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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촘스키, 세상의 물음에 답하다> 겉그림.
<촘스키, 세상의 물음에 답하다> 겉그림. ⓒ 시대의 창
외부의 적보다 내부의 적이 더 가공할 파괴력을 만들기도 한다. 미국의 '노암 촘스키'도 그렇다. 미국으로서는 그만큼 골치 아픈 지식인도 없을 터인데, 그가 국내에 알려진 건 <불량국가> 등의 작품들을 통해서였다. 소개되는 그의 작품들은 하나같이 미국의 제국주의를 날카롭게 비판하며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그의 진면목은 '말'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촘스키는 미국의 지식인들이 미국의 패권주의를 침묵하거나 혹은 동조하는 때에도 홀로 거리로, 민중 속으로 걸어가 '싸울 것'을 요구했다. 그는 '좋은 자리'를 놔두고 험한 길을 택했고 수많은 강연과 세미나 등을 참가해 민중에게 싸워야 하는 이유를 설파했다. 국내의 보수 언론들이 그들의 취향에 맞지 않음에도 촘스키라는 이름에 함부로 흠집을 내지 못하는 것은, 미국에 대한 숭배주의는 둘째치고라도 지성인으로써의 이러한 면모를 알기 때문이리라.

'시대의 창'에서 소개하는 <촘스키, 세상의 물음에 답하다>는 그 지성인의 '사상'을 폭넓게 살펴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다. 촘스키 전문가로 통하는 이종인이 번역을 맡은 이 책은 총 3권으로 이루어졌다. 1권은 '권력이 여론을 조작하는 방식에 대하여', 2권은 '권력이 세상을 지배하는 방식에 관하여', 3권은 '민중이 권력에 저항하는 방식에 대하여' 등의 주제로 책 제목처럼 그 동안 촘스키가 각종 강연회 등에서 받은 질문에 답하는 형식으로 꾸려졌다.

정의국가 미국의 실상은 '깡패국가'

1권은 테러 국가를 응징한다는 정의국가 미국이 실상은 깡패국가라는 비판으로 시작한다. 촘스키는 미국이 아이티나 니카라과 등에서 자행한 보이지 않는 '테러', 즉 군부세력 등을 지원해 쿠데타를 일으키게 하거나 민주 지도자를 암살하는 방식을 어떻게 사용했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또한 정의로운 언론을 표방하지만 '권력의 나팔수'로 전락한, 아니 태생부터 그럴 수밖에 없는 미국의 메이저 언론들이 '찬란히 빛나는 거짓말'을 일삼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이러한 1권의 주요 내용은 전쟁을 일으키는 미국의 신제국주의와 기생하는 언론을 비판하는 것과 동시에 세계가 '점점 더 가난해진다'는 것을 알리는데 초점이 모아진다. 그렇기에 1권은 미국을 착한 국가로 믿고 있거나 혹은 '워터게이트'사건을 두고 '정의로운 언론의 승리'라고 평하던 이들에게 충격적인 내용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촘스키의 답변 하나하나에 담긴 논리성과 풍부한 사례는 미국과 언론을 옹호하고 싶은 이들을 '꿀 먹은 벙어리'로 만들고 만다. 촘스키는 '찬란히 빛나는 거짓말'이 아니라 '진실'을 말하기 때문이다.

2권은 제국이 어떻게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지를 설명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특히 제3세계를 다루는 미국의 방식이 상세하게 언급됐는데 이 내용들은 1권의 연장선상에 있으며 그 여파는 여전히 강력하다. 또한 2권에서는 시민운동과 제국의 엉터리 자본주의, 지식인의 책무 등이 주요하게 다뤄졌다.

2권에서 주요하게 다루는 시민운동 같은 경우 외로울 수밖에 없는 운동인 만큼 질문하는 내용들이 거대담론보다는 개인적인 의견에 치우쳐 있다. 그만큼 촘스키의 솔직한 생각을 엿볼 수 있는 기회가 되는데 이에 대해 촘스키는 '절망적이지만 희망이 있다'며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긍정적인 비전을 내놓고 있다.

