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길 민주노동당 의원은 "언론이 이번 선거를 대전의 승패로만 보도하고 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피습사건 이후 병상에 있던 박 대표가 첫 말문을 연 게 "대전은요?"였다고 한다. 그 뒤 대전은 바로 최대 격전지로 변해버렸다. 박 대표의 퇴원 후 동선도 그렇게 짜여졌다. 30일 병원 문을 나서며 바로 대전으로 향했다.
31일, 다음 행선지는 제주였다. 무소속 후보에 이어 2위를 달리고 있는 한나라당 후보를 위한 지원유세를 했다. 박 대표의 유세는 2분을 넘지 못했지만 위력은 대단했다. 박 대표를 만나기 위해 수천 명의 지지자들이 모여들었다.
피습 이후 박 대표의 인기는 더 공고해졌다. 태극기를 흔들고 대한민국 만세를 외치는 것을 넘어서 나아가 그의 '오른쪽 뺨'을 바라보며 눈물짓는 이들까지 생겨났다.
16개 시·도 광역단체장 선거에서 호남을 제외한 13군데를 한나라당이 잠식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실현된다면, 한나라당으로선 지방선거 사상 최대 성적이다.
1995년 신한국당 시절, 15개 시도지사 가운데 5개만 차지해 참패했고, 그 다음 지방선거에서도 새정치국민회의의 압승으로 귀결됐다. 그러다가 지난 2002년 선거에서 한나라당은 16곳 가운데 11곳을 차지했다.
열린우리당은 전북 한 곳의 승리를 점치는 상황. 선거 이후 민주당과의 관계에서 주도권을 쥘 수 있다는 점에서 정동영 의장은 광주시장선거에 각별히 공을 들였지만 결과는 불투명하다.
민주당은 전남, 광주 2곳을 확실한 우세지역으로 꼽으며 '광역' 선거에서만큼은 집권여당을 추월하겠다고 공언한다. 한화갑 대표는 호남을 교두보로 수권정당으로 도약하겠다고 말한다.
민주노동당은 정당 득표율을 통해 정당 중 유일하게 전국 시도에서 광역 비례대표를 배출하겠다는 목표를 내세웠다. 울산·부산·경기·인천 등 주요 도시에서 '2위 열린우리당'을 얼마나 추격할지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강금실, '아름다운 패배'로 희망 싹 틔우나
박근혜 대표가 없는 한나라당 유세 현장은 별 재미가 없었다. 후보들의 열정이나 지지자들의 맹렬함, 유권자들의 관심도도 떨어졌다. 일찌감치 완승이 점쳐졌기 때문이다.
오세훈 서울시장 후보의 마지막 날도 싱거웠다. 줄곧 차를 이용하는 '회오리 유세'를 하는 바람에 장시간 후보가 도착하기를 기다렸던 운동원들이나 시민들은 맥이 빠졌다. 마지막 서울광장 유세장에는 200여 명이 참여했을 뿐이다. 오 후보는 마무리 연설에서 줄곧 강조해온 '클린 선거'(깨끗한 선거, 칭찬 선거, 정책 선거)를 "해냈다"고 자평한 뒤 '압승'을 호소했다.
당락을 떠나 열린우리당에겐 서울시장 선거가 일종의 '격전지' 역할을 하고 있다. 오세훈 한나라당 후보와의 지지도 격차가 커 뒤집을 가능성은 높지 않지만 강금실 후보의 '릴레이 유세'가 잔잔한 감동을 자아냈다.
열린우리당 지도부의 지원유세에는 사람이 별로 모이지 않는다. 의장이 와도 그랬다. 지난 주 대국민 호소문을 발표한 뒤 정동영 의장은 명동에서 유세를 벌였지만 썰렁했다. 선거운동원을 제외하고 100∼200명 가량의 유동 인구가 지켜보는 수준이었다.
반면 강금실 후보의 마지막 유세가 있던 명동에는 3000여 명의 시민이 운집했다. 성별, 나이, 직업 골고루 섞였다. '노무현, 열린우리당 지지자'라고만 볼 수 없는 사람들이었다.
장성원(38, 모건설사 근무)씨는 퇴근길 회사에서 A4용지에 프린트해온 급조된 피켓('여성의 희망, 우리 아이들의 미래 강금실')을 들고 서 있었다. "72시간 유세를 하고 있다는데 그냥 들어가면 잠이 안올 것 같아서 나왔다"고 말한다.
릴레이유세 응원 댓글이 10만 개를 돌파, 자정을 넘어서까지 강 후보의 홈페이지는 식지 않았다. 강 후보 캠프에선 "3일만 더 있었어도…"라며 늦게 붙은 불에 탄식을 쏟아냈다.
남성 정치인 몰고 다니는 카리스마... 대권에는?
이번 지방선거는 '판세'보다 박근혜 대표와 강금실 후보의 사력을 다하는 투혼에 관심이 더 쏠렸다.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박 대표는 '부상 투혼'을, 강 후보는 '불면 투혼'을 강행했다. '정치쇼'라는 일각의 곱지 않은 시선에도 불구하고 남성 정치인들을 '몰고 다니는' 카리스마를 발휘했다.
두 여인의 행보를 '대권'과 연결짓는 전망도 나온다. 대권주자 반열에 있는 박 대표에겐 반석에 오른 효과를 냈다는 시각이다. 최근 이명박 시장을 앞선다는 여론조사도 나왔다.
강 후보에겐 '대선 후보'라는 수식이 따라붙고 있다. 명동 유세장에 나온 한영수(53, 공무원)씨는 "대통령에 도전하라"고 소리쳤다. 강 후보 홈페이지에도 이 같은 주장이 심심치않다.
지방선거가 끝나면 얼마간의 휴지기를 거쳐 대선 국면에 돌입할 전망이다. 열린우리당은 "백지에서 시작하겠다"며 다양한 경우의 수에 대비하고 있다. 정동영·김근태 등 기존의 주자군이 당 안팎에서 얼마나 더 넓혀질지 관심사다.
한나라당은 6월, 임기를 끝내고 당으로 복귀하는 이명박 시장·손학규 도지사와 박 대표 사이의 대권 경쟁이 본격화된다. 그 사이에서 오세훈 후보를 통해 위상이 높아진 소장파의 저울추 역할도 관심사다.
민주노동당도 어느 때보다 후보군이 다양해졌다. 지난 2년 원내 진출의 성과로 권영길 의원에 더해 노회찬, 천영세, 심상정 의원 등이 경선 도전장을 낼 것이라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민주당은 고건 전 총리와 통합론 카드를 만지작거리며 수권 정당으로 도약할 꿈을 꾸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