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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먹물버섯, 소나 말의 배설물 위에서 자란다.
꼬마먹물버섯, 소나 말의 배설물 위에서 자란다. ⓒ 고평열
이젠 여름이다. 하루 중 대부분의 시간을 들에서 지내야 하기 때문에 이제 익숙해져 가고 있지만 그래도 자외선이 부담스러울 만큼 햇살은 따갑고 한낮의 자동차 안은 뜨겁다.

일 년의 사계절 중에서 여름을 가장 싫어했는데, 야생에서의 버섯은 이 계절에만 거의 대부분이 피어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여름은 기다려지는 계절이 되었다. 이젠 제법 찐득찐득한 땀이 솟아 버섯의 계절이 되었음을 몸이 먼저 알려온다.

고깔먹물버섯 유균의 모습 . 죽은 나무에 무리지어 발생하여 장관을 이룬다.
고깔먹물버섯 유균의 모습 . 죽은 나무에 무리지어 발생하여 장관을 이룬다. ⓒ 고평열
서귀포에서 전화가 왔다. 걸메생태공원에 버섯이 솟아 있다는 것이다. 시간이 가능하기만 하면 어디든 달려가는 터라 서둘러 달려갔다.

고깔먹물버섯의 노균-하루 이틀이 채 지나지 않아 검게 먹물화 되어 간다.
고깔먹물버섯의 노균-하루 이틀이 채 지나지 않아 검게 먹물화 되어 간다. ⓒ 고평열
5월은 그믐이 되도록 유난히 비가 많이 온 달이어서 그런지 잔디를 베어내고 있는 공원 안의 여기저기에서 야생버섯들의 모습이 목격되었다. 걸메생태공원으로 들어선 나를 처음 맞이한 것은 먹물버섯이었다.

나보다 20∼30분 먼저 도착한 지인은 자기가 처음 도착했을 때보다 버섯이 더 시들어 녹아간다며 "어머... 이럴 수가 있어?"하며 이상해 한다.

갈색먹물버섯-죽은 나무에 무리지어 발생
갈색먹물버섯-죽은 나무에 무리지어 발생 ⓒ 고평열
먹물버섯이 속해 있는 Coprinus 속의 버섯들이 갖는 특성은 성장을 하면서 하루가 지나지 않아 먹물이 되어 버리는 특징이 있다. 아침에 발견해서 저녁쯤에 다시 간다면 버섯은 온데간데없고 녹아 내린 먹물의 흔적만 남아 있기가 십상이다. 그래서 서양에서는 잉크버섯이라고 하며 실제로 잉크대신 글을 쓰는데 사용되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고 한다.

갈색먹물버섯의 먹물화 되어가는 모습
갈색먹물버섯의 먹물화 되어가는 모습 ⓒ 고평열
식물에는 꽃이 피어 씨앗이 달려 후손을 남기고, 균사체는 버섯을 피워 포자를 널리 날림으로써 번식을 한다.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야생의 버섯들을 세밀히 관찰하다 보면 참으로 오묘한 생명의 힘을 느끼게 된다.

재먹물버섯
재먹물버섯 ⓒ 고평열
버섯들은 자신만의 독특한 방법으로 번식을 시도하는데 먹물버섯의 번식 방법 또한 독특한 자기만의 방법을 고수한다. 갓 돋아나 아직 싱싱한 자신의 몸을 녹여 먹물을 만들어 흘러내리게 함으로써 포자를 묻힌 먹물을 곤충의 몸에 묻혀 이동하거나 풀잎에 묻어 있다가 풀을 먹는 동물에 의존하여 더욱 멀리 이동을 시도하는 것이다.

두엄먹물버섯
두엄먹물버섯 ⓒ 고평열
몸을 움직일 수 없는 식물들 중 민들레처럼 홀씨를 만들어 바람을 이용해 멀리멀리 씨앗을 날리기도 하고, 도꼬마리처럼 사람이나 동물의 몸에 잘 달라붙도록 진화하여 씨앗의 이동을 시도하는 것처럼 버섯들 또한 후손을 남기기 위해 온갖 꾀를 다 내며 진화해온 것이다.

두엄먹물버섯이 먹물화 되는 모습
두엄먹물버섯이 먹물화 되는 모습 ⓒ 고평열
먹물버섯을 보고 있노라면 '모성'을 떠올리게 된다. '자식 최우선주의', 자신은 어떻게 되든지 간에 자식을 위해 모든 것을 걸 수 있는 모성, 혹은 부성. 인간은 자신의 선택과 사랑의 마음으로 자손 번식을 실행에 옮기지만 버섯은 끊임없이 변하는 환경의 변화에 적응하며 후손을 남기기 위한 최선의 방법을 찾아 진화해 왔을 터이니, 그 생태의 신비로움은 알수록 사로잡는 매력이 된다.

먹물버섯의 유균
먹물버섯의 유균 ⓒ 고평열
Coprinus 중에서 두엄먹물버섯은 또 하나의 재미있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어린 상태의 버섯은 식용버섯이지만 술과 함께 먹으면 중독을 일으킨다. 같이 먹더라도 술을 마시지 않은 사람은 아무렇지도 않은데 술과 함께 먹은 사람에게는 다시 술 생각이 나지 않을 만큼 혹독하게 홍역을 치른다고 하니 주의를 요하는 버섯이다.

먹물버섯이 먹물화 되는 모습
먹물버섯이 먹물화 되는 모습 ⓒ 고평열
나름대로 살려고 최선을 다해 진화해 오며 자연에 적응되어진 버섯의 세계, 농약에 찌들어 사라지고, 공사의 현장에서 스러지고, 이제 점점 설 땅을 잃어 가는 버섯의 모체인 균사체들의 메시지가 들려오는 듯하다.

"같이 살자... 우리 더불어 함께 살자."

덧붙이는 글 | 고평열 기자는 제주도에서 자연생태해설사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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