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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의 한 매체가 수지 여사의 가택연금이 연장될 것이라고 정부 관리의 말을 인용해 보도했다.
미얀마의 한 매체가 수지 여사의 가택연금이 연장될 것이라고 정부 관리의 말을 인용해 보도했다. ⓒ 이러와디
우리에게 1980년 '5월 광주'가 있다면 미얀마(옛 버마)에는 1988년 '8월 랭군'이 있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 '우연한 역사의 필연'으로 도드라진 인물, 아웅산 수지(61) 여사가 있다.

미얀마 독립의 아버지인 아웅산 장군의 딸인 수지 여사가 개인적인 일로 입국한 것을 기점으로 폭발한 미얀마 민주화 운동은 그녀를 세상 한가운데로 나서게 했다.

이른바 '88-8-8민주항쟁'으로 인해 수지 여사는 이듬해 첫 가택연금을 시작으로 군사정부의 입맛에 따라 수시로 '박제'처럼 대외활동을 금지 당했다. 지금껏 4차례 장기 가택연금 조치가 있었으며 단기까지 치면 모두 7차례나 된다. 최근에는 지난 2003년 5월 30일 감금 이래 현재 외부와 극도로 단절된 생활을 하고 있다.

미얀마 군사정부는 지난해 11월 수지여사에 대한 가택연금을 6개월 연장 후 해제하겠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따지면 이달 말이다. 그러나 최근 현지에서 흘러나오고 있는 정보는 비관적이다. 가택연금이 연장될 것이 확실하다는 것이다.

미얀마 진보 월간지 <이러와디(The Irrawaddy)>는 지난 5월 8일 인터넷 판을 통해 '오는 5월 27일 만료되는 수지 여사의 가택 연금을 군사정부가 연장할 것이 확실하다'고 보도했다.

<이러와디>는 "수지 여사가 사무총장으로 있는 버마민족민주동맹(NLD)이 해외로 추방되거나 망명한 민주세력과 결탁해 정정을 불안하게 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군사정부 정보장관의 말을 인용했다.

89년 이후 7차례 가택연금

아웅산 수지 여사 약력

▲1945년 6월 19일 독립운동가 아웅산 장군의 딸로 랭군에서 출생
▲1962년 군부쿠데타 발발후 망명생활
▲1964년 영국 옥스퍼드 유학
▲1985년 교토대학 동아시아 연구소 방문교수
▲1988년 귀국후 민주화운동 투신,민주주의민족동맹(NLD) 결성
▲1989년 재판도 없이 1차 가택연금
▲1990년 연금 상태에서 총선 압승, 라프토인권상, 사하로프인권상 수상
▲1991년 노벨 평화상 수상
▲1995년 연금해제
▲2000년 2차 가택연금
▲2002년 연금해제, 유네스코 인권상
▲2003년 3차 가택연금
▲2004년 광주인권상 수상
▲2005년 4차 가택연금(6개월 연장)
8·8민주화운동으로 쟁취한 최초의 총선거에서 NDL이 압도적인 승리를 하지만 군사정부는 정권이양을 거부하고 선거를 무효화했다. 군사정부와 민주진영간의 대립각이 어느 때보다 날카롭게 서게 된다.

이듬해 7월 수지 여사는 계엄령 하에서 군사정부에 의해 초법적 가택연금을 당한다. 이와 더불어 미얀마 민주인사들의 망명러시가 시작됐다. 우리나라에도 지난 1999년 5월에 NDL 한국지부가 결성돼 조국 민주화를 위해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미얀마 군사정부가 수지 여사의 가택연금을 연장하려는 이유치고는 조잡하다. 구실에 불과하다는 사실은 지난해 갑작스런 수도 이전에서도 엿볼 수 있다.

랭군에서 북부 밀림 쪽인 핀마나로 수도를 이전하면서 미국의 침공을 피하기 위함이라고 여론에 슬쩍 흘린 것을 보면 조잡하다기 보다는 혹세무민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민주화 운동의 중심지인 랭군을 무력화시키기 위한 것으로 밝혀졌다.

