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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석현씨가 초등학생들과 함께 길을 건너고 있다.
신석현씨가 초등학생들과 함께 길을 건너고 있다. ⓒ 안서순
"애들아 차가 달려오는데 함부로 뛰어 다니면 어떡하니."
"이봐요, 학생이 길을 건너는 게 안 보여요."

초등학생에게는 친절하고 자상한 삼촌이고 지역주민들에게는 안전을 지켜주는 지킴이지만, 신호를 위반하는 운전자에게는 호랑이로 돌변하는 신 경사.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고북 신경사'는 아침 일찍부터 오후 늦게까지 항상 고북초등학교 앞 횡단보도 한가운데에 서서 교통정리를 한다.

고북초등학교 앞길은 그가 스쿨존이고 신호등이다. 멋진 교통경찰 복장에 색안경까지 쓰고 줄을 맨 호루라기를 목에 걸고 있는 신 경사. 그러나 그는 경찰이 아니다. 하지만 교통정리를 하는 것이 그가 하는 유일한 일이다. 그의 이름은 신석현(42. 충남 홍성군 갈산면 취생리), 정신지체장애2급인 장애인이다.

그가 하루에 버스와 덤프트럭, 승용차 등 1500여대의 각종 자동차가 오가는 국도29호선 서산시 고북면 소재지인 기포리 고북초등학교 앞 도로에서 교통정리를 시작한 것은 10년 전인 1996년 3월 1일부터다.

신씨는 고북초등학교 인근에 사는 동네사람이 아니다. 그의 집은 학교에서 10리 정도 떨어진 홍성군 취생리에 있다. 그는 걸어서 1시간 정도가 걸리는 이 길을 매일 걸어서 오간다. 그가 만사를 작파하고 '교통경찰'로 나서게 된 것은 '10년 전 고북초등학교 앞길에서 4명의 행인이 한꺼번에 차에 치여 변을 당했다는 끔찍한 사고소식을 듣고부터다.

신씨가 처음부터 지금 같은 멋진 복장을 한 것은 아니었다. 초보 때는 농약사에서 준 상표가 한가운데 박힌 하얀색 모자에 집에서 입던 작업복 차림에 호루라기만을 든 채 차에 치일까봐 겁이 나서 도로 복판에 서지도 못하는 초보였다.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그를 알아보고 인사도 하고 그의 신호를 깍듯이 지키지만, 그때는 "죽으려고 환장했느냐"는 욕부터 먹었다.

신석현씨의 수신호는 현란하다.
신석현씨의 수신호는 현란하다. ⓒ 안서순
처음에는 학교와 인근마을 사람들도 '저러다가 그만두겠지'하며 '참, 할일도 되게 없는 사람이여'하며 덜떨어진 사람 취급을 했다. 그랬는데 그가 교통정리를 시작한 이후 10년 동안, 그가 길을 지키고 있는 시간에는 단 한 건의 교통사고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는 매일 오전 6시 집에서 출발해 7시부터 학교 앞 도로에서 근무를 시작해 오후 6시께 퇴근(?)한다.

초등학생들한테 그는 친절하고 자상하며 용감한 삼촌이다. 가끔 그의 수신호를 위반한 차량이 길을 건너는 어린이를 위협할 때 그는 영락없이 몸을 날려 끌어안고 안전하게 길 건너편에 옮겨 놓는다. 노인이나 몸이 불편한 사람이 길을 건널 때는 부축하거나 손을 잡고 길을 건네준다. 교통정리를 하는 그의 수신호는 현란하다 못해 예술에 가깝다. 아무리 노련한 교통경찰도 그가 구사하는 10여 가지 동작을 따라하지는 못할 것이다.

왜 그렇게 요란하게 교통정리를 하느냐는 질문에 신씨는 "점잖케 호루래기만 불어대먼 사람덜이 잘 보덜 안해서 눈에 잘 띠라구 일부러 그러는 거유"했다. 그가 가장 속상해 하는 일은 그의 수신호를 무시한 채 질주하는 자동차다. "저런 건 딱지를 떼두 끄끔허게 떼서 다시는 위반 못허게 해야넌디"며 중얼거리는 그는 못내 '딱지'를 끊을 권한이 없는 게 아쉽다.

10년 경력이 나름의 노하우를 쌓게 할 정도로 그를 노련한 교통경찰로 만들어놓은 것이다. 비장애인에 비해 조금 부족한 신씨지만 하는 일은 비장애인보다 수십 배, 수백 배는 낫다. 그가 교통경찰 복장을 한 것은 5년 전인 2001년부터다. 그의 선행을 지켜본 고북초등학교 총 동창회에서 만들어 준 것이다.

신씨는 교통정리만으로 그치지 않는다. 학교 주변 청소와 교통정리를 하는 도로 주변 쓰레기까지 줍는다. 게다가 힘이 약한 하급생을 괴롭히는 상급생을 보면 준엄하게 꾸짖는 일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는 고북초등학교 보안관이기도 하다. 매일 오전 7시부터 오후 6시까지 11시간 근무를 한다. 추석이나 설 명절은 말할 것도 없고 일요일도 그에겐 없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365일 근무를 하고 있지만 그에게 지급되는 보수는 없다. 고북초등학교 급식실에서 점심 한 끼 얻어 먹는 게 전부다.

고북초등학교 한동호(56) 교장은 "학교로서는 신씨가 교통정리를 한 이후부터 단 한 건의 학생교통사고가 발생하지 않는 등 참 고마운 사람이지만 학교 자체적으로는 보답할 방법이 없어 항상 미안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 교장은 "가끔 신씨가 어머니가 아프다며 눈물을 글썽거릴 정도로 마음도 여리고, 수고한다고 누가 음료수 같은 것을 주면 먹지 않고 가지고 있다가 노모에게 갖다드릴 정도로 효심도 깊은 사람이다"며 그의 됨됨이를 전했다. 신씨는 퇴행성 관절염에 걸려 수년째 거동조차 불편한 노모(78)와 단둘이 산다. 기초생활보장수급대상자인 그와 어머니는 면사무소에서 주는 생계주거비 50여만원의 수입이 유일한 생계수단이다. 그는 최근 스스로 경장에서 경사로 진급했다.

"넘덜 말이 경찰두 10년 허먼 경사까지 된다구 허걸래 나두 계급장을 올려 붙였쥬."

책임감이 강하기도 하지만 순진무구한 신 경사. 언제까지 '교통경찰'을 하겠느냐는 말에 신씨는 "내가 돌아댕길만 헐 때 꺼정 해야쥬 이걸 누가 허것슈"라고 대답했다. 누가 이런 사람보고 '바보'라고 할 수 있을까. 신씨는 정신지체장애인이지만 사표로 삼아도 부족치 않은 자격을 갖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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