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성서 계명대학교 앞 대학로에 '하늘북'이란 카페가 있다.
좀 특이한 상호인 '하늘북'은 불교경전인 <법화경>에서는 '부처님 공양을 하기 위하여 울리는 북'이기도 하며, 은하수가 넘치는 것을 경고해주는 별인 하고대성(河鼓大星)이라 불리는 '하늘북 별자리'에서 그 유래를 찾을 수도 있다. 하고(河鼓)가 바로 '하늘북'인 것이다.
그러나 카페주인 서현수씨의 설명에 따르면 하늘북은 천고(天鼓)의 우리말 풀이로써 "새 희망의 세상을 알리는 하늘의 북소리"라 한다.
이런 거창한 의미를 담고 있음과는 달리 5층에 덩그러니 걸린 '하늘북'이라는 간판은 꽤나 초라하다. 지난해 몇 개월 동안은 주인 서씨의 '오로지 귀찮음' 때문에 불 꺼진 간판으로 방치되어 있었던 것이다. 도무지 장사를 하겠다는 것인지 말겠다는 것인지…. 주인 서씨의 속내를 알 수 없었을 뿐 아니라, 불 꺼진 간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개점에 대한 의심 없이 건물의 5층까지 와서 '하늘북'의 한 구석을 차지했던 '하늘북 마니아'들의 심사 또한 알 수가 없었다.
카페 하늘북의 초입에는 그룹 도어즈의 멤버였던 록커 '짐 모리슨'이 그려져 있다. 짐 모리슨은 어느 시인의 시 구절을 빌어 "세상에는 그 진상이 알려진 것과 알려지지 않는 것이 있는데, 그 사이에 있는 것이 도어즈"라고 자신의 팀 명을 설명한 바 있다. '새로운 질서가 지배하는 사회로 가는 문을 여는' 역할로 자신들을 소개한 것이다.
몇 해 전에 보았던 올리버스톤 감독의 영화 <도어스(THE DOORS)>가 생각났다. 천재성과 광기로 기성질서에 저항했던 짐 모리슨. 그의 추종대로 '서른이 훨씬 넘어버린 나는 죽어야 할 목숨을 부지하고 있는 것일까?' 그가 묻는 듯하다.
"당신은 여전히 나이 서른 이전에 지녔던 처음의 그 영혼으로 세상을 바라보는가?"
아마추어 록그룹이 간혹 공연을 하는 하늘북의 실내는 난장스럽지만 나름의 질서가 있다. 록그룹과 주인 서씨 사이에는 공간을 사용하는 대가도, 공간을 제공하는 대가도 없다. 당연히 공연이 있는 날이라고 관객들에게 특별한 입장료를 요구하지 않는다. 록을 통하여 새로운 질서를 희망하며 노래하는 자와 그것의 가치를 인정하는 자 사이에는 그저 서로 알아주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제재될 여지가 없으리라.
손님들 멋대로의 낙서로 가득한 벽에는 미국 출신으로써 17세 때부터 뉴욕의 거리에 진출하여 거리 벽면에 그림을 그리다가 1980년대 초 뉴욕화랑에 혜성처럼 등장했던 천재화가 '바스키아'(Jean Michel Basquiat 1960∼1988)를 모방한 그림이 있다.
그곳에 잠시라도 머물러보면, 짐 모리슨 만큼이나 파격적이었고 기성질서에 도전했던 바스키아 역시도 카페 하늘북의 자유분방함에 잘 어울린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규격화되고 상업화로만 치닫는 현란한 대학가의 문화공간에서 숨구멍 같은 존재인 하늘북은 상업화에 대하여 발칙하다. 가볍게 차나 식사를 마시는 음식점인 '카페'라고 부르기엔 성이 덜 찬다. 또 주인 서씨의 바람대로 영국의 문화학자인 '사라손톤'이 정의하듯 '청년하위문화에 부여된 일상적인 표현으로서 사운드와 스타일을 끊임없이 제시하고 변화시키는 특정공간과 관련된 문화'가 존재하는 '클럽'이라고 보기에는 부족한 듯 보인다.
20대에 문화운동의 언저리를 기웃거리기도 했다던 주인 서씨는 20대 후반 즈음에 자신의 정체성에 관한 극심한 혼돈에 빠졌다고 한다. 서씨는 같은 길을 가던 사람들이 깃발을 내던지고 떠나버린 자리에 여전히 홀로 남아서 철지난 외투를 걸치고 있는 듯한 자신을 발견했던 것이다. 자학에 빠진 시기였다.
몇 달여를 술에 절어서 보내던 시기에 서씨는 우연히 '하늘북'을 인수하게 되었고, 하나 하나 본인의 손을 통해서 하늘북을 가꾸었다. 그리고 그의 일부가 되었고, 결코 버리지 못하는 자신의 스무 살을 끊임없이 연장하며 살고 있다.
"어제는 술 한 잔 먹고, 한동안 민중가요를 틀어버렸어요. 오월이 되니깐 무언가 속에서 참을 수 없는 것이 끓어오르는 듯했습니다. 커플 손님들이 좀 있었는데…. 허허허."
그는 뜬금없이 묻지도 않은 말을 하면서 머쓱해 했다.
'하늘북'에 대한 서씨의 자긍심은 대단하였다. 서씨는 "학생들이 다양한 문화를 섭취하며 자유롭게 살아가기를 바란다"며 "이 공간의 의미는 주장과 이상을 잃어가고, 문제제기 집단으로서의 기능을 잃어버린 대학과 대학문화에 대한 도전 같은 것이 아닐까"라고 오히려 반문한다.
그나저나 그는 왜 아직도 장가는 가지 않는 걸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조금 싱겁다. "저, 자유롭고 싶어서."
덧붙이는 글 | http://blog.naver.com/yuli69?Redirect=Log&logNo=140022475306 '하늘북 카페'의 블로그입니다. 아주 특이한 색감의 사진들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