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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5월 15일 굳게 닫힌 교문
2006년 5월 15일 굳게 닫힌 교문 ⓒ 김환희

전국의 초·중·고 대부분의 학교가 제25회 스승의 날을 재량 휴업일로 결정한 가운데 월요일 한 주가 시작되었다.

출근길 한 초등학교의 굳게 닫힌 교문을 보며 정작 기뻐해야 할 선생님의 기분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것 같았다. 꼭 이렇게까지 해야만 하는 현실에 마음이 무거워지기까지 했다.

지난 주 금요일 종례 시간을 통해 '개인적인 꽃이나 선물을 일절 준비하지 말라'라는 교장선생님의 지시를 전달한 까닭일까. 등교를 하는 아이들의 발걸음은 가벼워 보이기까지 했다.

이미 보도를 들어서 알고 있는 탓인지 예전까지만 해도 스승의 날이면 학교 등교길에 장사진을 이루었던 꽃을 판매하는 사람들도 올해에는 찾아 볼 수가 없었다.

꽃 장사 사라진 등교길

교무실 문을 열자 몇 명의 선생님들 책상 위에만 졸업생들이 보낸 꽃바구니가 놓여 있었다. 오늘이 '스승의 날'이라고 믿기가 어려울 정도로 모든 선생님들은 평소 때와 마찬가지로 수업준비와 업무에 열중하였다.

그리고 졸업생들로부터 걸려 온 전화를 받으며 좋아하는 선생님의 모습이 오늘따라 더욱 행복해 보이는 이유는 왜일까. 어쩌면 그건 수확의 결실을 앞둔 농부의 마음과 같으리라 본다. 불철주야 아이들을 위해 최선을 다하신 선생님. 만에 하나라도 욕심이 있다면 아이들이 잘 되기만을 바라는 것뿐일 것이다.

아침 10시. 직원조회를 간단히 하고 난 뒤 총학생회 주관으로 스승의 날 행사를 가졌다. 행사 분위기가 여느 해보다 다소 엄숙했으나 '스승의 날' 노래를 불러주는 아이들의 목소리만큼은 더 우렁찼다. 아마도 그건 선생님의 사기를 충전시켜주기 위한 아이들의 배려로 여겨졌다.

행사가 끝나고 각반 실장과 부실장은 오늘의 행사 일정에 따라 선생님과의 대화 시간을 갖기 위해 담임선생님과 부담임선생님을 찾기에 분주하였다. 내심 이 시간을 통해 아이들이 선생님을 위해 선물을 준비했을까봐 걱정이 되었다. 그렇다고 실장을 불러 물어볼 수도 없는 일이었다.

잠시 뒤, 나를 데리러 실장이 교무실로 찾아왔다. 매년 스승의 날마다 느끼는 사실이지만 교사인 나에게 이 시간만큼 부담이 되는 날은 없다. 한 시간 동안 아이들과 무슨 이야기를 나눌 것이며 설령 훈화를 해 준다 할지라도 아이들은 나에게 또 다른 무언가를 요구할지도 모른다.

칠판에 붙어있던 것은 아이들의 마음

실장의 손에 이끌려 교실 앞에 다다르자 몇 명의 아이들이 교실에 있는 다른 친구들에게 신호를 보내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늘 그랬던 것처럼 아이들은 선생님인 나를 위해 깜짝 쇼를 준비한 것 같았다.

2006년 5월 15일 칠판 위에 날개를 달자
2006년 5월 15일 칠판 위에 날개를 달자 ⓒ 김환희
교실 문을 열자 아이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일제히 박수갈채를 보내며 '스승의 날'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칠판을 보는 순간 하마터면 나는 소리를 지를 뻔하였다.

이럴 수가 있는가? 교실 칠판 위에는 형형색색의 종이들이 빽빽하게 붙어 있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종이마다 우리 반 모든 아이들이 쓴 각기 다른 내용의 글이 적혀 있었다. 그러자 놀란 내 표정을 본 한 여학생이 우스갯소리로 말을 했다.

"선생님, 저희들 돈 한 푼도 걷지 않았어요."
"이 녀석들이 농담을 해도…."
"선생님께 저희들이 숙제를 내드릴게요."
"숙제를? 그게 뭔데? 어려운 건 아니지?"
"그럼요. 초등학교 1학년도 할 수 있어요."
"그렇다면 자신 있지. 아무튼 숙제가 뭐니?"
"선생님, 저희들이 쓴 글 빠짐없이 읽어보시고 칠판 위에 있는 색종이 다 떼고 가세요."
"뭐라고? 이 많은 것들을 어떻게 하라고? 설마?"

아이들이 낸 숙제... "얘들아, 사랑해"

2006년 5월 15일 아이들의 사랑이 넘쳐요
2006년 5월 15일 아이들의 사랑이 넘쳐요 ⓒ 김환희
아이들의 순수한 마음들이 칠판 위에서 날개짓하고 있는 듯했다. 아이들은 자신들의 마음 하나 하나를 칠판 위에 가득 담아둔 것이었다. 그리고 그 마음 하나 하나를 내 마음 속에 소중히 간직하라는 뜻으로 내게 숙제를 준 것이었다.

아무튼 스승의 날인 오늘 선생님들 중에 내가 제일 늦게 퇴근을 했다. 아이들의 숙제 때문에.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 세상 어떤 선물보다 귀중한 선물을 아이들로부터 받았다는 사실이다.

"얘들아, 고맙다. 그리고 사랑한다."

2006년 5월 15일 "얘들아, 고맙다. 그리고 사랑한다."
2006년 5월 15일 "얘들아, 고맙다. 그리고 사랑한다." ⓒ 김환희

덧붙이는 글 | 한교닷컴과 강원일보에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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