반면에 요즘의 자본주의나 지식인에 대해서는 어느 곳보다 강하게 비판의 날을 세우고 있다. 아담 스미스가 놀라고 말 정도로 왜곡된 자본주의나 권력층에게 아부하려는 지식인의 모습은 세상을 지배하는 제국의 횡포를 이중삼중으로 재생산하기 때문이다.

자본주의뿐만 아니라 자본주의의 반대편에 있다고 알려진 레닌주의나 마르크스 등을 비판한 것이나 '과학과 인문학의 이데올로기 통제', '현대 경제학의 기만' 등을 다룬 것도 눈에 띈다. 이러한 내용들은 쉽게 접할 수 없거나 그나마 다룬 작품들을 볼라치면 난해한 설명으로 이해하는데 어려움을 줬는데 책의 구성이'질문/대답'형식이라는 것과 촘스키가 평이하게 설명하려고 애쓴 덕분에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신뢰해도 좋을 '진짜 지식인' 촘스키

3권엔 중국이나 캐나다, 복지국가나 불매운동, 사이버 세계와 팔레스타인의 운명 등 다양한 주제들이 등장한 탓에 세계 전반에 관한 촘스키의 생각을 두루 엿볼 수 있다. 물론 1권과 2권에 뒤지지 않는 비판의 날도 가득한데 그보다 눈에 띄는 것은 어느 곳보다 희망이 강조되고 있다는 것일 게다.

왜 희망을 강조하는가? 3권은 미래를 향하고 있다. 촘스키는 현재 제국은 더욱 강력해지고 통제는 날로 치밀해진다고 진단한다. 그러나 인간은 선택할 수 있다고 말한다. 비록 선택을 해도 당장은 두세 명이 대화를 나누는 수준에서 시작할 테지만 그것이 일파만파로 퍼져나갈 수 있으니 희망을 잃지 말라고 다부진 어조로 당부하는 것이다.

이 암담한 시기에 그게 가능할까? 의문이 생기지 않을 수 없는데 촘스키는 이런 의문을 알기라도 하듯 과거를 예로 든다. 노예해방이나 여성투표참여 등도 당시에는 불가능해보였지만 희망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며 영광스러운 과거는 오늘날에도, 그리고 미래에도 재현될 수 있다고 사람들을 격려하고 있다. 과거와 현재에 실천하고 있으며, 그리고 미래에도 직접 실천할 것임을 알기 때문인가? 촘스키의 당부는 묘한 울림을 주며 사면초가에 빠진 운동가들에게 하늘을 볼 수 있게 해주고 있다.

지식인들을 두고 우열을 가리는 건 어리석은 짓이다. '누가 잘났냐'는 기준으로 그들을 볼 필요가 없다. 중요한 것은 말과 행동이 일치하고, 언행일치 뒤에 정의로운 신념이 담겨있는 지식인이 신뢰해도 좋을 '진짜 지식인'이라는 사실일 게다. 그런 면에서 촘스키는 부족할 것이 없다. 그는 자신이 믿는 바에 따라 제국주의의 영광스러운 자리를 박찼고 세계인에게 제국주의의 실태를 알리고 제국주의를 분쇄하기 위해 모든 것을 바치고 있다.

그러니 어찌 귀담아 듣기를 망설이랴. 권력이 어떻게 민중을 지배하고 그 상황 앞에서 민중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답변들과 보다 나은 세상을 꿈꾸는 열망이 생생하게 담긴 <촘스키, 세상의 물음에 답하다>, 보다 높은 곳을 바라보게 해주는 디딤돌로 손색이 없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알라딘 개인블로그에도 게재했습니다.


촘스키, 세상의 물음에 답하다 1 - 권력이 여론을 조작하는 방식에 관하여

노암 촘스키 지음, 피터 R. 미첼.존 쇼펠 엮음, 이종인 옮김, 시대의창(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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