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5월 23일 오전 여의도 MTM 건물 앞에는 관광버스 한 대와 그곳을 열심히 오가며 짐을 나르는 '애둘란'의 아줌마들로 들썩거렸다. 심상치 않은 그들. <강남역 네거리 Ⅱ>를 성황리에 마치고 뿔뿔이 흩어진 것이 아니라 더 많은 인원이 모이고 또 뭉쳤다. 이번에는 봉사활동이다.

봉사활동이지만 이들의 봉사활동은 어려운 시설을 찾아가거나 어르신을 돌봐드리는데 그치지 않는다. 극단이기 때문에 당연히 그들의 봉사는 공연이다. 볼거리를 제공함으로써 그네들의 주체할 수 없는 끼를 선보이고 아프신 분들에게는 마음의 위로와 즐거움을 준다.

이번에는 노인들을 대상으로 한 작품 <패러디 극장 -왕의 남자>를 준비했다. MTM의 미시반에 소속된 끼있는'아줌마(?) 학생'들과 졸업생들이 모여 신나게 판을 벌였다.

이번 봉사활동은 자칭 '일 저지르기에는 선수'인 <강남역 네거리 Ⅱ>의 연출자이자 MTM 연기 지도 강사 이예리씨와 황의노 MTM 대표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이루어졌다. MTM에서는 공연 제반 비용과 관광버스 대절 비용을 지원하고 이예리씨는 각본 각색 및 연출과 연기 지도를 담당했다.

▲ 사전 주의사항을 전달 중인 사회 복지사 유보라씨
ⓒ 박유민
관광버스를 타고 세시간여 만에 도착한 충주 노인 전문 병원. 병원장님과 사회복지사 간호사들이 그들을 반갑게 맞았다. 간단히 짐을 풀고 병원 소속의 유보라 사회복지사의 봉사 전 주의사항을 들었다. 공연에 앞서 어르신들의 식사 수발을 하기로 되어있었기 때문이다.

그 분의 설명에 따르면, 치매는 기억 장애와 언어 장애, 방향 감각과 계산 능력, 성격 변화 등의 다양한 증상을 수반하는 질병이다. 그래서 어르신들께서 엉뚱한 행동이나 말, 무리한 요구를 하더라도 '네, 네'하면서 약간의 선의의 거짓말을 해주는 센스가 필요하다고 한다.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할 경우 사회 복지사나 간호사, 소속 간병인에게 도움을 청해야 한다. 그리고 충주 노인 병원의 슬로건이 '어르신들의 마음까지 돌보겠습니다'인 만큼 호칭 또한 '할머니', '할아버지'가 아닌 어르신이라고 불러야만 한다고 당부했다. 그래야만 더 존경심을 갖고 그분들을 대할 수 있다고.

▲ 식사 수발 중인 이병규씨
ⓒ 박유민
본격적인 식사 수발이 시작되었다. 대부분 주부들이라 어르신들 수발을 드는데 큰 어려움은 없었지만 환자를 간호하는 일이 처음이라 어르신 기저귀를 갈아야하는 상황에 적잖이 당황한 사람도 있었다.

▲ 만담을 진행중인 유창수 씨
ⓒ 박유민
변귀순(42) 씨는 눈이 안 보이는 할머니를 맡았는데 자신이 떠먹여준 밥을 "맛있다"며 드시는 어르신을 보며 보이지 않는 사람의 눈이 된다는 것이 뿌듯하고 보람되었다고 한다.

송혜선(43)씨는 미국에 있던 시절 아들과 함께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멕시코, 아프리카의 기니 등지를 돌며 이미 해외 봉사를 몇 년간 해온 베테랑이다. "한국 부모님들은 희생만 할 줄 알지 너무 자신을 돌보지 않는 것 같아 안타깝다"는 말을 전했다.

▲ 요염한 장녹수 역을 하는 유정은 씨
ⓒ 박유민
남편이 간암으로 두달 만에 작고한 뒤 마음 둘 곳을 찾다가 MTM의 문을 두드린 최찬숙(58)씨는 10살차 여동생 최정남씨와 함께 미시반 수업을 듣다가 이곳을 찾았다.

