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미군기지 확장반대 범국민대회가 열린 대추리는 거의 완벽하게 봉쇄됐다. 들어오는 이도 나가는 이도 경찰 방패 앞에서 좌절을 맛봐야 했다.
이날 아침 평택 대추리 마을 입구에는 변함없이 주민 몇명이 둘러앉아 '경계근무'를 서고 있었다.
다른 할머니 혹은 아주머니들과 함께 마을 입구에 앉아있던 한 할머니는 경찰버스 수십대가 주차한 마을 진입로를 계속 바라보면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 같았다. 올해 67세인 이 할머니가 기다리는 사람은 두 아들. 타지에 사는 아들들이 대추리에 남은 어머니가 걱정된다며 대추리에 들어오겠다고 기별을 해왔기 때문이다.
기자가 '아들들 오는데 맛난 음식 해주시냐'고 묻자 할머니는 "해줄 게 뭐 있어? 그냥 밥만 먹고 가는 거지"라고 답했지만 아들들이 온다는 생각 때문인지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했다.
그러나 이날 경찰이 막아선 대추리에는 아들들이 들어오지 못했다. 국회의원도 평택시내에서부터 마을까지 들어오는데 1시간 30분에서 2시간씩 걸렸다고 하니 '일반인'이 들어오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할머니는 "언젠가는 오겠지"라며 애써 실망하지 않으려는 기색이었다.
아들을 기다리던 어머니는
마을로 들어오는 것과 마찬가지로 마을 바깥으로 나가는 것도 허락되지 않았다. 대추리에서 내리로 이어지는 길은 물론 도두리로 통하는 유일한 도로도 경찰 버스에 막혀 차량이 드나들 수 없었다.
이날 오후 1시 30분쯤 집회를 마친 대추리 주민들과 범대위 관계자 등 시위대 100여명은 점심식사 뒤 오후 2시 50분부터 본정리에 있는 시위대에 합류하기 위해 풍물을 울리며 행진을 시작했다.
마을을 100m 정도 벗어났을까. 도두리를 거쳐 본정리로 가는 도로 길목에 대기하고 있던 경찰 200여명이 방패를 앞세우고 길을 막았다. 경찰과 10여분간 대치하고 있던 주민들은 다른 길을 택했다. 시위대는 대추리 1반 쪽으로 난 마을 주변 길로 행진을 계속했다.
시위대는 마을 주변 길을 천천히 행진했지만 경찰들은 바쁘게 뛰어다녔다. 경찰은 시위대가 가는 길 주변 논밭 두렁을 무거운 방패를 들고 뛰어다니며 시위대가 딴 길로 새는 것을 막았다.
시위대가 200m 가량을 행진해 미군기지 철망과 가까운 대추리 1반에 이르자 경찰은 더 바빠졌다. 미군기지 안에서는 헐레벌떡 뛰어온 경찰들이 배치됐고, 인근 밭에 200여명의 경찰이 뛰어들어 방패를 들고 시위대를 막아섰다.
이 과정에서 밭 주인 아주머니가 경찰들에게 흙을 뿌리며 욕을 하다 울면서 실신하기도 했다. "겨우 자란 새싹들이 경찰의 군화발에 밟히는 게 안타까워서"라는 것이 주변 사람들의 설명이다.
결국 시위대는 다시 발걸음을 돌려 마을 평화공원에 들어가 마무리 집회를 연 뒤 해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