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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경자 선생님과 가을 소풍. 앉아 계신 아버지 곁에 초롱초롱 눈매의 나는 선생님을 사랑하는 6살 배기였다.
원경자 선생님과 가을 소풍. 앉아 계신 아버지 곁에 초롱초롱 눈매의 나는 선생님을 사랑하는 6살 배기였다. ⓒ 황종원
1953년도 일이니, 무려 반세기가 지난 일입니다. 추억 속에 그리움으로 계신 대전 원동 초등학교 원경자 선생님의 이야기를 얼마 전 한 월간지에 써서 보냈습니다. 그 글을 본 선생님 친지가 선생님께 그 내용을 알려주었고, 저와 선생님이 연락이 닿아 만나 뵙게 되었지요.

제가 월간지에 쓴 글의 끝은 이렇습니다.

"제가 1학년에서 2학년으로 올라가던 해에 선생님은 결혼을 하셨습니다."

사실 아버지와 함께 결혼식장에 갔던 저는 예쁜 신부가 되신 선생님을 뵙고는 기쁘다기보다 야속하였습니다. 눈이 오는 그날, 여섯 살배기는 혼자 길을 가면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눈이 눈에 들어가 눈물일까요. 그냥 눈에서 흐른 눈물일까요. 제가 선생님을 가르침을 받았던 그 이후 선생님은 교직을 떠나셨고, 가정만을 지키며 살아오셨답니다.

선생님은 당신을 기억해준 제자의 마음을 교직 생활의 보람으로 생각하며 감사하다고 하셨습니다. 선생님을 미워했거나 사랑했거나 우리는 그렇게 젊은 날을 보냈습니다. 미우면 미운 대로 그리우면 그리운 대로 살아왔지요.

동창회를 열어서 선생님을 만날 수도 있고, 수소문해서 찾을 수도 있고 인기연예인들은 방송을 통해서 찾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런 인연의 줄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단지 제 마음 속에 그립게 자리하셨던 선생님은 어린 소년이 사랑했던 여인일 수도 있었겠네요. 그런데 세상의 인연은 그냥 흐르는 듯하여도 그 게 아니랍니다.

저는 그렇게 우연히 선생님을 만나 뵈었지요. 선생님을 마음에 그리워하면서도 나서서 찾지 않는 수많은 제자들의 마음은 볼 수 없기에 이렇게 나서 준 제자가 유독 고맙게 생각하시는 선생님의 마음에 오히려 저는 송구스럽고 감사했습니다.

어느 날, 선생님이 전화를 주셨습니다.

"내가 자네가 보내준 책들을 작은 선물과 함께 포장을 해서 동문 모임에 갔었어. 대전 사범 동문 중 막둥이가 이제 칠순 잔치를 하게 되어 만나게 되었는데… 22명 모두가 다 모였어. 모두에게는 책을 못 주고, 부족한 대로 주고서 내 이야기를 했지. 다들 나를 얼마나 부러워했다고…. 선생님을 찾아준 제자가 부럽다는 거야. 자기들은 그런 제자들이 없었다는 거야. 고마워. 자네 때문에 내가 이렇게 친구들에게 부러움을 사고 붕붕 떠서. 내게 사촌 언니가 계신데 자네 책을 한 권 드렸지. 자네에게 전화를 걸겠대. 전화가 와도 놀라지 말고…."

"놀라긴요. 선생님. 제가 그 분에게 전화를 올릴 게 번호만 알려 주세요."


선생님은 제가 초등학교 1학년 담임 시절에 찍었던 사진을 드렸더니, 그 사진을 TV스탠드에 붙여 놓고 매일 보시면서 제자를 위해 기도하신다고 합니다. 또 몸이 불편한 제자의 아내를 위하여 기도를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지난밤 저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갑자기 그리워져서 나도 모르게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었답니다. 아버지의 자전거 짐받이에 여덟 살배기 내가 앉아서 어두운 시골길을 가던 때의 아버지에 대한 추억이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어머니를 모시고 병원에서 약국으로 가는 길에 힘들어하시던 어머니의 모습도 떠올랐던 것입니다. 이제는 품에 안아드릴 수 없는 두 분에 대한 생각에 슬펐던 것입니다. 살아 계실 때 정을 다 드리지 못했으니까 지금 후회된다한들, 무슨 소용이랍니까.

이제 초등학교 담임선생님께서는 어머니가 되시어 내게 나타나셨습니다. 내가 그 분께 드린 것은 "선생님, 보고 싶습니다"라는 말 정도였지만, 선생님은 그 말 한 마디를 듣고는 "세상을 산 보람이 있었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한 번쯤 그리운 분을 찾아뵈어야 합니다. 우리에게 진정한 사랑을 주셨던 선생님을 찾아뵈어야 합니다.

이렇게 저는 선생님의 사랑으로 호강하고 있답니다. 선생님께서는 당신이 가지신 것을 아깝다고 생각하지 않으시고 이렇게 모두 사람들에게 나눠주시며, 특히 제자 자랑에 여념이 없으십니다.

지난 설에는 선생님은 아내에게 주라며 광천김과 화장품을 보내주셨습니다. 선생님께서는 공양과 효도를 받으시며 노후를 보내야 할 나이에도 불구하고 가진 것을 주시고 사십니다.

지금 저는 세상을 떠나신 어머니의 사랑까지 선생님께 받고 있으니 신바람이 납니다. 내리 사랑은 이렇게 끝이 없습니다. 주신 사랑만큼 내가 보답할 길은 무엇인가요. 사랑에는 사랑을 드려야하지요.

봄이 가고 있습니다. 스승의 날이 다가 옵니다. 선생님께 전화를 드립니다.

"선생님, 저예요. 건강하시죠?"
"늙은이 건강이야. 그렇지. 다리가 좀 아플 뿐이야."
"어른들은 늘 그렇게 말씀을 하시지요. 편찮으셔도 늘 그렇게 말씀하시지요. 봄나들이 조심하시고요. 저는 전화로 문안 여쭙지만, 자제 분들에게 효도 받으세요."


부군을 먼저 보내신 선생님께서는 자제 분과 떨어져서 홀로 살고 계십니다. 이제 칠순이 넘은 노인이 되셨어도 제 마음 속에는 스물 두 살 처녀 선생님이십니다. 전화가 끝났습니다. 저는 이제야 혼자 말을 합니다.

"선생님. 제가 선생님을 사랑했던 것을 알고 계셨나요."

제 마음은 초롱초롱 여섯 살배기입니다. 오십 년이나 넘은 사랑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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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성본부 iso 심사원으로 오마이뉴스 창간 시 부터 글을 써왔다. 모아진 글로 "어머니,제가 당신을 죽였습니다."라는 수필집을 냈고, 혼불 최명희 찾기로 시간 여행을 떠난 글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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