생전에 남편이 기부하는 한달에 10만원 조금 넘는 돈이 살림하는 주부로서 너무 많지 않느냐고 했다던 그녀는, 이곳에 와서 힘들게 사시는 분들을 보니 그렇게 말했던 자신이 부끄러웠다고 한다. 이 두 자매는 50만 원을 봉사활동에 보태기도 했다.

정치에 뜻이 있어 화술을 키우고자 등록했던 김성철(53)씨는 등록한 첫날에 얼떨결에 따라오게 된 케이스. 평소에 적십자에서 '사랑의 요구르트 보내기 운동'등을 해온 그는 얼마 전 치매로 돌아가신 아버지 덕분에 이날 뵌 어르신들이 남처럼 느껴지지 않았다고 했다.

▲ 구성진 민요가락을 부르는 금나래씨
ⓒ 박유민
국악으로 4집까지 음반을 낸 프로 가수로 즐거운 민요를 구성지게 불러 어르신들을 즐겁게 한 금나래(47)씨는 예전에 연기를 하면서 치매에 걸린 노인 역을 해서 어르신들의 마음이 더 와닿는 것 같다며 그 순간 아픔 잊으라고 열창을 해서 앵콜 박수를 받았다.

▲ 능청스런 내시들
ⓒ 박유민
학생시절 페미니즘 학생운동을 했다는 연출자 이예리씨는 난지도에서 공부방과 야학을 했었다고 한다. 그 때는 봉사활동이라기보다 사회 변혁 운동에 가까웠는데, 감성에 치우친 학생들도 더러 있었지만 그곳의 아이들은 친구를 원했다며, 여기 오길 잘한 것 같다고 했다.

▲ 공연을 보며 즐거워하시는 어르신들
ⓒ 박유민

▲ 공연을 보며 즐거워하시는 어르신들
ⓒ 박유민
공연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가는 버스를 탔는데 사회 복지사 유보라씨가 달려 나왔다. 어르신들을 위한 공연이나 잔치 같은 것이 많을 줄 알았는데 신생 병원이라 공연 일정이 많지 않다는 말에 3개월 뒤에 다시 방문하겠다는 약속을 황의노 MTM 대표에게서 흔쾌히 받아내자 다음에 다시 오라는 약속의 말을 남겼다.

▲ 공연을 마치고
ⓒ 박유민
봉사 활동 뿐 아니라, 내년 2, 3월 무렵에 공연 예정인 <강남역 네거리 Ⅲ>를 준비중인 이예리씨는 현재 국제적으로 띄울 수 있는 무대를 만들기 위해 창작 에너지를 모으는데 바쁘다.

그전 <강남역 네거리Ⅰ>로 영국 에딘버러 페스티벌에도 참가했던 경험을 통해 해외에서도 통하려면, 대사가 많고 복잡한 내용이 아닌 비언어 (Non Verbal) 형식을 띤 작품을 구상 중이라고 한다.

이번 <강남역 네거리 Ⅲ>는 최근 국제 사회와 한국사회의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는 저출산의 문제를 핵심으로 다룰 예정이다. 해외 입양과 낙태에 관한 소재를 포함해서 사이코적인 성격을 띤 작품으로, 전작들보다 페미니즘적 컬러를 더 강하게 띠게 될 것이라고 한다.

이미 정부 기관의 후원과 언론사의 협찬 약속을 받아낸 상태다. 보다 강하고 질적으로 새로워진 <강남역 네거리 Ⅲ>를 만들어갈 MTM 주부 극단 '애둘란'의 활약을 기대해 본다.

태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돈 몇푼을 위해 내 글 쪼가리를 파는 것보다, 혼자 쓰고, 혼자 읽고, 아는 이 몇몇에게 돌려 읽히느니 보다, 보다 폭넓게 나의 글이 읽히게 하고 싶다. 그러나, 오마이뉴스에는 나의 포지티브만 싣겠다. 나의 희망만 실어나르겠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