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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록색의 바탕에 진록색으로 악센트를 둔 빛깔이 오월의 오대산이다.
연록색의 바탕에 진록색으로 악센트를 둔 빛깔이 오월의 오대산이다. ⓒ 김정봉
전나무 향이 몸에 배 무디어질 때쯤 경내에 닿는다. 전나무에 끌리어 가던 길을 계속가면 '오대산 월정사'라고 현판을 내건 용금루를 만나고 흙길에 매료되어 비스듬한 오르막길을 오르면 천왕문에 이른다.

천왕문, 용금루, 적광전, 삼성각, 범종각 등 월정사 주요 건물은 그리 오래되어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월정사는 건물의 모습과는 달리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다.

월정사 주요 건물은 한국전쟁으로 소실되고 팔각구층석탑이 손꼽을 만한 문화재다.
월정사 주요 건물은 한국전쟁으로 소실되고 팔각구층석탑이 손꼽을 만한 문화재다. ⓒ 김정봉
월정사는 신라 선덕여왕 12년(643년)에 자장율사에 의해 창건되었다. 자장율사가 창건하였다고는 하나 그 당시 것은 임시로 세운 초가 수준에 머물렀다. 수다사(水多寺)의 유연스님이 암자를 짓고 살면서 절의 모양을 갖추게 되었다.

고려 충렬왕과 조선 순조 때에 큰 화재를 입었고 한국전쟁으로 17동 건물이 모두 화마로 전소된 뒤 다시 건립되어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다행히 월정사 팔각9층석탑은 살아남아 월정사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9층석탑은 자장율사가 세웠다는 말도 있으나, 양식으로 볼 때 고려시대 것으로 추정되고 그 당시의 월정사는 초가 수준에 머물러 있는 점을 감안하면 자장율사가 세웠다고 한 것은 월정사와 자장율사와의 인연을 깊게 하기 위한 것일 뿐, 고려시대에 세워진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으로 보인다.

팔각구층석탑, 국보 48호로 고려시대 탑이다.
팔각구층석탑, 국보 48호로 고려시대 탑이다. ⓒ 김정봉
탑 앞에는 석조보살좌상이 공양하는 자세를 취하고 앉아 있었으나 보존상의 문제로 박물관안에 모셔져 아쉬움을 더한다. 문화재는 있어야 할 곳에 있어야 제 맛이 난다는 것이 나의 소신인데 보존을 문제 삼아 다른 곳에 보관하는 것은 약간은 무책임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턱은 길고 볼과 눈은 도톰하여 살짝 미소를 지어 보이고 있는데도 전체적으로 환한 미소로 비춰진다. 강릉 한송사터의 석조보살좌상과 신복사터의 석불좌상과 거의 흡사한데 한송사터에 이어 월정사의 석조보살좌상도 박물관 속으로 향하여 이제 햇볕 속에서 온화한 미소를 짓는 석불은 강릉 신복사터에나 가야 볼 수 있다. 탑과 함께 고려초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1000여 년의 모진 세월을 이겨내고 서있었다.

적광전 왼편에 '불유각(佛乳閣)'이라 적혀 있는 흥미로운 건물이 있다. 샘물을 덮고 있는 보호각이다. 불유는 '부처님 젖'이라는 의미인데 샘물을 부처님 젖으로 비유한 기발함이 엿보인다. 예산 덕숭산의 정혜사에 있는 만공스님이 썼다는 불유각을 생각나게 하여 반갑다. 만공스님은 1946년 76세로 열반에 들었으니 월정사 불유각은 정혜사의 불유각에서 힌트를 얻은 듯하다.

불유(佛乳), '불유는 부처님 젖'이라는 의미인데 비유가 기발하다.
불유(佛乳), '불유는 부처님 젖'이라는 의미인데 비유가 기발하다. ⓒ 김정봉
용금루 계단을 내려오면 온통 전나무다. 일주문에서 경내까지가 전나무 길이었다면 여기는 전나무숲이다. 난 개인적으로 이 곳을 더 좋아하여 아무 생각없이 한참동안 앉아 있곤 하는데, 벤치마다 윤기를 잃은 채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는 걸 보면 다른 사람들은 여기에서 오래 머물지 않는 모양이다.

용금루 앞에 있는 전나무 숲, 월정사에서 개인적으로 여기를 가장 좋아한다.
용금루 앞에 있는 전나무 숲, 월정사에서 개인적으로 여기를 가장 좋아한다. ⓒ 김정봉
이 전나무숲을 벗어나 상원사로 올라가는 길로 접어들면 오른쪽 양지바른 곳에 부도밭이 있다. 이 곳 역시 전나무로 둘러 쌓여 숲을 이루고 있다. 부도밭에는 크고 작은 여러 가지의 석종형 부도가 모여 있어 월정사의 역사를 가늠할 수 있다.

