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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께서는 우리가 주모를 구해내는 것을 바라지 않으시는군요.”
단사가 백렴에게 온 전서를 탁자 위에 놓으며 말했다. 정주 이름 없는 한 객잔을 통째로 빌려 머물고 있는 풍철한 일행은 기껏 열 명 남짓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전력은 웬만한 문파 정도는 휩쓸어 버릴 정도로 손가장이 아무리 용담호혈이라도 그들이 기습해 송하령을 구출하고자 한다면 그 결과가 어찌될 것인지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었다.
“영주께서는 우리도 모르는 사실을 이미 짐작하고 계셨던 거다. 손불이가 모용화천이었을 줄이야.....”
자신의 능력이 부족해 겸연쩍다는 듯 한 손으로 얼굴을 비비며 두칠이 불쑥 말을 던졌다. 풍철한이 고개를 끄떡였다.
“아마 개인적인 일로 균대위를 움직이고 싶지 않으셨을 게다. 아직 위험스런 상황까지 가지는 않았으니 서두를 필요는 없다. 문제는 조국명이다. 비원을 봐서는 신경조차 쓰고 싶지 않지만 그래도 지금까지의 정리를 봐서는 구해내는 게 도리일 듯 하다.”
풍철한은 난감한 듯 형제들을 바라보았다. 조국명과 백렴이 빠져 남은 인원은 모두 다섯 명. 허나 황원외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 점에 대해서는 동의할 수 없소. 비원이 균대위를 이용하고자 한 사실이 명백하게 드러난 이상 아무리 사적인 정리 때문이라 하지만 우리가 움직이는 것은 불가하오. 우리가 움직일 것이라 비원에서는 이미 예측하고 있을 것이오. 그것은 반대로 우리가 움직이지 않는다면 비원이 움직일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오.”
황원외는 고지식하다. 그는 자신의 신념과 결정에 매우 충실하다. 좀처럼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는 법도 없었지만 일단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면 그것을 고집한다. 그것은 확신이 없으면 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그것은 소제도 역시 마찬가지요. 우리는 조형을 버리지 않았소. 우리를 버린 것은 바로 그요. 조형은 매우 비열했소. 모용정과 독접을 탈출시키고 교묘하게 그녀들이 향한 곳을 우리가 알게 했소. 우리가 손불이, 아니 모용화천과 동귀어진하기를 바랬던 것이오. 그런 배신자를 위해 우리의 목숨을 가벼이 할 수는 없소.”
황원외의 의견을 두둔하고 나선 사람은 장삼이었다. 그는 사실 심한 배신감에 조국명이 앞에 있다면 손을 썼을 정도였다. 그런 조국명을 위해 자신들이 목숨을 걸고 움직인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 소리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풍철한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까지 형제처럼 지냈던 사이다. 이들의 입에서 이렇게 거센 반발이 나올 것이라 생각하지 못했다. 단사나 두칠도 표현은 않했지만 자신의 의견에 동조하지 않는 듯한 표정이다.
“자네들의 생각이 정 그렇다면 어쩔 수 있겠나? 없던 일로 하세.”
처음부터 썩 내키지 않는 의견이었다. 그럼에도 말을 한 것은 조국명과의 친분은 사실 나머지 위장들과는 남달랐기 때문이었다. 아니 차라리 구해내서 왜 그랬냐고 따지고 싶었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되었다. 그렇게 울상을 짓고 있을 필요는 없지.”
자신의 의견에 반대한 위장들이 자신의 눈치를 보고 있다. 미안한 표정들이다. 풍철한은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자... 그러면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균대위 전 인원을 이곳 정주로 집결시켰다. 영주께서 없는 동안에 움직여야 할까? 아니면 영주가 오시기를 기다려야 할까?”
“수시로 손가장을 기습이라도 하는 것이 어떻소?”
몸이 근질거린다는 듯 두칠이 말하자 단사가 고개를 가로 저었다.
“그것은 좋은 생각이 아닌 것 같아요. 이미 손불이도 우리의 움직임을 파악하고 있을 거예요. 그는 이미 중원의 절반 이상을 장악했어요. 헌데 이상한 것은 처음과는 달리 더 이상 공격하지 않고 있어요. 오랜 전통을 가진 문파는 되도록 건들지 않고 있죠. 그 의도가 무엇인지 아세요?”
“..............!”
