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충규 시인의 세 번째 시집 <물 위에 찍힌 발자국>(실천문학사)이 출간되었다. 서울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한 김충규 시인은 1998년 문학동네 신인상으로 등단한 시인이다. 시집<물 위에 찍힌 발자국>을 펼쳐들면 생의 비명과 죽음의 냄새로 흥건하다. 기실 김충규의 이러한 시적 사유는 첫 시집 <낙타는 발자국을 남기지 않는다>(천년의시작·2002)와 두 번째 시집<그녀가 내 멍을 핥을 때>(문학동네·2003)에서부터 일관되게 지속된 것이었다.
첫 시집 <낙타는 발자국을 남기지 않는다>에서는 '무덤'과 '사막'의 이미지로, 두 번째 시집<그녀가 내 멍을 핥을 때>에는 '멍'과 '피'의 이미지로 죽음의 사유는 변주되고 확장되어 나타났다. 이번 시집에 이르러 김충규 시인은 생의 고통과 상처에 울부짖으면서도 한 편으로는 그걸 껴안으며 삶의 새 향방(向方)을 찾는 지난한 모색의 과정을 보여준다.
"저 일몰이란 것, 밤이 되기 전에 보여주는/ 하늘의 통증 빛깔이다/ 통증을 참으며 밤의 캄캄함을 견디는 하늘의/ 살갗에 돋아나는 별은 통증의 열매이다/ 지상에서 통증 가진 사람만이 피멍 들도록 입술 깨물며/ 별을 더듬으며 시간의 잔혹을 견뎌낸다/ 자궁을 막 빠져 나온 신생아는/ 그 어미의 통증 덩어리인 것,/ 신생아가 태어나자마자 우는 것도/ 이내 눈뜨지 못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나무에 열린 열매를 쳐다보며/ 입 속 가득 달콤함의 침이 고인 사람아,/ 그 열매는 나무의 통증인 것/ 통증으로 쑤시는 생애를 살아온 또 다른 사람에게/ 그 열매는 피가 굳어버린 멍으로 보인다"
(시 '통증' 전문)
위 시에서 시인은 세상 모든 것을 통증이라 부른다. 상처라고 본다. 일몰은 하늘의 통증 빛깔이고, 하늘의 살갗에 돋아나는 별도 통증의 열매이고, 신생아는 그 어미의 통증 덩어리, 열매도 나무의 통증, 시간의 잔혹을 견뎌내며 피멍 들도록 입술 깨물며 별을 더듬는 사람도 통증이다. 이런 도저한 비관적인 사유는 어디에서 기인 된 것인가? 인간은 "시간의 잔혹을 견뎌내"야 하는 한계적 존재라는, 죽음에 관한 인식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시립 화장터에서 큰형의 뜨거웠던 생이
한 줌의 뼛가루로 고요해지는 것을 목격한 뒤,
불멸의 꿈은 한순간 하얗게 소멸되었다
불멸을 꿈꾸었던 동안 나를 지탱해온 것은
죽음에 대한 집착이었음을 고백한다
(시 '내 영혼을 향해 공포탄을 쏜다' 부분)
시인의 개인사적인 일은 잘 모르지만 이 '죽음에 대한 집착'은 시인의 "몇 번 죽을 고비를 넘겨/이미 덤으로 살고 있는 내" 몸의 아픔에서 비롯된 듯하다. 앞서 지적한 세상을 '무덤'과 '사막'으로, '멍'과 '피'로 읽게 만든 것도 죽음의 사유에 의한 결과로 보인다. 그래서 시인은 현재의 삶을 "사후(死後)의 어느 한적한 오후에/이승으로 유배 와 꽃멀미를 하는" 것으로 인식하고, 또 "식구들 모두 잠든 깊은 밤에/서재에 희미한 불 켜놓고 유서를 쓰는 사내"의 자기 모습을 바라보기도 하는 것이다. "다시 태아로 돌아가고픈 열망"의 두려움과 "내 속의 격렬한 시위"를 '뼈악기'로 연주하는 것이 시집 <물 위에 찍힌 발자국>에 있는 60여 시편들이다.
앞서 발간한 두 권의 시집에 비해 이번 시집이 갖는 차별성은 비극적인 죽음의 사유를 넘어 생의 새로운 의지를 싹 틔우고 있음이다. "길을 노래하기 위하여 길 위를 걷는다/한번 걸어간 길은 내 속으로 사라지고/남는 것은 발자국뿐이다"('길')라고 노래하지만 그 길 위에서 시인은 '물의 노래'를 만난다.
무수히 쏟아져 강의 어둠을 표백하는 햇빛들,
그 햇빛들을 제 속으로 아득하게 끌어들여
물고기들의 길을 밝혀주는 강,
고요의 수초가 소리 없이 꽃을 피우는
그 밑바닥에 내 누울 자리 하나 마련하고 싶다고
중얼거린다 물살의 애무를 받으며
강을 대신하여 노래를 부르고 싶다
사방의 미물이 감응하는 노래를
가락에서 물 뚝뚝 떨어지는 노래를
(시 '물의 노래' 부분)
이번 시집에서 가장 빈번하게 등장하는 것이 재생의 상징인 물의 이미지다. 표제 시 외에도 '물결 속에' '물속' '물이랑' '내 몸 속의 물고기들' '물의 노래' '물짐승' '이상한 우물' '서해에서' '물의 종소리' 등의 시 제목들이 물과 관련된 것들이다.
인용한 시에서 보듯 시인은 이제 "사방의 미물이 감응하는 노래를" 부르겠다고 한다. 이 '물의 노래'를 부르겠다는 것은 시적 화자가 꽃 타는 지독한 냄새를 넘어서고, 활활 타는 신열의 몸을 이미 지나왔음을 의미한다.
'시인의 말'에서 "이제는 신발을 바꿔 신어야겠다,/ 어디로 갈 것인지는 나도 모른다,"고 하지만 그는 이제 생의 지독한 상처와 절망의 탄식에서 벗어난 듯하다. 김충규 시인의 다음 시적 행보는 생명의 노래, 물의 노래가 될 것임을 나는 확신한다. 시집 <물 위에 찍힌 발자국>의 맨 마지막 시 끝 구절이 그걸 분명히 암시하고 있다.
이승이 가혹한가,
소금을 꾸역꾸역 넘길지라도
그러나 아비는 울면 안 된다
(시 '아비' 부분)
뱀띠로 필자와 동갑내기인 김충규 시인과 술 한 잔 나누고 싶다. 술상을 앞에 두고 그와 하룻밤을 보내고 나면 인생 공부의 큰 매듭 하나를 가질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