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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구조에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휴대폰 긴급문자서비스’가 위급 상황에 도움이 되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오작동으로 피해를 주거나 장난용으로 사용되고 있어 문제가 되고 있다.
긴급구조에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휴대폰 긴급문자서비스’가 위급 상황에 도움이 되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오작동으로 피해를 주거나 장난용으로 사용되고 있어 문제가 되고 있다. ⓒ 우먼타임스
삑삑삑삑, 삑삑삑삑. 5월17일 오후 6시, 회사에서 기획회의를 하고 있던 이모(28·서울 은평구 불광동)씨는 난데없는 휴대폰 경보음에 깜짝 놀랐다. 진동 모드로 해놓았는데도 휴대폰에서 처음 듣는 경보음이 크게 네 번 울린 것이다. 액정에는 "위급한 상황입니다. 도와주세요"라는 메시지가 떴고, 발신자는 이씨의 가장 친한 친구 김모(28·서울 강남구 대치동)씨였다. 김씨는 퇴근길에 술 취한 남자가 자신과 데이트를 하자며 계속 협박하자 도망치는 길에 이씨에게 긴급문자를 보낸 것이었다.

이씨는 너무 놀라 바로 김씨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 않았다. 친구가 위험한 상황에 처한 것 같아 이동통신사에 전화해 상황을 설명하고 위치추적을 의뢰했지만 "소방방재청에 알아보아야 한다"는 답변만 들을 수 있었다. 119에도 전화했지만 배우자 및 직계존속 친인척이 아니라는 이유로 위치추적을 의뢰할 수 없었다.

김씨는 다행히 지나가는 행인에게 도움을 요청해 봉변을 당하지 않고 무사히 귀가했으나, 이씨는 긴급문자 서비스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자신의 블로그에 사연을 올린 최모(31·경기 성남시)씨의 사례도 비슷하다. 친구가 실수로 단축 버튼을 누르는 바람에 긴급문자를 받았지만 통신사로부터 이씨와 똑같은 답변을 들었을 뿐이다. 몇 분 후 친구의 실수로 인한 것임을 알고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지만 최씨는 아직도 그때 생각을 하면 아찔하다고 실토한다. 만약 정말 친구가 위험한 상황에 처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두 여성 모두 "생각만으로도 끔찍하다"고 입을 모은다.

'모바일 경호원'이라 불리며 위급 상황 시 빠른 구조 요청이 가능하다고 알려져 있는 '휴대폰 긴급문자 서비스'가 빛 좋은 개살구에 그치고 있다. 삼성전자의 '애니콜SOS', KTF의 '긴급메시지' 등 휴대폰의 긴급메시지 기능은 휴대폰 볼륨 키를 네 번 누르면 이용자가 지정해놓은 수신처로 "위급한 상황입니다. 도와주세요"라는 메시지가 전송된다. 그러나 위 사례처럼 구조 활동에 필요한 위치추적 시스템을 가동하는 데에는 많은 한계가 따르고 있다.

우선 위치정보를 요청할 수 있는 주체가 이용자의 '배우자와 직계 존·비속'으로 제한되어 있다. '위치정보의보호및이용등에관한법률' 제29조에 따르면 "급박한 위험으로부터 생명·신체를 보호하기 위하여 개인위치정보주체, 개인위치정보주체의 배우자 또는 직계 존·비속의 긴급구조 요청이 있는 경우, 긴급구조 상황 여부를 판단하여 위치정보사업자에게 개인위치 정보의 제공을 요청할 수 있다"고 명시되어 있다. 이에 따라 친한 친구나 연인에게 아무리 긴급 메시지를 보내도 가족과 연결되지 않으면 위급 상황에서 가장 절실한 위치정보를 요청조차 할 수 없다.

위치를 추적할 때 이동단말기의 위치를 추적하는 것이 아니라, 이동단말기와 교신을 하고 있는 기지국의 위치정보를 확인하는 시스템(이하 'Cell-ID' 시스템)을 사용하는 것도 문제다. 오차가 많아 정확한 위치를 확인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기지국이 많이 설치되어 있는 도심도 1~2km, 외곽에서는 4km 정도의 오차가 발생할 수 있어 1시간 이상 구조 활동이 지연될 수 있다. 휴대폰이 꺼져있을 경우에는 추적조차 되지 않는다.

