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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1 지방선거 결과가 한나라당의 압승으로 끝났다. '역탄핵'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2004년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이 과반 의석을  얻은 동력이 되었던 대통령 탄핵 역풍을 빗댄 말이다. 여당은 처참하게 졌고, 한나라당은 완벽하게 이겼다. 유권자들이 이런 선택을 한 까닭은 무엇일까. 이번 선거결과가 향후 정치지형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이에 <오마이뉴스>는 정치빅뱅까지 몰고 올 수 있는 정국에 대한 분석과 진단, 전망에 대한 글을 몇 차례에 걸쳐 게재한다. 이러한 '정치평론'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누리꾼들의 많은 참여를 부탁드린다. <편집자주>
5.31지방선거에서 열린우리당이 사상 최악의 참패를 당해, 미리 준비해 놓은 선거상황판에 장미꽃을 달지 못한 채 썰렁하다.
5.31지방선거에서 열린우리당이 사상 최악의 참패를 당해, 미리 준비해 놓은 선거상황판에 장미꽃을 달지 못한 채 썰렁하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노무현 대통령이 리더십의 위기에 봉착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리더십의 위기에 봉착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개혁정치 아마추어들이 이 나라 정치구조의 진화를 최소한 20년 이상 퇴행시켰다. 1998년 정권교체 이후 맞이한 10년의 기회를 원위치 시켰으며, '노무현 학습효과'로 인해 앞으로 10년 이상 집권 기회를 못 가질 가능성이 높다. 단순히 실패한 것이 아니라 사태를 최악으로 악화시켰다. 노란 하늘이 아직 실감나지도 않을 것이고, 순순히 인정하고 싶지도 않을 것이다. 물론 대선까지는 아직 시간이 남아 있다. 그러나 이 상태라면 두고 볼 것도 없다.

침몰하는 노무현 정부, 왜?

내가 위에서 개혁정치 아마추어라고 지칭한 사람들은 단순히 노무현 대통령을 둘러싼 집권세력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이 그런 생각을 갖도록 만든 지지자들까지 포함한다. 아마추어들에겐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개혁만 부르짖으면 개혁이 된다고 생각한다는 점이다. 말을 바꾸면 집결세력이 한 명이든 두 명이든 옳다고 생각하는 길을 부르짖으면 개혁이 된다고 믿는다는 점이다. 미안한 말이지만 역사상 그렇게 이루어진 개혁은 없다.

노무현 정부는 왜 실패하고 있는가? 지지세력 결집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왜 지지세력 결집에 실패했는가? 정권을 만들어낸 전통적 지지세력의 확대가 아니라, 새로운 지지세력으로 전통적 지지세력을 교체하려다 실패했기 때문이다. 이는 전통적 지지세력의 중심축인 호남이 수행해왔던 민주개혁의 역사적 정당성과 지위를 하루아침에 부정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터무니없는 이데올로기는 개혁세력을 완전히 지배했다.

그런데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개혁정치 아마추어들이 호남을 개혁의 토대로 삼아 호남과 개혁세력의 연대를 확대ㆍ강화하기보다는 호남이라는 지역관념을 없애야만 개혁이 확대ㆍ강화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민주당은 청산대상이었다. 당연히 역사의 문제는 이렇게 제기됐다. 저항하는 호남이 사라지면 패권을 추구하는 영남도 사라질 것인가? 영남 출신 노무현 대통령의 장밋빛 환상은 이런 것이었다.

"저는 이와 같은 것이 보기에 따라 호남을 기반으로 했던 민주당만 먼저 분열되고 한나라당은 당당하게 저렇게 서 있으면 호남만 분열되고 오히려 고립되는 것 아니냐라는 불안을 많은 사람들이 가지겠지만 그러나 저는 그런 과정을 통해서 지역, 말하자면 증오와 분노를 부추기는 방식으로 자기 당의 결속을 유지해 왔던 그런 정치질서의 총체적 붕괴가 일어나리라고 생각한다."(<인터넷 한겨레>, 2003년 9월 17일)

총체적 붕괴??!! 노 대통령의 '생각'이 만들어낸 참담한 현실을 좀 보라! 노 대통령의 장밋빛 환상 덕분에 한나라당은 공룡이 되어 돌아왔다. 그나마 공룡이 된 한나라당에 강철처럼 맞서 버텨낸 건 호남뿐이다. 개혁을 떠들던 장삼이사의 표는 다 어디로 갔는가? 이러니 호남이 누굴 믿겠는가! 한나라당은 노 대통령이 상상했던 '지역관념 없는 개혁(?!)부동층'을 흡수해 다시 완벽하게 "호남만 분열되고 오히려 고립"시키고 게임을 끝냈다.

