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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는 전국 264개 시민사회단체가 참여하고 있는 '2006 지방선거시민연대'와 공동으로 '지역을 바꾸는 10가지 희망' 기획기사를 내보냅니다. 지역의 복지, 문화, 환경, 자치 등의 분야에서 작지만 의미있는 10가지 성공사례를 발굴·소개해 풀뿌리 지방자치단체의 바람직한 상을 제시할 예정입니다. <편집자주>
 서대문구의 한 어린이집에서 정규 보육프로그램을 마친 아이들이 모여 거북이 마라톤 대회 포스터를 만드는 장면.
서대문구의 한 어린이집에서 정규 보육프로그램을 마친 아이들이 모여 거북이 마라톤 대회 포스터를 만드는 장면. ⓒ 서정순
'보육'은 선거 시기 단골메뉴다. 이는 지방자치단체의 중요한 정책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너나없이 보육예산을 늘려 시설을 짓고 보육비를 지원하고 먹거리와 안전을 책임지겠다고 소리 높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생활하는 사람들의 가장 큰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단골메뉴'는 표 모으기에 급급한 나머지 남발될 여지도 충분하다. 특히 보육정책을 꼼꼼히 보면 보육에 대한 철학은 두말할 것도 없고, 그저 물량공세만으로 승부수를 던지는 못 말리는 후보들도 있다. 그래서 보육정책은 당선되면 뒷전으로 밀려나기 일쑤다.

#장면 ① : '아이사랑 1등 구'의 아이러니

얼마 전의 일이다. 서울의 한 구 주민들이 각 동마다 1개 이상의 국공립보육시설을 설치하고 보육시설에 대한 관리·감독을 철저히 하는 내용을 담은 보육조례 개정안을 마련하였고, 지난해 10월부터 주민발의를 통해 서명을 받았다. 두 달만에 8천명의 주민들로부터 서명을 받고 구청에 청구인명부를 제출한 바 있다.

그러나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주민들이 제출한 조례 개정안을 구의회에 올려야함에도 구청은 너무나 느긋하게 시간을 보내다 결국 4개월만에 의회에 상정했다.

이제 구의회에서 방망이만 두드리면 될 일이었다. 하지만 구의회는 또 다른 다크호스였다. 지난 4월 '연구와 검토 부족'이라는 이유로 상정안을 유보시킨 것이다. 보육만큼 중요한 정책이 없음에도 '연구와 검토 부족'을 운운하는 것은 무능하다는 것을 스스로 입증하는 것과 진배없다. 아이러니한 것은 이 구청은 '아이사랑 1등 구'를 외치고 있다.

#장면 ② : 한 군청의 황당한 '용기'

아래는 몇 해 전, 경기도의 한 군청이 국·공립시설에 보낸 공문 중 일부다.

"우리 군에서는 늘어나는 보육수요에 적극 대응하고 나아가 보육시설의 질적(양적)향상을 위해 정부지원시설을 점차로 줄이고 시장경제 원리에 따라 자율경쟁체제에서 시설이 운영될 수 있도록 보육시설운영 방법을 개선해 나아가고 있으니 조속한 시일 내에 민간(개인)어린이집으로 전환 운영을 바란다."

공문의 요지는 이런 거다. 보육 수요는 점차 늘어나는데, 정부지원 시설을 줄임으로써 보육시설의 질적(양적) 향상을 꾀하자는 취지이다. 그래서 국·공립시설의 문을 닫아야 한다는 것이다.

앞뒤 논리가 맞지도 않을 뿐더러 정부, 민간 할 것 없이 보육의 사회적 책임을 외치며 모두가 'Yes'라고 할 때 'No'라고 외치는 정말로 용기(?)있는 행정기관이다. 이로 인해 그나마 2개의 국공립보육시설을 유지하다 1개로 줄어들었다.

2004년 12월 31일 현재 연도별 보육통계(단위: 개소)
구분 국·공립민간 직장 가정
(놀이방)
소계법인법인 외개인
1994 6,9759833,091807 17 2,267 37 2,864
19959,0851,0294,125 928 22 3,175 873,844
199612,0981,0796,037 1,280 69 4,688 117 4,865
199715,375 1,1588,172 1,634 150 6,388 158 5,887
199817,605 1,2589,622 1,927 227 7,468 184 6,541
199918,768 1,30010,558 1,965 266 8,327 207 6,703
200019,2761,29511,304 2,010 324 8,970 204 6,473
200120,0971,30611,794 1,991 313 9,490 196 6,801
200222,1471,33012,679 1,633 575 10,471 199 7,939
200324,1421,32913,644 1,632 787 11,225 236 8,933
200426,903 1,34914,728 1,537 966 12,225 243 10,583
민간 개인 시설과 가정 시설을 합한 비율은 전체 84.7%. 반면 국공립시설과 정부로부터 운영비를 지원받는 법인의 경우 10.7%에 불과하다. 국공립 및 법인시설의 비율이 점차 줄어들고 있다. 시설 면에서는 보육의 공공성이 크게 후퇴하고 있는 모습이다.
ⓒ 자료 : 중앙보육정보센터 보육통계 자료

