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억3500만 년 전, 북아메리카와 유럽이 붙어있을 때 도롱뇽 무리가 많이 살았다고 한다. 그러나 5천만 년 전에 유럽과 북아메리카가 분리되면서 북 아메리카에서는 도롱뇽이 번성했지만 유럽에서는 단 한 종만 살아남게 된다.
유럽에서 살아남은 단 한 종은 1744년에 ‘바론 발바소르’에 의해 발견된 올름. 올름은 슬로베니아 산맥의 거대한 동굴을 피신처로 삼아 살고 있었는데, 모습이 너무 기이해 생물학자들은 장구한 세월을 살아온 공룡이라고 추정할 정도였다고 한다.
석회석 동굴 깊숙한 곳에서 은신하며 100년 동안 살아가는 분홍빛 양서류인 올름. 까마득한 연대를 살아 온 올름의 생명력이 놀랍다. <경이로운 생명>의 저자인 생물학자 ‘팀 플래너리’의 올름에 대한 놀라운 이야기는 이렇다.
"작은 유리병에 담긴 채 섭씨 6도로 유지되는 냉장고에 12년 동안 방치된 올름이 한 마리 있었다. 나중에 꺼내보니 그것은 여전히 살아있었다. 해부를 해보니 소화계가 완전히 사라지고 말았다. 올름은 100년을 산다고 한다. 동굴의 차가운 물에서 거의 먹지도 않고 살아가는 동물이니 그럴 법도 하다. 하지만 바깥에 비가 내릴 때 흐름만 약간 바뀌는, 밤도 낮도 없는 영원한 어둠 속에서 살아가는 동물에게 백년, 즉 36,500일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피해야 할 적도 없으므로 거의 방해받지 않은 채 세월을 견디는 것일 뿐이다. 올름은 그저 멸종 대신 망각을 택한 것인지도 모르겠다.-책 속에서
상상을 초월한 다양한 형태의 진화, 그것은 생명의 경이로움
<경이로운 생명>은 현재 세계에 존재하는 가장 특이하고 경이로운 생물 97종을 소개한 책이다. 책을 통하여 만나는 생물들은 인간이 살 수 없는 극한의 환경에서 가장 충실하게 생존, 번식해온 것들.
각자 처한 극한의 환경에 따라 저마다 가장 독특하게 진화해 온 생물들이다 보니 생존전략상 가장 아름답거나 가장 보기 흉한 모습이다. 또한 가장 기이한 것들이다. 살아가는 방법도, 먹이 섭식이나 짝짓기 등도 이제까지 우리가 만나오던 생물들과는 전혀 다르다. 생물에 대한 우리의 상식과 상상을 우습게 깨뜨리고 있다고 할까? 하나하나 이렇게 다양하고 놀랍고 특이할 수 있을까 싶다.
이 독특하고 경이로운 동물 중에는 멸종 위기에 처한 것들도 많아 안타깝다. 장구한 세월, 극한의 환경에서도 당당히 살아온 이들이건만 이들 대부분은 인간의 눈에 띄면서 곧 멸종의 위험에 처하고 마는 것이다. 책 속에서 만난 흰우카리의 표정은 인간의 오만을 묵묵히 삭히는 듯 슬퍼 보인다.
<경이로운 생명>은 동물학자인 저자의 간결하지만 명확한 설명이 긴 글보다 훨씬 실감 있게 전해진다. 그림도 야생동물만을 그리는 화가가 생물마다 저마다 가지고 있는 특징을 포착하여 생동감 있고 매력 있게 표현하고 있어서 글과 조화를 잘 이룬다.
동물학자의 생태계에 대한 해박한 이야기, 사라져 가는 서식처에 대한 준엄한 경고가 날카롭다. 그럼에도 신기한 동물들 사진과 함께 재미있는 설명이 있어서 읽는 재미, 보는 재미, 느끼는 즐거움이 가득한 책이다.
세상에 정말 이런 동물들이? 오! 놀라워라!
암컷에 비해 아주 작은 ‘나무수염아귀수컷’은 암컷을 만나면 꽉 물고 결코 놓지 않는다. 아니 아예 몸속으로 파고들어 일생동안 오로지 암컷의 피를 통해 양분을 공급받는다. 그리고 수컷은 암컷이 요구할 때만 정자를 뿜어내는 ‘암컷의 고환’으로 살아간다.
가장 극한 상황에 종을 번식시킬 수 있는 가장 극단적인 방법은 오직 이것뿐이었을까? 이렇게 살아갈 수밖에 없는 독특한 진화는 장구한 세월 속에 어떻게 진행되어 왔을까? 아귀들은 왜 그렇게 흉한 몰골과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살아가는 것일까?
‘아이아이’와 ‘긴꼬리트리오크’는 나무에 구멍을 뚫는 벌레를 주식으로 살아간다. 그런데 기원이 전혀 다른 이들이 같은 먹이를 찾아 먹다보니 손, 이빨, 꼬리가 놀라울 정도로 서로 비슷한 형태로 진화했다. 또 같은 먹이를 주식으로 삼다 보니 포유류, 새, 바다동물이란 생태가 다름에도 비슷하게 진화해오고 있었다. 흥미로운 사실들을 읽어나가면서 조금만 더 관심 두다보면 재미있는 추측까지 얼마든지 가능한 책이다.
