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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전 제일초중고등학교 한글 반 수업 모습
ⓒ 김철호
우리 주변에는 가난 때문에 또는 나이 어린 동생이나 오라버니를 뒷바라지하느라 평생 공부에 한이 맺혀 살아오신 분들을 많이 있습니다. 그분들 중 어떤 분은 늦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용기를 내서 공부를 시작하는 것을 봅니다. 그분들에게 진심어린 응원을 보냅니다.

그러나 나이든 만 학도들의 학구열을 오롯이 수용할 수 있는 곳은 많지 않습니다. 나이가 많은 성인들에게 일반학교 교육을 따라 해서는 학습효과를 낼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만학도학습의 성패는 가르치는 이와 배우는 이의 상호 교감에 달려 있습니다. 교사가 만학도의 처해 있는 상황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가운데, 서로 인간관계가 형성되고, 상호 신뢰 쌓기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얼마 전, 교육부가 새로운 '성인 문해교육'과정을 발표했습니다. 교육부가 발표한 내용을 자세히 뜯어보면 은연중 야학을 배제하고 있지 않나 의구심이 듭니다.

하지만, '성인 문해교육'은 교사와 학생들 사이의 단순 지식이동으로 목적을 달성했다고 할 수 없습니다. '성인 문해교육'에서는 가르치는 이와 배우는 이의 삶의 경험과 해석에 대한 교류가 일어나야 합니다.

나이든 학생들은 교사로부터 전달된 지식들을 수동적으로 수용하지 않습니다. 교사와의 인간적 교감을 통하여 지적으로 이해하고, 경험으로 해석함으로써 삶의 활력과 보람을 느낍니다.

대전제일 초중고등학교(BBS야학)에서는 중입 검정고시 반을 운영해 오고 있습니다. 어르신들을 위한 한글반을 운영해 오던 중 공부에 새록새록 흥미를 느끼신 어르신들이 나타났습니다. 그분들의 학구열에 부응하기 위해 검정고시 반을 만든 것입니다. 이 검정고시 반을 통해서 어르신들은 새로운 도전의식을 갖게 되고 삶의 새로운 활력이 넘치게 되었다고 합니다.

20일(토요일) 대전제일 초중고등학교의 어머님학생들을 따라 대전지역 중입 검정고시장인 대전교육청사를 찾아갔습니다.

평생 온갖 고난과 역경을 이기고 살아오신 어머님들입니다. 검정고시 정도야 뭐 어렵겠냐고 호기를 부려보기도 하십니다. 그러나 막상, 평생 시험이라고는 쳐본 일이 없는 어머님들이기에 고시시간이 다가올수록 걱정과 두려움이 밀려옵니다. 기출문제를 한 문제라도 더 들여다보려고 애써보지만 도대체 머리에 들어오지를 않습니다.

▲ 검정고시 시작 전 고시장 풍경
ⓒ 김철호
대전제일 초중고등학교에서는 이번 중입 검정고시에 모두 여섯 분의 어머님들이 응시를 하셨습니다. 그중 이정순 어머님(74세)은 약시인 데다가 연세가 높으셔서 두툼한 돋보기를 쓰시고도 글씨를 가 잘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시험 감독관이 읽어주는 시험 문제를 듣고 시험을 치셨답니다. 덕분에 호사스럽게 너른 독방에서 혼자 시험을 치르셨습니다.

그런데, 시험이 끝나고 나오셔서 분해 하십니다. 연유를 물으니, 어떤 중년아낙이 '그 연세에 뭐 하러 검정고시를 치러 나오셨느냐'라고 하더랍니다. 화가 나서 그 아낙을 혼내주셨답니다. 앞으로도 계속 더 공부하셔서 고입 대입마치고 대학까지 가시라고 응원을 보내봅니다.

이번 중입 검정고시에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많습니다. 어떤 며느리는 시어머니를 모시고 함께 검정고시 학원을 다니다가 함께 시험을 보러 왔습니다. 남편 몰래 공부를 하고 검정고시를 보게 되었다는 아주머니도 있습니다. 어떤 어머님은 신분증 대신에 도장을 가지고 나오는 바람에 울상을 하며 시험관에게 하소연하기도 했습니다(괜한 걱정이었습니다만).

'모두사랑장애인야간학교'에서도 일곱 명의 학생들이 응시를 했습니다. 이곳에도 한글 반과 함께 중입 검시반이 있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낫 놓고 기억자도 모르던 어른들이 한글 반에 들어왔다가, 어느새 한글을 깨치고는 편지를 쓰곤 한답니다.

그러다가 공부에 대한 열망이 커지고 더 높은 학업의 희망을 갖게 되면서 중입 검정고시를 준비하게 된다고 합니다.

"나는 열 살입니다."

모두사랑장애인야간학교 초등 반의 구호랍니다. 수업시작 전, 모두 함께 구호를 외치고 수업에 임한답니다. 어쩌다 자존심에 마음이 상할 때마다, 못 배운 한에 서러울 때마다 스스로에게 크게 외치는 다짐이겠지요. 간혹 가다 교장선생님이 물어 본답니다.

"몇 살이죠?"
"열 살입니다."

야학은 오래도록 이 땅의 가난하고 소외된 민중들을 위한 사회적 교육을 담당해 왔습니다. 지금도 전국의 450여 야학은 교육부가 나 몰라라 외면한 경제·사회적 약자들의 학업을 돕고 이끌고 있습니다.

야학은 우리 사회의 소외계층이 없어질 때까지 그들 속으로 찾아 들어가 그들과 함께 삶과 지식을 나누는 활동을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야학이 가지고 있는 지금까지의 경험과 쌓아온 업적은 매우 소중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육부는 야학이 새로운 '성인 문해교육'에 주도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대전제일중고등학교(BBS야학 교감 홍윤기) 카페에도 소개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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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우리사회의 화두는 양극화와 불평등이다. 양극화와 불평등 내용도 다양하고 복잡하며 중층적이다. 필자는 희년빚탕감 상담활동가로서 '생명,공동체,섬김,나눔의 이야기들'을 찾아서 소개하는 글쓰기를 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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