다.
다시 열린 내부통신망, 그러나...
직원들은 오늘의 중요기사를 '조회수'와 '댓글'에서 확인한다. 조회수와 댓글이 많이 달린 글은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그런 글들 속에는 십중팔구 직원들의 관심을 불러 일으킬만한 내용이 들어있다. 그래서 직원들은 조회수와 댓글이 많은 글부터 '클릭'하게 된다.
그런데 새로 개통된 내부통신망은 조회수 기능을 아예 없애버렸고, 댓글 기능을 제한했다. 마치 '조자룡 헌 칼 쓰듯' 내부통신망 기능을 마음대로 바꿔버린 것이다. 세상에 어느 인터넷 게시판치고 조회수가 나오지 않는 곳이 있을까. 아마 이런 인터넷 공간은 없을 것이다.
또 대부분의 인터넷 게시판들은 댓글을 본문 글 바로 밑에 달도록 되어 있다. 당연히 그 글을 클릭해야만 댓글을 달고 읽을 수 있다. 법원내부통신망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법원내부통신망에는 예전부터 익명이 아니라 모두 실명으로만 글을 쓰도록 되어 있었다.
실명으로 쓰더라도 글작성자 이름이 게시판 첫 화면에 직접 노출되지 않았기 때문에 댓글을 다는데 별 부담을 느끼지 않았었다.
그러나 지금은 댓글을 달면 본문 제목 바로 밑에 댓글 제목과 작성자 이름이 바로 드러나도록 기능을 바꿨다. 법원직원들이 댓글 올리는 것을 조금이나마 제한하기 위한 목적인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대다수 법원 직원들은 자기 이름이 내부통신망 전면에 노출되는 것을 몹시 꺼려하고 있다. 이로 인해 댓글 방식이 바뀐 이후 부담이 된다며 댓글을 달 수 없다는 직원들이 상당수에 이른다.
더 큰 문제는 시대착오적인 게시판 운영 방침이다. 내부통신망을 개통하면서 게시판운영위원장은 '코트넷 게시판에 관하여 드리는 말씀'이란 안내문을 통해 그 동안 내부통신망을 폐쇄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설명하면서 앞으로의 운영계획을 밝혔다. 그런데 그 운영계획이란 것이 흡사 80년대의 언론사 '보도지침'을 방불케 한다. 그 일부를 소개한다.
"근거가 밝혀지지 않았거나 허위 내용의 글, 명예훼손이나 모욕의 소지가 있는 글, 법원 가족의 품위를 저해하는 저속한 글 등에 대해서는 게시를 허용하지 않는 입장을 일관되게 견지해나갈 것입니다. 나아가 위와 같은 '코트넷' 게시판의 설치 목적을 실현하고 공공성을 유지하기 위하여, 이를 각자의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한 사이버 시위 공간으로 이용하는 형태의 게시물, 타인의 의견을 전적으로 배제하는 일방적인 선전과 선동의 장으로 만드는 게시물 등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이유에서 게시를 허용할 수 없음을 분명히 알려드립니다."
내부게시판에 '보도지침' 내린 사법부
언론은 사회적 공기다. 공공성을 최우선으로 한다. 언론의 자유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내부통신망도 법원직원들에겐 내부 의사소통을 위한 언론이라고 할 수있다.
때문에 설령 어떤 글이 명백하고도 현존하는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하더라도 그 제한에는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한다. 그런데 법원행정처는 어떤가. 포괄적이고도 모호한 규정을 내세워 직원들의 표현의 자유를 박탈하려하고 있다.
법원수뇌부는 내부통신망을 '언론'이 아닌 '정보공유의 장' 쯤으로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래서 일체의 비판이나 선전·선동의 글은 내부통신망에 올려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러나 그건 잘못된 생각이다. 내부통신망도 분명히 언론이다. 법원직원 모두가 공유해야 할 공적재산이다. 관리자 몇몇이서 폐쇄하고 기능을 제한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언론의 주된 기능은 '비판'에 있다. 국가든 조직이든 언론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고서는 민주주의를 기대할 수 없다. 개인 생각의 자유로운 소통이야말로 인간의 가장 소중한 권리 중 하나다. 그런데 그걸 틀어막았으니 어찌 직원들이 분개하지 않겠는가.
지난 4월 20일, 남부지방법원사건이 불거진 이후부터 사법부는 심한 몸살을 앓고 있다. 사법부에서 '최초'라는 말이 연일 쏟아져 나온다. 사법사상 최초로 판사에 의한 사실상 직원 감금, 최초의 대법원청사에서의 항의집회, 최초의 내부통신망 폐쇄와 절름발이 개통, 최초의 촛불시위 등.
지금 사법부는 심한 내홍을 겪고 있다. 단식에 이어 직원들의 삭발이 계속되고 있다. 법원노조는 대법원에 사태해결을 위해 수십 차례 대화를 요청했다. 그러나 번번이 묵살만 당했다. 직원들의 바람은 한결같다. 대법원이 절름발이로 전락해버린 내부통신망을 하루빨리 정상화시키고 법원노조가 요구하는 '7대 요구사항'을 들어달라는 것이다.
하지만 오늘도 대법원은 문을 굳게 걸어 잠그고 있다. 이게 사법부의 현주소라면 과연 누가 믿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