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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 후 찍은 사진. 맨뒤 오른쪽에 앉은 이가 윌마씨다. 결막염으로 오른쪽 눈이 많이 부었다.
식사 후 찍은 사진. 맨뒤 오른쪽에 앉은 이가 윌마씨다. 결막염으로 오른쪽 눈이 많이 부었다. ⓒ 고기복
"여보세요. 여기 고용안정센터인데요. 필리핀 사람이 한명 있는데, 용인 이주노동자쉼터에 신세지면 안 될까요?"
"아, 네. 안될 건 없지만 우리 쉼터엔 대부분 인도네시아 사람들이라 다른 나라 사람이 쉼터에 오래 기거하면 불편할텐데, 하루 이틀이면 문제될 거 없겠죠. 그렇게 하세요."


쉼터 이용 문의에 대해 나는 고용안정센터를 통해 근무처변경을 하는 필리핀 출신 이주노동자가 잠시 기거할 곳이 필요하다는 뜻으로 받아들였고 그렇게 하라고 허락했다.

그런데 한 시간여 뒤 모 업체 사장이라는 사람과 함께 우리 쉼터에 온 사람은 필리핀 출신 여성이주노동자였다. 남자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난감했다. 국적도 다르고, 성(性)도 다른 사람을 쉼터에 혼자 둔다는 게 여간 부담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게다가 한국에 온 지 일 주일도 되지 않은 사람이었다.

아들, 딸을 두고 있는 기혼 여성으로 이름은 윌마. 99년부터 2년간 한국에 체류했던 경험이 있다고 했다. 그렇다고 해서 한국에 연고가 있거나 한국 물정에 밝은 것이 아니었다.

급하게 짐을 싼 듯 옷걸이 채로 들고 온 청바지와 옷가지 몇 벌은 가방에 넣지도 않고 있었고, 손에는 손수건을 들고 있었는데 손이 자주 얼굴로 가고 있었다. 옆에서 있던 사장이 "결막염이라고 해서 약을 사 먹였어요"라고 설명을 해 줬다. 한 쪽 눈이 심하게 부어 있었고, 눈곱이 많이 끼어 있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업체 측에 한국에 와서 일도 시작하지 않은 사람을 데리고 온 이유를 물었다.

"연수생을 2명을 신청해서 기다리는 동안 회사 상황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신청한 사람이 한국에 와서 국내 적응교육을 마친 다음 회사로 데려오긴 했는데, 고용할 형편이 되지 않아 고용안정센터로 데리고 갔더니 남자 한 명은 다른 곳으로 보내고, 한 명은 여기로 데리고 가라고 하더군요."

업체 측에서는 고용허가제로 입국한 사람을 산업연수생으로 알고 있을 만큼 외국인 인력 제도에 대해 무지했다. 현재 외국인 노동자가 한국에 취업할 수 있는 제도는 고용허가제도와 산업연수생제도가 있지만, 내년 1월1일부터는 고용허가제로 일원화된다.

고용하기로 하고 데려와서 몇 달 사이에 상황이 바뀌었다고 아무 연고도 없는 사람을 고용안정센터로 데리고 온 업체나 외국인력 고용과 관련한 주관부서인 노동부에서 제도 시행된 지 몇 년인데 여태 이런 경우를 위한 아무런 대책이 없다는 게 아쉬웠다.

어찌됐든 윌마씨에게 쉼터에 독립적인 공간을 마련해 줄 수 있으나, 현재 쉼터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인도네시아 남자들뿐이라는 사실을 전하고 이용할지 여부를 물었다. 숫기가 없이 머뭇거릴 뿐 확실한 의사표시가 없었다. 결국 집으로 데려가기로 했다.

사람을 들이는 입장이나 남의 집에 가는 입장이나 낯선 탓에 일정 부분 불편한 부분이 있겠지만, 그럴 때마다 그런 불편을 덜어주는 건 아이들이다. 아이들은 그런 불편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처음 보는 언니를 가만 놔두지 않는다.

부모 입장에서는 혹시 결막염이라도 옮을까봐 걱정이 되기도 하는데 윌마씨의 손을 잡아끌고 피아노 앞에 앉혀 놓고는 "이거 메롱 메롱이다" "이건 ○○다" 하는데 옆에서 지켜보는 사람이 다 산만하다.

저녁을 먹고 난 후, 궁금증이 많은 아이가 물었다.

"언니는 왜 눈이 아파?"
"아이들이 보고 싶어 너무 울어서 눈이 아픈 거야."
"왜 울어?"
"너 같으면 엄마, 아빠랑 떨어져 있으면 안 보고 싶겠니?"
"보고 싶어."
"똑같아. 이 언니도 아이들하고 멀리 떨어져서 아이들이 보고 싶은 거야"
"아~ 그럼, 왜 한 쪽 눈만 아퍼?"
"양쪽 다 아프면 앞을 볼 수 없잖아. 그래서 하나님께서 한 쪽은 보살펴 주신 거야."


쉼터 아닌 쉼터에서 윌마씨는 그렇게 하루를 보냈다.

덧붙이는 글 | * 윌마씨는 지난 10일 입국 후, 국내적응교육을 마쳤지만 현재 근로계약을 체결했던 업체에서 고용해지 의사를 밝혀 갈 곳이 없는 상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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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편견 없는 세상, 상식과 논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세상, 함께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사)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부설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이사장, 이주인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 『내 생애 단 한 번,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좋다』, 공저 『다르지만 평등한 이주민 인권 길라잡이, 다문화인권교육 기본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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