자치단체가 등돌린 보육, 그래서 학부모가 나선다

'아이를 위한 정책만큼 중요한 정책은 없다'고 입을 모은다. 생활의 문제 중 상당 부분은 아이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믿고 맡길 수 없는 보육시설, 놀이터 시설의 불안전, 불안한 급식과 먹거리, 자동차 위험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보행로, 미세 먼지 등에 의한 건강 등등 생활 속에서 부모의 걱정거리는 아이들이 처한 불안한 여건에서부터 출발한다. 특히 보육행정은 이 모든 문제가 종합적으로 얽혀 있는 난제다.

행정이 하지 못하면 시민들이 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보육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민들의 노력이 최근 몇 년간 전국 곳곳에서 꾸준히 전개되고 있다. 지난 2002년 과천 시민들은 1400여명의 서명을 받아 '영·유아보육조례'를 개정한 바 있다. 법정위원회인 보육위원회에 학부모의 참여를 확대하는 한편, 어린이집 위탁 과정의 투명성과 민주성을 구축하고 장기적인 보육발전계획을 세우겠다는 내용이 조례에 담겨 있다.

과천에서 전개된 보육조례 개정운동은 부산, 여주, 수원, 군포 등의 지역으로 전파되면서 민주적 제도구축의 촉매역할을 했다.

한편, 과천 보육조례 개정운동에 참여했던 많은 시민들은 2년 후 저소득 아이들의 방과후에도 관심을 갖고, 시민들의 의지를 담아 공부방을 만들게 된다. 운영위원회에 참여하는 사람, 찬반을 만들어주는 사람, 회비를 내는 사람들이 알음알음 마음을 나눠 10여 명의 저소득 아동들을 정성껏 돌보고 있다.

그 외에도 서울 강북구, 인천 연수구, 서울 구로구 등에서 시민들의 참여로 꾸려 나가는 방과 후 활동은 매우 활발하다.

엄마들이 뭉친다... 왜? 아이도 좋고, 나도 즐거워서

 과천 지역단체 관계자들이 보육조례 개정운동을 위해 서명을 받고 있다.
과천 지역단체 관계자들이 보육조례 개정운동을 위해 서명을 받고 있다. ⓒ 시민자치정책센터
서울 서대문구에서 전개된 보육시설운영위원회 참여운동도 보육 환경을 바꿔보려는 엄마들의 관심에서 출발했다.

한 구립 어린이집이 각종 비리와 문제점이 드러나면서 엄마들이 뭉쳤다. 2년여의 싸움 끝에 구립 보육시설 운영의 전반적인 사항을 심의·의결할 수 있는 운영위원회를 설치하는데 성공했다. 나아가 구립 어린이집 운영위원회 연대체가 꾸려졌다.

올 초에는 서대문을 넘어 전국 단위의 '어린이집 부모연대'를 꾸리기도 했다. 이 운동에 참여한 한 엄마는 즐거운 경험이었다며 이렇게 말한다.

"운영위원회에 참여하면서 저의 잠재력을 발견했어요. 그리고 어떤 변화가 눈에 바로 바로 보이기 때문에 좋은 경험이었죠. …그런데 그게 뭐, 저희 희생이 아니라 우리 아이가 좋아하고 나한테도 즐거운 경험이기 때문에 좋은 거죠."

'참여보육'은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이다. 여성가족부도 이러한 흐름에 발맞춰 영유아보육법을 개정하면서 참여보육을 위해 두 가지 의미 있는 내용을 담았다.

하나는 학교운영위원회처럼 보육시설종사자, 보호자대표, 지역인사 등으로 구성된 보육시설운영위원회를 설치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영·유아 자녀는 둔 보호자 15인 이상이 출자하고 11인 이상의 아이들이 상주할 경우 보육시설로 인정하겠다는 것이 그것이다. 후자를 '부모협동보육시설'이라고 칭한다.

보육의 당사자인 부모가 보육운영에 참여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보육시설 운영에 있어 부모가 참여한다는 것은 운영상의 투명성을 보장하기 위한 것만이 아니다. 보육은 공공성이 짙은 우리 사회 주요한 과제이므로 지역사회가 협력해서 보육의 사회적 책임을 분담하자는 뜻이 담겨 있다.

이미 여러 현장에서 이를 실행하고 있고 다양한 사례를 만들어내고 있다. '부모협동보육시설'도 마찬가지다. 지역사회에서 오래 전부터 부모협동보육시설이 만들어지고 운영돼 왔지만 법의 사각지대에 있었다.