이 경이로운 책은 생명-짧은 연대기, 자연환경, 먹이와 섭식, 특이한 서식지에 살거나 형태를 바꾸는 동물들 등 모두 일곱 부분으로 구분되어 있다. 이들의 세계가 저마다 놀랍지만 간략하게 몇 종만 소개해보면 이렇다.
▲자기 몸집에 비해 꼬리 깃털이 세상에서 가장 긴 흰긴꼬리풍조나 길이의 두 배가 넘는 기다란 눈썹을 갖고 있는 기드림풍조 등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조들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히말라야 고원을 어슬렁거리는, 설인(雪人)으로 불리는 황금납작코원숭이 ▲어둠의 심해를 누비는 은색 상어의 거대한 입 ▲조용하고 점잖지만 얼굴이 새빨갛기 때문에‘술 취한 영국인’이라 불리는 흰우카리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가장 유순한 딩기소 ▲어른 엄지손톱에 네 마리나 올려놓을 수 있을 만큼 세상에서 가장 작은 양서류인 애기맹꽁이 ▲평생 잠을 자지 않는 인더스강의 돌고래 ▲앞발을 권투선수처럼 휘두르는 비단개미핥기 ▲깊은 해구에 사는 상상도 못할 여러 동물들...
소개되고 있는 97종의 생물들은 저마다 '가장 독특한' 자기만의 진화의 비밀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이 책을 통하여 소개되는 모든 동물은 생태적으로 공통되는 특징이 거의 없을 정도다. 이들이 가진 장구한 세월에 걸친 진화의 비밀, 그것들은 무엇일까? 책을 덮고서도 의문과 호기심은 쉽게 가라앉지 않고 책에서 만난 생물들과 그들의 이야기가 자꾸 떠오른다.
이 책을 처음 만날 때만 해도 동물 관련 다큐멘터리 등을 통하여 한두 번쯤 만난 적이 있는 이야기려니 했다. 그러나 전혀 아니었다. 평소 생물생태계에 관심을 많이 두던 나의 상식과 상상을 보기 좋게 깨뜨리는 이야기들이었다. 아이들과 다투면서 재미있게 읽은 책이기도 했다.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끝없이 펼쳐지는 생명의 경이로움에 무엇에 홀린 듯 빠져들며 읽었다면 믿을까? 이 책은 순수한 즐거움은 물론 불가사의하고 특이한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보석과 같은, 한 번 만나면 계속 펼쳐보고 싶은, 쉽게 뿌리칠 수 없는 유혹이 될 것이다.
| | | 저자, 화가, 번역자는 누구인가? | | | |
| | ▲ 자연의 빈자리 | ⓒ지호 | | 저자 '팀 플래너리 (Tim Flannery)'는 사우스오스트레일리아 박물관의 관장이자 애들레이드 대학 환경생물학 교수. 1998년에서 1999년 사이에는 하버드 대학에서 오스트레일리아학 석좌 교수를 역임하기도.
<미래의 포식자들> <스로윔 웨이 레그> <나무와 캥거루> 모험생물담으로 많은 상을 받았으며, 최근에는 <영원한 변경>을 펴냈다. 2001년에 출간한 <자연의 빈자리>는 우리나라를 비롯한 세계 여러나라에 번역돼 커다란 인기를 끌었다.
'피터 샤우텐 (Peter Schouten)'은 야생동물 전문화가. 그의 작품은 다양한 잡지와 책에 실렸으며, 전 세계에서 전시되고 있다. 1997년 <나무와 캥거루>로 그 해에 가장 뛰어난 책에 주는 휘틀리 상을 두 차례나 수상하는 등 많은 상을 받았다.
번역을 한 이한음은 서울대 생물학과를 졸업.1996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부문에 당선, 2006년 현재 과학 전문 번역가로 활동 중. 지은 책으로 과학소설집 <신이 되고 싶은 컴퓨터>가 있고 옮긴 책으로 <해변의 과학자들> <자연의 빈자리> <핀치의 부리> <복제양 돌리> <인간본성에 대하여> <쫓기는 동물들의 생애> <와일드 하모니> 등이 있음.
<자연의 빈자리>는 저자 팀 플래너리의 다른 책. 지난 5백 년간 지구에서 사라진 동물들 103종에 대한 이야기다. 내용만 다를뿐 그림을 그린이, 옮긴이, 편집, 출판사, 책 값 모두 <경이로운 생명>과 같다. / 김현자 | | | | |
덧붙이는 글 | <경이로운 생명-원제 ‘Astonishing Animals’(2004년)>
-팀 플래너리 글/피터 샤우텐 그림/ 이한음 옮김/지호출판사 2006년 4월 12일/3만 8000원
※서평에 쓰인 이미지중에서 출판사의 동의를 얻어 기사와 적합하게 잘라낸 것이 있습니다. 실제로 책속에서 볼 수 있는 배경을 일부 잘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