여러가지 모양의 석종형 부도가 모여 있어 월정사의 역사를 가늠할 수 있다.
여러가지 모양의 석종형 부도가 모여 있어 월정사의 역사를 가늠할 수 있다. ⓒ 김정봉
오대산 월정사, 전나무 숲길로 유명한 절이지만 월정사는 템플스테이, 평창군민 노래자랑, 산사영화제, 군민 족구대회 등 여러 가지 대중과 함께 하는 절로 더 유명하다. 여기에 최근(13일), 월정사에서 상원사까지 '오대산 천년의 숲길 걷기 대회'를 열어 대중 속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갔다.

불교가 우리나라에 전파되고 토착화되는 과정에서 기존의 민간신앙과의 접목을 꾀한 흔적으로 절 안에 칠성, 산신, 독성을 모신 삼성각의 존재를 들고 있다.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우리의 독특한 문화다. 불교와 민간신앙이 별개로 존재하지 않고 민간신앙의 토대 위에 불교를 받아들여 이렇게 혼합된 현상이 나타나게 되었다.

토착종교문화가 불교에 깊숙이 내재되어 있어 불교 신자의 대부분은 무엇을 기원한다던가, 제를 올린다던가 하는 이유에서 절을 찾는다. 민중은 불교본연의 깨달음이 아니라 기원 등 현세적인 것에 관심을 갖는다.

이번 흙길 걷기 대회는 "20리 흙길을 걸으며 나를 돌아본다"는 모토로 묵언과 기원, 나눔을 실천하고 자기내면을 돌아보는 기회로 마련한 것이라고 한다. 이번 모토는 우리나라 대부분의 불교신자의 가치체계에서 크게 벗어나는 어떻게 보면 획기적인 것이다. 득남이나 사업번창 등의 기원이 아닌 자기 성찰의 시간, 자기 수양의 목적을 이야기하고 있어 불교본연의 목적을 내세우고 있다.

기원 등 다분히 현세적인 면에 치우쳐 있는 대중들의 의식과 깨달음과 내세관에 관심을 두는 불교간의 의식의 괴리가 있을 수 있다. 템플스테이, 산사음악회, 숲길 걷기, 산사영화제 등은 대중문화를 매개로 이런 의식의 단절을 메우려는 의지의 표현으로 받아들여진다.

절에서는 절대 하지 않을 것 같고 다소 의아하게 보일 수 있는 행사도 이제는 곧잘 볼 수 있다. 이번 숲길 걷기대회에서 스님과 신자, 혹은 여행객이 모두 동참하여 꼭지점 댄스도 췄으니 획기적인 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스님들도 꼭지점 댄스를?
스님들도 꼭지점 댄스를? ⓒ 김정봉
숲길을 걸으며 사업과 득남을 빌기보다는 사회에서 생긴 욕심과 찌든 마음, 분노와 슬픔을 조금이라도 잊고 버리는 마음을 가졌으리라 본다. 일반인이라면 버리는 마음의 불심(拂心)을, 불교신자는 깨달음의 불심(佛心)을 느꼈을지 모르겠다.

오대산 천년의 숲길을 걷고 있는 중생
오대산 천년의 숲길을 걷고 있는 중생 ⓒ 김정봉
돌아오는 길에 전등아래의 석조보살의 미소라도 보고 오려고 박물관안으로 들어가려는데 "표 끊고 들어오세요"라는 관리인의 싸늘한 한마디가 들려 온다. 마치 표를 끊고 들어오나, 그냥 들어오나 어디 두고 보자는 식으로 들어서자마자 '친절하게도' 안내하는 말이었다.

2년 전에 탑 앞에 고이 모셔져 있는 미소를 보기 위해 3시간이나 달려왔을 때, 석조보살상은 박물관에 모셔져 있다는 말에 휑한 마음을 달래기 어려웠는데 그 싸늘한 한마디가 나의 마음을 2년 전으로 돌아가게 만들었다. 일상과 수행은 둘이 아니니 대중과의 인연을 늘려야 한다는 주지스님의 말씀이 왜 이렇게 공허하게 들리는지.

석조보살좌상의 미소, 박물관 보다 플래카드에서 미소가 더 환해 보인다.
석조보살좌상의 미소, 박물관 보다 플래카드에서 미소가 더 환해 보인다. ⓒ 김정봉
바람에 나부끼는 플래카드에 새겨진 보살님의 미소가 어두운 박물관에 있는 미소보다 더 따뜻해 보였다. 행사를 통한 대중과의 인연을 맺는 노력도 중요하지만 우리 문화재를 제자리로 돌려놓아 우리 유물을 통한 대중과의 인연도 중요하다. 강릉 신복사터의 석불좌상이 박물관으로 가기 전에, 전국사찰의 종이 박물관으로 들어가기 전에 빨리 한 번이라도 더 찾아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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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不自美 因人而彰(미불자미 인인이창), 아름다움은 절로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사람으로 인하여 드러난다. 무정한 산수, 사람을 만나 정을 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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