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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미향 후보
ⓒ 정원섭
현상을 단순화시키는 것을 좋아하지 않지만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는 것 같다. 만나고 나면 힘들고 피곤한 사람, 만나면 즐겁고 없던 힘도 생기는 사람.

나는 김미향씨와 딱 두 번 만났다. 3월 11일 충북 옥천에서 한 번 그리고 5월 6일 강영모 고양시 시의원 선거사무실 개소식에서 한 번. 겨우 두 번 만났는데도 한 열 번은 만나 이야기를 한 사람 같다. 만나면 너무 즐겁고 마치 오랜만에 어릴 적 동네 소꼽친구를 만난 느낌이다.

"사람들이 내 미모만 기억하는 것 같아 걱정이야."

'자뻑'인 사람을 굉장히 싫어하는데 김씨는 왠지 이런 얘기를 해도 밉지가 않다. 항상 쾌활하고 에너지가 넘치는 그이지만 난생 처음으로 해보는 선거운동이 힘겨워서 그럴까. 안그래도 CD만한 얼굴이 더 작아보인다.

"태어나서 첨으로 코피를 흘려 봤어요. 그것도 쌍코피가 터졌다는 건 아녜요. 선거란 게 체력전이란 걸 실감하고 있어요."

자폐아 키우는 가정주부에서 사회운동가로

처음 '김미향'이라는 이름을 들은 것은 고양시 김혜련 시의원에게 김미향이라는 분이 출마를 하려고 하고, '풀뿌리 초록정치네트워크 5·31공동행동'에 참여하려 한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였다. 그리고 그때 기억나는 것은 그녀가 자폐아 엄마라는 사실 하나였다.

사실 김미향씨가 세상에 알려지게 된 건, 자폐아인 둘째 아이를 키우면서 세상과 부딪히는 과정이 KBS 인간극장 '맴돌집 이야기'를 통해 방영되면서 였다. 평범한 가정주부였던 김미향씨는 정우와 지우, 두 아이를 키우면서 사회와 현실의 편견과 싸우는 강한 엄마로 탈바꿈하는 과정을 거쳤다.

첫째 정우는 가와사끼 병이라는 희귀병에 걸렸다. 고열이 일주일 이상 지속되다가 온몸의 혈관이 터지면서 급사하는 괴질. 정우는 한국에서 발견된 일곱 번째 환자였다고 한다. 정우가 기적적으로 병을 치료하고 정상적으로 생활하던 즈음 둘째 지우가 자폐아 판정을 받았다. 또 하나의 전쟁이 시작됐다.

김미향씨는 단호했다. 둘째 지우를 특수학교가 아닌 꼭 일반학교에 다니게 해야 한다는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 학부모들의 반대서명운동까지 일어났다.

"자폐아들도 사람들과, 사회와 통합이 필요해요. 그런데 아이가 힘들어 하기보다는 엄마들이 두려워 하거나 그걸 미리 포기해서 특수학교로 보내는 경우가 많아요."

구체적으로 얘기하지는 않지만 그녀의 표정에는 그녀가 겪었을 수많은 우여곡절들이 녹아있는 듯했다.

"막상 우리 반에 그런 애가 들어오고 자기 아이의 짝궁이 된다고 생각하면 부모들이 평소 보이던 모습과 많이 변하더라구요. 하지만 지금은 반 아이들도 지우를 돌본다는 것에 대해 너무 자랑스러워해요. 지우가 사람들에게 주는 의미가 있어요. 지우가 아니었으면 그 아이들이 나와서 다른 장애인과 함께 하다는 것을 겪어보지 못하는 것에요."

김미향씨는 자신이 감당해야 했던 일들을 개인적인 문제 차원에서 그치지 않고 더 넓은 세상의 품 속에서 해결할 수 있기를 바란다.

"2005년에 고양시에서 특수교육보조원 13명이 감소가 됐어요. 그래서 우리 얘도 특수교육보조원이 없어졌어요. 우리 애들이 일반학교에 완전히 통합된 경우에는 특수교육보조원이 선생님 역할을 해요. 전학을 가든가 휴학을 하든가 이래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는 거예요. 2월 말에 통고를 받았어요. 아이들 엄마한테 아무런 마음의 준비를 할 여유도 안주고….

가만히 생각을 해 보니까 이건 나만의 문제가 아니다. 나를 제외한 12명 아이들의 엄마는 어떻게 하고 있을까. 그래서 관계 기관에 다 전화하고 교육청 연락하고 특수학급 부모회에 연락해서 엄마들을 설득했어요 두 달 동안 싸워서 13명에 대해 이미 2005년 예산배정에 끝난 부분을 2006년에 배정해 주겠다는 약속을 받았어요. 장애인 문제 뿐 아니라 마을에 어떤 문제가 있을 때 그것을 나 혼자만의 일이 아니라 사회적인 문제로 풀어가는 것이 중요해요."