그러나 이젠 부모들이 참여해서 보육시설을 직접 설치하고 운영할 수 있도록 법적 근거가 마련된 것이다. 관심 있는 부모들이 있다면 시설 규모도 크지 않으면서 부모들과 아이들에게 적합한 시설로 만들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단체장과 지방의원이 움켜쥔 보육행정의 '키'... 누굴 뽑아야할까?

국·공립보육시설이 상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에 더 확대돼야 한다. 또한 차별적으로 저소득층에겐 다양한 혜택이 제공되어야 한다. 이에 대한 예산은 아끼지 말아야 한다. 더불어 소프트웨어로서 '참여보육'을 위한 시스템 구축을 진지하게 논의해야 한다.

보육예산 몇 퍼센트를 더 늘린다고 보육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자녀를 맡기는 사람이든 돌보는 사람이든, 그리고 공무원이든 신뢰가 기본이다. 그러한 신뢰는 경험을 통해 검증할 수 있다.

보육시설운영위원회와 부모협동보육시설이 지금은 걸음마 단계이긴 하나 그런 경험을 쌓아 가는데 많은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문제는 지방자치단체의 의지다. 더 구체적으로 얘기한다면, 선거를 통해 뽑힌 단체장과 지방의원이 보육행정의 키를 쥐고 있다.

'후보들의 정책을 꼼꼼히 보자'는 말은 백 번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비슷한 정책이라 하더라도 한 번 더 유심히 본다면 선택의 여지를 좁힐 수 있다. 이번 선거가 그러한 기회가 됐으면 한다.

"우리동네 어린이집, 이렇게 바꿨어요"
[인터뷰] 서정순 어린이집 부모연대 공동대표

"당신 아이나 데리고 나가!

4년 전인 2002년 12월, 서울 서대문구의 한 구립 어린이집에 아이를 보낸 서정순(38·현재 어린이집 부모연대 공동대표)씨는 시설 운영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구청에 민원을 넣었다가 공개적으로 망신을 당했다. 어린이집 총회에서 시설장이 그간 제기된 문제점에 대해 눈물을 섞어가며 거짓 해명하자 일부 학부모들의 비난이 쏟아진 것.

시설장의 남편이 구청 공무원이었기 때문인지 구청에 민원을 제기해도 묵묵부답이었다.

"턱없이 낮은 교사 대 아동 비율, 부실한 급간식. 그리고 매번 우유 싸와라, 휴지·물티슈도 가져와야 한다고 요구하고, 무슨 수를 써서라도 금지된 잡부금을 걷으려 했어요. 엄마들은 끙끙 앓았지만, 아이들에게 불이익이 돌아 갈까봐 말을 못한 거지요. 시설장은 운영의 문제를 제기하면 오히려 '여기 들어올 아이들은 줄 서 있다'고 큰소리 쳤습니다."

결국 그의 아이는 이듬해인 3월 사실상 어린이집에서 쫓겨나다시피 했다. 하지만 그 후에도 계속 문제를 일으킨 시설장이 다음해인 2004년 3월 바뀌면서 아이를 다시 어린이집에 보내기 시작했다.

이 때부터 그는 어린이집 운영위원으로 참여했다. 기존에는 시설장이 일방적으로 임명하는 '유명무실'한 운영위원회였지만, 시설장이 바뀌고 나서 학부모들이 공동으로 문제에 대응해나가자는 데 뜻을 같이한 것이다.

"운영위원 활동했지만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신임 원장과 새로운 위탁업체가 갈등하면서 오히려 양자의 문제점만 확실하게 인식하게 됐습니다. 그래서 구청장을 만나 민원을 제기했고, 원장과 위탁업체를 갈았습니다."

그래서 지금 상황은 많이 좋아졌다고 한다. 급·간식의 질이 업그레이드됐고, 잡부금도 걷지 않는다고 한다. 학부모들이 운영위원회를 통해 적극적으로 '참여보육'에 임했기 때문.

"서대문구에는 180여 개의 어린이집이 있습니다. 이걸 5명의 공무원이 감독해요. 실질적인 관리감독이 가능하겠어요? 예산을 나눠주고 집행하는 서류 만들기도 어렵죠. 그래서 학부모들이 나설 수밖에 없습니다."

그는 하루 빨리 보육업무를 맡고 있는 자치단체가 제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많은 '엄마'들이 운영위원으로 참여하고 있지만, 이들은 사실 가사 일 돌보는 것도 빠듯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풀뿌리 정치라고 할 수 있는 지역의 상황은 녹록치 않다.

"정치인들은 시설장이 부모들의 표를 다 가지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목소리만을 대변할 수밖에 없는 겁니다. 지방선거에 출마하는 사람은 대부분 50·60대 남자입니다. 그들은 어린이집 상황 등 보육의 절박한 문제를 잘 모릅니다."

그래서 그는 이번 지방선거에서 서대문구 구의원으로 출마했다. / 김병기 NGO서포터

덧붙이는 글 | 김현 기자는 시민자치정책센터 상근 운영위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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