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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몇몇 테이블에는 벌써 식사를 하고 있는 회사원들도 있었고 20~30분 만에 사람들로 빽빽하게 들어찼다. 빈 테이블이 하나도 남지 않았다. 식사를 하면서 한번 씩 고개를 들 때마다 넥타이를 맨 그 엄청난 숫자의 화이트칼라들이 나를 이유 없이 아련하게 만들었다. 그들을 보면 왠지 우울하고 답답함이 느껴진 것은 그들의 모습에서 바로 내 남편, 내 아버지의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일하기 위해서 먹는다.”, “먹기 위해서 일 한다.” 둘 중 어느 것이 맞는 표현인지는 몰라도 아무튼 그들은 이 두 문장을 대변하듯 열심히 수저를 놀렸다.
언제부터인지 정확하지는 않지만 90년대 초반에 들어서면서부터 모든 월급이 온라인 통장을 통해 가정으로 전달되기 시작했다. 가슴에 두툼한 봉투를 넣고 그날만큼은 일하는 기쁨을 느꼈던 이 도시의 화이트칼라들에게 이는 표현할 수 없는 허전함이었을 것이다.
형님의 아버지! 그러니까 내게 시고모부님은 은행원이었다. 형님은 아버지를 회상하며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고모부님의 월급날은 매월 25일이었다고 한다. 형님이 그날을 유독 기억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날만큼은 고모님의 손길이 무척 바빴기 때문이다.
그녀는 남편을 위해 고기 한 근을 사서 정성스레 국을 끓이고 남편이 좋아하는 찰밥을 지었다. 고기를 사러 가서도 이 고기가 좋을지, 어제 들여온 것은 아닌지, 꼼꼼히 따져가며 남편을 위해 가장 맛있는 식사를 준비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한다. 덕분에 아버지의 월급날인 25일은 온 가족이 부푼 마음으로 저녁을 맞이했었단다. 다음 날 아침 회사로 나서는 아버지의 어깨가 당당해 보인 것은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비록 적은 돈일지는 몰라도 월급을 가져오는 날만큼은 가장들의 가슴은 부풀어 올랐고 전업주부였던 아내들은 다소 미안한 마음이 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내 앞에서 부지런히 점심식사를 하고 있는 이들의 모습은 어떠한가? 월급날 두툼한 봉투를 만지기 전에 온라인으로 입금된 월급은 각종 카드 값 등 자동이체 되기 바쁘다. 결국 직접 손으로 만질 수 있는 현금은 그리 크지 않다. 문명의 이기란 필요 없는 노동을 줄이고 편리함을 가져다주었지만 이렇듯 수많은 가장들의 작은 기쁨을 앗아가기도 했다.
형님과 내가 느린 식사를 하며 이런 저런 얘기를 하는 동안, 벌써 옆 테이블은 세 번이나 손님이 교체되었다. 자신의 집에 불 난 소식이라도 들은 듯 분주한 걸음, 번쩍이는 손놀림, 불안한 눈빛들! 대체 그들은 어디에서 위로를 받고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단 말인가? 그들이 남기고 간 수저와 남은 반찬, 밥그릇을 치우고 있는 아주머니의 손길로 자꾸만 눈이 갔다.
광화문 네거리, 시청 앞 광장, 여의도 금융가, 강남의 테헤란로, 서울 도심 그 어느 곳에서도 11시 30분이면 우리는 쉽게 그들을 만날 수 있다. 그분들이 있음으로 나의 생활이 편안했음을, 지금 이 순간의 우리나라가 존재했음에 새삼 감사함을 느끼며 존경의 인사를 올리고 싶다.
덧붙이는 글 | SBS U 포터에도 송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