윤활유 역할을 하는 시의원이 되고 싶다

▲ 김미향 후보
ⓒ 정원섭
"왜 시의원이 되려고 하는지, 당선이 되면 무슨 일을 하고 싶은지 물어보았다.

"제가 해야 할 역할은 윤활유라고 생각해요. 주민들이 어떻게 움직일 것인가. 사실 그 방법을 잘 몰라서 주민들이 움직이지 못하는 경우도 많거든요. 주민이 움직이지 않는 시의원 역할은 아무런 의미가 없어요. 생활정치라는 건 그 게 전제가 되야 해요. 정책이 나오고 주민들과 조율을 한다는 건 어불성설인것 같아요."

피곤해 보이긴 했지만 선거에 임하는 그녀의 표정은 너무나 즐거워 보였다. 그녀는 정치에 대해 불신을 가지고 계시는 분의 불신을 깨뜨리는 일이 너무 즐겁다고 한다.

"경로당에 자주 가는데 할머니나 할아버지들은 정치에 대해 소신을 가지고 계세요. 그래서 가면 심문을 많이 당해요. 왜 출마했냐. 앞으로 어떡할래. 제 그런 성향을 처음 알았는데 그런 질문을 받으면 너무 기쁜 거에요. 사람은 진실하게 말할 때 사람을 감동시킬 수 있는 거 같아요. 말을 잘 하는 게 아니라 마음 속에서 우러나오는 말을 할 때 그분들이 손을 잡아 주세요. 처음에 냉소적인 사람들이 오히려 더 좋아요. 처음에 냉소적으로 시작했다가 아주 흐뭇한 미소로 따뜻한 악수로 뒤돌아서게 되는 사람들이 더 좋아요."

김미향씨는 선거와 상관없이 환경운동을 계속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녀가 출마한 선거구는 고양시 신도심과 변두리 농촌지역이 섞여 있는 매우 넓은 구역이다. 하루가 멀다하고 산자락이 잘려 나가고 공장이 마구잡이로 들어서면서 아이들 천식과 아토피가 심해졌다. 아이들을 위해 난개발을 막고 환경을 보전하는 일에 나서면서 맴돌집 아줌마는 자연스럽게 환경운동가의 길을 걷게 되었다.

예비 선거운동 기간 직전까지도 새만금 집회에 다녀왔다는 그녀의 말에 "아직 후보로서의 자각이 덜돼 있는 거 아니예요?"라고 핀잔을 주긴 했지만, 그런 모습에서 느껴지는 것은 사람에 대한 신뢰라고 말 할 수 있을 것 같다.

"결심이 아니라 순응"

선거운동을 하면서 어려운 점은 없는지 물어보았다.

"제가 주민들과 헤어질 때 꼭 무슨 얘기하는지 아세요? '5월 31일이 지방선거날이거든요. 그날이 5월 마지막 날이고 수요일이고 투표시간이 8시부터 오후 6시까지구요. 그날 꼭 투표하셔야 해요' 이렇게 얘기해요. 저는 저를 뽑아달라고 한 번도 말한 적이 없어요. 왜 참여해야 하는지를 알게 하는 거 그 게 최고의 선거운동인 거 같아요.

보통사람이 가장 많이 하는 얘기가 이놈이 저놈이고 저놈이 이놈이야. 다 똑같애. 그러면 제가 이렇게 얘기하죠. '하지만 똑같지 않은 사람이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가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 똑같지 않은 한 사람을 찾기 위해서 여러분의 힘이 필요합니다' 그러면 고개를 끄덕끄덕 하세요. 맞어…."

왜 참여해야 하는지를 알게 하는 것이 최고의 선거운동이라는 말이 참 멋있게 느껴졌다. 목표를 정해 살기보다 과정 중에 만들어지는 목표에 충실하고자 애쓰는 것이 자신의 삶의 자세라고 김미향씨는 말한다.

그녀에게 시의원 출마는 결심이 아니라 하나의 순응이었던 것이다. 부서질 듯 가녀리고 작아보이는 그녀에게 숨겨진 커다란 힘은 아이들에 대한 사랑에서부터 나오는 게 아닐까. 인터뷰 중간에 얘기한 세상의 아이들이 나의 아이가 되었다는 그녀의 말이 가슴이 아리하게 와닿았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초록정치연대웹진(http://www.greens.or.kr)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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