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돋나물
돋나물 ⓒ 안준철
토요일(20일)이라 오전 근무를 하고 집에 돌아와 점심을 먹고 잠깐 아파트 주변을 돌아보았습니다. 평소 같았으면 가까운 산이라도 다녀왔을 텐데 아내가 며칠 째 감기로 고생을 하고 있어서 산행을 포기하고 대신 잠깐 산책을 나선 것이지요.

노란꽃창포
노란꽃창포 ⓒ 안준철
저는 집을 나서면서 사진기를 챙겼습니다. 산책을 하다가 예쁜 꽃이라도 만나면 사진기에 담아올 생각이었지요. 그런데 뜻밖에도 아파트 구석구석마다 형형색색의 아기자기한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어서 횡재를 한 기분이었습니다. 등잔 밑이 어둡다는 속담이 있지요. 오늘처럼 그 말이 실감난 적도 없었습니다.

지칭개와 나비
지칭개와 나비 ⓒ 안준철
아파트 화단 너머 후미진 구석에서 정신없이 셔터를 누르고 있는데 아주머니 한 분이 저를 유심히 바라보았습니다. 꽃이 너무 작아서 육안으로도 보일까 말까한 풀꽃을 사진기에 담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그러니 아주머니의 눈에 제가 이상하게 보일만도 했지요. 꽃도 달리지 않은 풀포기를 그렇게 열심히 찍어대고 있었으니 말입니다.

꽃마리
꽃마리 ⓒ 안준철
잠시 후, 그 분의 입에서 경탄의 소리가 흘러나왔습니다. 잠깐 가까이 오게 하여 꽃을 보여드린 뒤의 일이었지요. 허리 숙여 가까이 다가가지 않는 사람에게는 결코 드러내지 않는 비밀한 아름다움을 목격한 아주머니에게 저는 그 꽃 이름을 알려드렸습니다.

쇠별꽃
쇠별꽃 ⓒ 안준철
"꽃마리라는 꽃입니다. 이름도 꽃만큼이나 예쁘지요?"
"그러네요. 어쩜 이렇게 예쁜 꽃이 피어 있었는데도 몰랐네요."
"사람들이 다 모를 거예요. 유심히 안 보니까요."

민들레 홀씨
민들레 홀씨 ⓒ 안준철
사실, 유심히 안 보면 보이지 않는 꽃이 그 꽃만은 아니지요. 오늘 아파트 주변을 산책하면서 만난 쇠별꽃, 냉이, 괭이밥도 나름대로 빼어난 자태를 뽐내는 예쁜 꽃들인데 무심한 사람들의 눈에는 그냥 잡초로만 보일 뿐이지요. 그런 점에서 보면 꽃들의 운명이랄까 신세가 좀 안 됐다 싶기도 하지만 꼭 그렇게 생각할 일만도 아닙니다.

이름 모르는 꽃
이름 모르는 꽃 ⓒ 안준철
어쩌면 그 반대일지도 모르지요. 오늘 만난 아주머니처럼 허리를 숙이고 가까이 다가가 경의를 표할 수 있는 겸손하고 고상한 영혼을 가진 사람에게만 자신의 아름다움을 드러내겠다는 당당함, 혹은 귀여운 오만 같은 것 말입니다. 어쨌거나 곱고 아리따운 것들이 멀리 있지도 않고 아주 가까운 곳에 있는데 그냥 무심히 지나치는 것은 행복을 추구하는 사람의 습성과는 거리가 먼 듯합니다.

괭이밥
괭이밥 ⓒ 안준철
오늘 아파트 주변을 돌아보면서 주말이라고 꼭 멀리만 나갈 일은 아니라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자녀들과 함께 우리가 사는 동네나 아파트 주변에 무슨 꽃들이 피어 있는지 알아보는 것도 썩 괜찮은 가족놀이가 되지 않을까 싶었지요. 요즘처럼 하루가 다르게 기름값이 치솟는 어려운 시대에 기름 한 방울 아끼는 것도 귀한 일이겠고요.

고들빼기
고들빼기 ⓒ 안준철
좀 거창한 얘기 같지만 그 심각성에 비해 너무도 안이하게 대처하는 경향이 없지 않은 하나뿐인 지구의 대기오염 문제를 생각해도 그렇습니다. 어쩌면 많은 경비나 시간을 들이지 않고도 누구나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우리가 사는 가까운 곳에 곱고 앙증스런 꽃들을 준비해 놓으셨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꽃을 지으신 그 분이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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ㄹ교사이자 시인으로 제자들의 생일때마다 써준 시들을 모아 첫 시집 '너의 이름을 부르는 것 만으로'를 출간하면서 작품활동 시작. 이후 '다시 졸고 있는 아이들에게' '세상 조촐한 것들이' '별에 쏘이다'를 펴냈고 교육에세이 '넌 아름다워, 누가 뭐라 말하든', '오늘 교단을 밟을 당신에게' '아들과 함께 하는 인생' 등을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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