“손불이의 목적은 무림이 아니에요. 그는 주씨 천하를 무너뜨리고 이 중원의 황제로 등극하려는 야심을 가지고 있어요. 오랜 전통을 가진 문파는 지금까지 황실이 바뀐다 해도 적극적인 반대를 하지 않았어요. 그저 적당히 타협하면서 자신들의 이익을 추구했던 것이죠.”
결국 손불이는 현재로서는 반대하는 문파라도 자신이 중원의 권력을 잡게 되면 자연히 따라올 것이란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지금 그들을 공격해 전력을 낭비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은 매우 현명한 것이다. 돌이킬 수 없는 관계가 된다면 나중에도 문제가 된다. 지금 필요한 것은 단지 그들을 움직이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우리와는 양립할 수 없는 관계지.”
장삼이 냉소를 터트리듯 말했다. 그것은 자신들이 공격하지 않아도 손불이가 자신들을 공격해 올 수 있다는 의미도 함축하고 있었다.
“물론이에요. 그래서 앞으로 우리가 할 일은 한 가지죠. 최대한 이곳으로 집결하고 있는 균대위의 인원 한 사람이라도 희생당하지 않게 보호하는 거예요. 최대한 우리의 힘을 응축시켜 놓아야 해요. 그 뒤에 영주를 기다릴 것인지 아니면 보고만 드리고 우리가 독단적으로 움직일 것인지 결정해야 하는 것이죠.”
단사의 분석은 매우 정확했다. 섣불리 움직이다가는 분산되어 각개격파를 당할 수 있다.
“최선의 방법은?”
“풍철한이 물었다.
“검저유혼 네 분과 육양수 어른을 바쁘게 해야 하는 것이죠. 동서남북 사방으로 흘러 들어오는 우리 식구들을 은밀하게 보호해 이곳으로 집결시키도록 만들어야 하는 일이에요. 오라버니 외에는 그분들에게 부탁할 사람이 없어요.”
“빌어먹을..... 또 나냐? 나라고 무곡 어르신을 마주하면 오금이 저리지 않는 줄 알아? 더구나 항상 나만 보면 못난 놈이라 하시는데.....”
무곡 노인의 개양대(開陽隊) 후임이 풍철한이다. 자신이 직접 가르친 바도 없으니 마음에 들지 않았을 것이다.
“욕을 해대도 형님 말이라면 따라주시지 않소?”
“끄응......”
풍철한은 신음을 흘렸다. 나설 사람은 자신 밖에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지만 노인네들을 설득시키려면 두시진 정도는 욕을 먹어야 할 것이다. 같이 가주면 좋으련만 이것들은 동생들도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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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용화궁과 구양휘가 전달한 제마척사맹의 제의는 받아들여졌다. 어차피 방백린이 패할 것이란 생각도 하지 않았고, 만에 하나 방백린이 패한다면 그들 역시 낯을 들고 이곳을 나서지 못할 것이란 생각 때문이었다.
모용화궁과 방백린의 만남에서 어떠한 말이 오고 갔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동석했던 구양휘마저도 그 점에 대해서는 입을 굳게 다물었다. 모용가의 내부 일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었지만 모용화궁이 최선을 다해 방백린을 설득했을 것은 틀림없었다. 그렇다 해서 이미 시위를 떠난 화살이 멈출 리는 없는 법.
모용화궁은 분명 기분이 상했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내색하지 않고 경과를 설명했다.
“장소는 천동 안 연무장(鍊武場)으로 결정되었소. 시각은 지금으로부터 여섯 시진 후. 분란의 소지를 없애고 정당한 승부를 위하여 양쪽 참관할 수 있는 인원은 스무 명이 넘지 않기로 하였소.”
“승부의 기준이나 규칙은 정하셨소?”
청송자가 차분하게 묻자 모용화궁이 다시 대답했다.
“사방 십장의 범위 안에 대(臺)를 설치하고 부상을 당해 더 이상 승부에 임할 수 없거나, 패배를 인정하면 끝나는 것이오. 또 한 가지는 설치된 대에서 밀려 떨어져도 패하는 것으로도 약조하였소.”
덧붙이는 글 | 5월 말경이면 단장기 연재를 마치게 될 듯 합니다. 감사의 뜻으로 그동안 성원해주신 독자분과 조촐한 모임을 가지려고 합니다. 자세한 내용은 단장기 게시판을 참고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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