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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쇄원 입구의 대나무 숲
소쇄원 입구의 대나무 숲 ⓒ 이종혁
봄볕이 따사로운 날에 소쇄원을 방문했습니다. 소쇄원은 국가사적 304호 <민간정원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예전에는 방문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아서 여유롭고 편안하게 둘러볼 수 있었으나, 문화재로 지정되고 많이 알려지면서 주차장도 크게 만들어지고, 작년부터는 입장료도 받고 있습니다. 방문한 날도 사람들이 많아서 좀 복잡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문화유산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계신 김희욱 선생님(저서:어느 기독교인이 사랑한 불교문화)과 함께 가서 안내서에서는 찾기 힘든 몇 가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입구에서 바라보는 광풍각(光風閣). 비가 온 후 해가 뜨며 부는 청량한 바람이라는 뜻으로 이름이 지어졌습니다.
입구에서 바라보는 광풍각(光風閣). 비가 온 후 해가 뜨며 부는 청량한 바람이라는 뜻으로 이름이 지어졌습니다. ⓒ 이종혁
소쇄원은 16세기 말에 양산보(1503~1577)가 만들었다고 합니다.
조광조의 제자로 17세에 과거에 급제하였으나, 그 해의 합격자가 너무 많아 인원수를 조정하면서 탈락했다고 합니다. 몇 년 후 스승인 조광조가 유배를 오고 사약을 받아 운명을 달리하면서 현실 정치에 대한 강한 환멸을 느끼게 되고 지방에서 삶을 살아 갑니다.

30대 중반부터 만들기 시작한 소쇄원은 10년 이상 걸려서 만들었다고 하는데, 입장권에는 3대에 걸쳐서 70년 동안 이룬 정원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담 아래로 개울이 흐르는 오곡문((五曲 門), 무산12곡 중의 오곡을 형상화 한 모습의 일부라고 합니다.
담 아래로 개울이 흐르는 오곡문((五曲 門), 무산12곡 중의 오곡을 형상화 한 모습의 일부라고 합니다. ⓒ 이종혁
소쇄원은 장성, 나주, 담양 부근의 호남 사림파들의 사랑방 역할을 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조선 초기에는 유학이 민간에까지 널리 퍼지지 못했는데 16세기~17세기경에 민중들에게 많이 알려졌습니다. 이 시기는 사림들의 문학이 대중화 되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광풍각 내부의 '소쇄원도'가 예전의 모습을 가늠하게 합니다.
광풍각 내부의 '소쇄원도'가 예전의 모습을 가늠하게 합니다. ⓒ 이종혁
우선 소쇄원 입구에 들어서면 멋진 대나무 밭이 반겨줍니다. 입구 근처의 조그만 우물을 구경하고 흙담장 길을 따라서 올라가면서 계곡과 광풍각을 조망하면 오곡문에 다다르게 됩니다.

'무산 12곡'은 이상적인 세계를 노래한 것이라고 하는데 소쇄원은 이중 '제 5곡'의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라고 합니다. 오곡문의 이름도 여기서 유래된 것인데 담장 아래로 개울이 흐르고 옆으로는 사람이 다니는 길이 나 있고 그 담장 밖으로는 우물이, 담장 안으로는 외나무 다리가 있어서 예사스럽지 않지만 절묘한 풍경을 만들어 냅니다. 담장에는 오곡문이라고 쓰여있는데 문의 모양은 남아있지 않고 그냥 사람다니는 길만 나 있는 모습입니다.

제월당((霽月堂))의 모습. 비개인 하늘의 상쾌한 달이라는 의미로 이름지어졌습니다.
제월당((霽月堂))의 모습. 비개인 하늘의 상쾌한 달이라는 의미로 이름지어졌습니다. ⓒ 이종혁
오곡문에서 계곡 반대쪽으로 가면 제월당과 광풍각이 있습니다. 제월당은 공부를 하는 곳이었고 광풍각은 사랑방의 역할을 했습니다. 제월당은 '비개인 하늘의 상쾌한 달'이라는 의미로 이름지어졌고, 광풍각은 '비가 온 후 해가 뜨며 부는 청량한 바람' 이라는 뜻으로 이름지어졌습니다. 담장길을 따라 오곡문에 이르고 여기서 제월당을 거쳐 광풍각에서 계곡을 바라보다 계곡으로 내려가 풍류를 즐기는 것이 소쇄원을 제대로 즐기는 코스라고 합니다. 광풍각에는 소쇄원도가 있어서 이전의 모습을 가늠할 수 있습니다.

소쇄원을 돌아보는 입구의 돌담길
소쇄원을 돌아보는 입구의 돌담길 ⓒ 이종혁
옛 선비들은 이 계곡에서 물위에 술잔을 띄워 돌려가며 술을 마시기도 했고, 바위위에서 바둑을 두고 의자모양의 바위에 앉아 풍류를 즐겼다고 합니다. 어떤 바위에서 그렇게 조상님들이 풍류를 즐겼을까 한참을 살펴보았는데 그 장소를 쉽게 추측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오곡문 아래로 흘러내려 온 물이 작은 폭포를 이루어 떨어져 내립니다.
오곡문 아래로 흘러내려 온 물이 작은 폭포를 이루어 떨어져 내립니다. ⓒ 이종혁
"소쇄원은 아직까지 '옛 선비들이 자연친화적으로 자연과 함께 사는 문학을 하며 지낸 곳'이라고 알려진 부분이 많습니다. 하지만 이곳을 문학의 세계가 아닌 성리학의 세계로 바라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현실정치에서 멀리 떨어져 성리학의 이상세계, 무릉도원을 현실세계에 구축해 놓은 것으로, 자연과 절묘한 조화가 이루어 진 것이지요. 이곳 정원의 설계는 우리나라 건축에서도 굉장히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기와담장 위에 피어난 들꽃
기와담장 위에 피어난 들꽃 ⓒ 이종혁
선생님의 말씀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지만 조상들의 지혜를 지금에 와서 일일이 다 분석하기는 힘들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단지 소쇄원을 한 바퀴 돌면서 다가왔던 아름다운 풍경들이 자연을 이해하고 그 속에서 더 가깝게 살았던 우리 조상들의 모습을 조금이나마 짐작하게 했습니다. 자연을 잃고 살아가는 현대인, 층층이 높이 쌓은 아파트를 벗어나 자연과 함께하는 건축을 통해서 우리의 사는 모습을 되돌아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광풍각 앞의 계곡
광풍각 앞의 계곡 ⓒ 이종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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