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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다나 가스파이프라인 건설 모습
ⓒ EarthRights International
"1991년까지는 우리가 살던 지역에 군인들이 없었으며, 우리는 마을에서 벼농사를 지으며 평화롭게 살고 있었다. 가스파이프라인이 건설되기 시작하면서 군인들은 우리를 강제노동으로 끌고 갔다. 강제노동에 끌려가지 않으려 저항하면 우리를 죽이겠다고 위협했다. 남편은 총을 맞은채 정글로 달아났고, 나는 군인이 휘두른 총 개머리판에 머리를 맞아 쓰러지며 정신을 잃었다. 깨어나보니 어린 아기가 불구덩이 속에 버려져 있었다. 얼른 아기를 불구덩이에서 꺼내 정글로 달아났으나, 며칠 후 숨을 거두었다." - 어느 아주머니(원고 1번)

▲ 버마 군대에 의해 불타고 있는 마을
ⓒ EarthRights International
"1992년에 군인들이 들이닥쳐 떠나라고 명령하며 떠나지 않으면 죽이겠다고 위협했다. 결국은 군인의 총에 맞았는데, 다행히 살아났지만 그 총알이 아직도 심장 근처에 박혀있고, 아직도 매우 고통스럽다." - 어느 아저씨(원고 11번)

▲ 먹을 것과 가재도구를 찾아 불타버린 마을로 돌아온 사람들
ⓒ EarthRights International
"1994년에 우리 부대는 가스파이프라인 경비를 위해 주둔했다. 나는 150명의 주민들에게 식량과 탄약을 나르게 했다. 나이가 일흔이 넘은 이른 노인들까지 동원되었는데, 그들은 강제노동에서 벗어나기 위한 돈 150챠트(약 300원)도 없었다. 음식도 충분히 먹지 않았기 때문에 대부분의 짐꾼들은 매우 쇠약했다. 짐꾼들이 지쳐 쓰러지면 상관이 총으로 쏘아버리라고 명령했다. 내 눈앞에서 서너 명이 그렇게 죽어갔다. 그러나 나는 차마 총을 쏠 수 없었다. 이 때문에 상관과 말다툼을 벌였고, 상관이 술에 취해 총을 꺼내자 내가 먼저 그를 쏘고는 바로 탈영했다. 나는 군에 입대하기 싫었으나 돈이 없었다." - 어느 탈영병


▲ 군대에 끌려가 강제노동을 당해 생긴 흉터를 보여주는 피해자
ⓒ EarthRights International
인권운동사랑방이 지난 5월6일부터 13일까지 진행한 '인권영화제'에서 상영된 <책임회피>(원제 'Total Denial', 밀레나 카네바 감독) 중 일부다. 이 다큐멘터리영화는 버마(미얀마)의 천연가스를 태국으로 가져가 판매하기 위해 만들어진 야다나 가스파이프라인 건설 과정에 군대가 개입하면서 초래된 온갖 인권 유린 문제를 고발한다.

영화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일하는 인권·환경운동가 카사와의 활동을 집중적으로 보여준다. 버마와 태국 두 나라에서 수배대상이며, '흰 코끼리'라는 뜻의 카사와(Ka Hsaw Wa)라는 별명으로 잘 알려져 있는 그는 '지구권리(EarthRights International)'라는 단체를 설립하고 버마의 인권문제 관련 각종 활동을 하고 있다.

그는 다국적 석유기업인 미국의 유노칼(Unocal)사와 프랑스의 토탈(Total)사가 합작 투자한 야다나 가스파이프라인 공사가 진행되면서 이의 경비를 담당한 버마 군대에 의해 자행된 수많은 약탈과 방화, 납치, 강제노동, 살해, 강간 등의 인권 유린 행위를 전세계에 알렸다.

▲ 군대를 피해 달아나는 버마 사람들
ⓒ EarthRights International
다른 몇몇 인권단체와 공동으로 1995년에는 자신의 이름과 얼굴조차 공개할 수 없는 익명의 버마 피해자 15명을 원고로 내세워 미국 법원에 유노칼을 제소했다. 유노칼은 원고들이 증언한 인권 유린사례가 과장되었으며, 설령 인권문제가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버마 군 당국이 저지른 것으로 자신들과는 상관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소송은 1996년에 미국 사상 최초로 외국불법행위배상법(Alien Tort Claims Act)을 자국 기업에 적용하여 원고의 제소가 정당하다는 인정을 받았다. 그 후에도 10년에 달하는 지루한 법정 공방이 계속 되었고, 결국 유노칼은 2005년 3월, 원고들에게 배상금을 지불하기로 합의했다.

미제 청바지와 티셔츠를 즐겨 입고, 대학에서 경제를 공부하여 돈 많이 버는 사업가가 되는 것이 꿈이었던 평범한 청년이 인권운동가로 변신하게 된 것은 1988년이다. 당시 민주화운동에 앞장서던 친구를 잡으려던 버마 군사정보당국이 그를 끌고 가 3일 동안 모진 고문을 했다. 겨우 풀려났지만, 버마 군부가 대학생들의 평화시위를 총칼로 진압하고, 부상자들이 치료받고 있는 병원마저 비행기를 동원해 공격함으로써 수많은 학생과 의사·간호사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그도 민주화운동에 적극 참여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대학생들의 민주화 요구가 실패로 돌아가고, 군사독재정권의 대대적인 탄압이 있자 그는 정글로 숨어들어 1988년부터 1995년까지 꼬박 7년을 정글 속에서 지냈다. 그동안 군사독재정권이 저지른 온갖 끔찍한 일들을 수도 없이 보고 들으며, 고통 받는 버마 사람들을 위해 이러한 잔학상을 세계에 알리겠다고 결심한다.

▲ 야다나 가스파이프라인이 건설된 지역은 울창한 천연 열대우림 지역이 대부분이었다
ⓒ EarthRights International
▲ 가스파이프라인을 건설하기 위해 도로가 건설되고, 군대가 들어오면 야생동물의 수난이 시작된다. 적어도 다섯 마리의 호랑이가 희생되었다.
ⓒ EarthRights International
영화 상영이 끝나고 관객과 만나는 자리에서 카사와는 "지금 버마에서 한국 기업인 대우인터내셔널이 유노칼이 했던 것과 똑같은 일을 하고 있다"며 "버마인들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서는 버마 군사정권을 돕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한국인들의 자유와 열정으로 버마와 세계의 고통 받는 사람들을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어제(18일)는 광주시민들이 군사독재에 저항해 떨쳐 일어난 지 꼭 26년째가 되는 날이다. 수백 명의 목숨이 희생되었지만, 다행히 우리는 군사정권을 극복하고 어느 정도의 민주화를 이룩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 주변에는 총칼로 국민을 억압하는 독재자들이 있고, 그들에 빌붙어 민중과 천연자원을 수탈하려는 악질 기업이 있다. 과연 그렇게까지 해서 잘 먹고 잘 살아야 하는가?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환경운동연합 홈페이지(http://kfem.or.kr)를 통해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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