긴급문자 서비스가 악용되고 있다는 점도 골칫거리다. 포털 사이트에서 도움을 요청하는 글을 쉽게 발견할 수 있을 정도로 악용 사례가 빈번하다. yun426란 ID의 네티즌은 "친구들이 자꾸 긴급문자로 장난을 쳐서 진동 모드로 해놓아도 회사에서 눈총을 받고 있는데 서비스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없어 곤란하다"고 실토했고, pocheonrjh란 네티즌은 "단말기 기능이라 수신 거부가 안 되기 때문에 상대방 번호 자체를 수신 거부하지 않는 이상 긴급문자 장난을 막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삼성전자 정보통신 총괄 홍보그룹 관계자는 "단말기 제조사는 긴급 상황을 알리는 긴급 메시지를 전송하는 기능만 제공하고 있기 때문에 소방방재청에 연결하는 등의 조치는 이용자들의 몫"이라고 말했다. KTF 관계자는 "개인 정보침해 문제 때문에 소방방재청에서 긴급 상황으로 인정한 사안에 대해서만 위치정보 시스템을 가동하게 되어 있다"고 설명했다.

휴대폰 긴급 메시지의 실효성이 매우 저조하다는 걸 깨달은 이씨와 김씨는 이번 일을 겪은 후 'Cell-ID' 시스템을 신청, 긴급 상황 시 서로 위치추적이라도 가능하게 했다. 긴급문자 메시지의 '긴급'이란 단어가 무색하다는 것을 몸소 체험했기 때문이다.

소방방재청 상황실 모습.
소방방재청 상황실 모습. ⓒ 우먼타임스
긴급 상황에서 휴대폰으로 대처할 수 있는 묘안은 없을까. 전문가들은 대안으로 '119 이용'과 'GPS(Global Positioning System: 위성위치확인시스템)'가 내장된 휴대폰 단말기 보급을 꼽았다. 긴급 상황 시 당사자가 바로 119에 전화하거나 구조를 요청하는 문자를 보내면 소방방재청에서는 바로 위치추적 시스템을 가동해 구조 활동에 들어갈 수 있다. 소방방재청의 이른바 '119 이동전화위치정보시스템'은 2004년 11월부터 2005년 9월까지 시행한 결과 총 1천만 건 이상의 신고가 접수됐고 이중 6만4천 명 이상이 구조됐다.

지금보다 더 나은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여러 가지 보완책도 준비하고 있다. 김기룡 소방방재청 소방령은 "개인정보 침해를 막기 위해 배우자와 직계 존비속 신고를 받았을 경우 빠른 정보 파악을 위해 법원 호적등본시스템과 연계하는 프로그램을 추진하는 등 보다 나은 시스템을 갖추기 위해 유지, 보수하고 있는 기간"이라고 설명했다.

GPS폰 이용은 기술적인 대응이라 볼 수 있다. 현재 GPS폰은 'Cell-ID' 시스템과 달리 위성을 이용하고 디지털 지도를 적용하기 때문에 구조 요청을 한 호출자의 위치를 보다 정확히 파악할 수 있다. GPS폰을 이용하면 긴급 상황을 알리는 문자와 함께 호출자의 정확한 위치정보가 지도로 전송되기 때문에 빠르게 구조 활동을 벌일 수 있다.

그러나 GPS폰 보급 실적은 매우 저조하다. 한국의 GPS폰 보급률은 미국 93%, 일본 68%에 비해 훨씬 낮은 16%에 그치고 있다. KTF 신촌 대리점 관계자는 "일반 휴대폰과 비교해 전혀 비싸지 않지만 GPS폰의 장점에 대해 고객들이 잘 모를 뿐만 아니라 이용료가 비싸다는 편견이 있어 판매율이 낮다"고 설명했다.

한편 한나라당 고경화 의원은 정확한 위치를 파악할 수 있는 GPS폰 생산 의무화 등을 골자로 한 '위치정보의보호및이용등에관한법률' 개정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고경화 의원실은 "성폭력 등 강력범죄를 퇴치하기 위한 대책으로 휴대폰을 통해 구조 활동을 받을 수 있는 GPS폰을 보급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며 "GPS폰을 통한 정확한 위치 확인으로 효과적인 수사뿐만 아니라 범죄 예방 효과도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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