국제사회가 인정한 미얀마 인권과 민주화의 상징

수지 여사에 대한 국제사회의 지지와 관심은 그녀에게 수여된 각종 상이 대변해 주고 있다. 노르웨이 라프토인권재단(The Rafto Foundation)은 1990년 가택연금 중인 그녀를 라프토인권상을 수여했다.

1988년 43세에 입국, 민주화 운동에 전념하다가 어느새 환갑을 넘긴 수지 여사.
1988년 43세에 입국, 민주화 운동에 전념하다가 어느새 환갑을 넘긴 수지 여사. ⓒ 아웅산 수지 홈페이지
1991년에는 유럽의회가 수여하는 사하로프(Sakharov)인권상을 수상했다. 이 상은 러시아의 과학자이자 인권운동가인 안드레이 사하로프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유럽의회가 제정한 상으로 남아공의 넬슨 만델라 전 대통령 등이 받은 바 있다.

같은 해 10월에는 노벨평화상을 받음으로써 그녀의 비폭력 민주화·인권 운동이 국제적으로 인정받은 동시에 미얀마에 대한 세계적 관심과 이목을 집중시켰다. 그녀는 노벨상 상금 130만 달러를 조국의 보건·교육기금으로 내놓았다.

우리나라가 제정한 국제인권상인 5·18광주인권상도 수지 여사의 공적을 기렸다. 5·18기념재단은 2004년 이 상의 다섯 번째 수상자로 수지 여사를 선택했다. 기념재단은 선정 이유에서 "80년 암울했던 우리 상황보다 더 비참한 상황에 처해있다"고 언급함으로써 미얀마 군사독재 상황과 수지 여사의 노력을 함축적으로 표현했다.

수지 여사의 자유와 미얀마 민주화는 언제쯤?

미얀마 민주화 운동에서 비릿한 피 냄새가 풍기는 것은 군사 독재정권으로부터 민주주의를 쟁취하는 과정에서 빚어지는 필연적인 충돌에 있을 것이다. 우리의 5월 광주와 87년 6월 항쟁, 그리고 필리핀이 그러했고 태국은 현재 진행형이다.

미얀마의 자유는 어디에...
미얀마의 자유는 어디에... ⓒ 아웅산 수지 홈페이지
미얀마는 이미 수천 명 이상의 사상자를 내는 유혈충돌과 수지 여사 암살미수 사건 등 수 많은 피를 뿌렸지만 민주화로 가는 길이 쉽사리 열리지 않고 있다. 그만큼 군사정부의 권력 유지에 대한 욕심이 강하다는 방증이다.

지난해 말 수지 여사의 가택연금을 6개월 늘렸던 군사정부는 또 다시 연장을 계획하고 있는 가운데 민주화운동의 또 다른 상징적인 인물인 살라이툰탄 박사가 미국에서 귀국한다는 소식으로 미얀마 민주진영이 술렁거리고 있다.

농학자인 살라이 박사는 지난 2001년 민주화를 요구하며 랭군시청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다가 붙잡혀 18개월 감옥 생활을 하고 미국으로 건너갔었다. 그는 오는 6월 19일 수지 여사의 생일날에 맞춰 귀국할 예정이다.

그는 5월 10일 기자회견을 열고 "나를 희생해 군사독재 정권의 종식을 쟁취 하겠다"며 비폭력 평화투쟁 재개 계획을 밝혔다. 상황이 이쯤 되면 수지 여사의 연금 해제는 좀처럼 쉽지 않아 보인다.

그동안 국제사회의 어떤 압력과 제스처에도 불구하고 군사정부가 '마이동풍'으로 흘려들었던 것은 그녀의 자유는 곧 미얀마 민주화의 기폭제가 될 것임을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당분간 자유로운 모습의 수지 여사를 만나기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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