도대체 이 엽기적인 실패에 어떻게 책임질 것인가? 아니 그들이 책임의식이라도 있을까? 오히려 "대한민국은 이미 일정한 궤도 위에 올라와 있어 국민은 과거보다 여유 있는 입장에서 집권세력을 선택할 수 있다고 본다"(<인터넷 중앙일보> 2006년 5월 15일)는 유시민 장관의 염장지르는 소리만 들린다. 이런 식이라면 "호남만 분열되고 오히려 고립"시킨 책임을 묻는 나의 시선은 호남근본주의자의 구시대적 착시현상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지지세력 분열, 이유는 있다

제발 이제 보고 싶은 환상만으로 세상을 규정하지 말고 보고 싶지 않은 현실도 좀 직시하기 바란다. '노무현 이데올로기'는 호남이라는 관념을 없애자는 것이었다. 그 결과 수도권의 상당수 호남 유권자는 한나라당에 기꺼이 투표했다. 이는 역사상 어떤 독재자도 하지 못한 일이었다. 이렇게라도 지역구도가 허물어졌으니 축하할 일인가? 호남이 그럴진대 DJP연대를 통해 가까워진 상당수 충청 유권자가 한나라당에 다시 귀환한 것도 당연했다.

ⓒ 오마이뉴스 고정미
처음부터 지지세력의 확고한 결집에 실패한 결과 개혁은 혼란 속에서 우왕좌왕할 수밖에 없었다. 되는 것도 없고 안 되는 것도 없는 개혁에 피로함을 느낀 수도권 부동층도 다시 한나라당에 돌아섰다. 예정된 악순환이었다. 물론 여전히 확고한 신념을 가진 진보세력은 민주노동당에 투표한다. 그리고 그보다 더 확고한 신념을 가진 영남 유권자는 당연히 한나라당에 투표한다. 자, 그렇다면 열린우리당의 표는 어디에서 나올까?

과거를 이해하면 미래도 보인다. 노 대통령에게 지역문제는 실체가 있는 패권관계가 아닌 실체가 없는 감정적 허구다. 그래서 이 관점을 지지하는 친노 세력은 앞으로도 지역관점으로 세상을 분석하는 일 따위는 속으로만 할 것이다. 그들은 앞으로도 '개혁이 미진해 지지자들이 한나라당으로 떠났으므로 개혁초심으로 돌아가자'고 열심히 뒷북을 칠 것이다. 진실을 외면하는 이 무책임하고 습관적인 구호가 정말이지 이젠 지겹다.

생각해보라. 만약 지방선거 결과가 미진한 개혁실패의 결과일 뿐이라면 왜 그들은 더 강력한 개혁을 요구하며 민주노동당으로 집결하지 않고 수구적인 한나라당으로 귀환했을까? 그리고 왜 미진한 개혁에도 불구하고 다른 지역민들과는 달리 호남만이 압도적으로 한나라당을 거부하고 있을까? 지방선거 결과를 '지역패권문제 없는 개혁실패의 결과'만으로 해석하려는 것은 전략실패의 책임을 모면하기 위한 역사적 '무한지연책'일 뿐이다.

정치권의 '반한나라당 전선' 구축, 가능할까

한편, 좋게 말해 현실을 직시하는 혹은 나쁘게 말해 국회의원직 재창출만이 유일한 관심사인 그룹은 다시 통합을 부르짖으며 어떻게든 살길을 찾으려 할 것이다. 그러나 통합이 어떻게 가능할까? 표현이야 다양하게 나오겠지만 결국 '반한나라당 전선'을 구축하자는 것이 요체일 것이다. 얼핏 보기에 '반한나라당 연대'는 통합을 주장하는 호남중심의 '살자파'와 초심을 외치는 영남중심의 '몽환파'가 두말없이 합의할 수 있는 공통분모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두 정치세력은 절대로 '반한나라당 연대'에 쉽게 합의하지 못할 것이다. 왜 그럴까? 간단하다. '반한나라당 연대'란 구체적으로 '영남인들이 절대적으로 지지하는 한나라당에 반대하는 세력의 결집'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그 주체는 다시 호남과 연대지역 그리고 개혁세력이 된다. 이 경우 호남이라는 지역 관념이 다시 등장할 것이고 노 대통령을 중심으로 하는 영남개혁세력은 이를 참을 수가 없을 것이다.

상기하자. 노회찬 의원은 '열린우리당과 민주노동당의 꿈의 리그'를 말했고, 노무현 대통령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전통적 지지층 복원'을 말했을 때 '창당 초심'으로 제동을 걸었으며, 문재인 전 수석은 '부산정권' 발언과 함께 '민주당과의 합당 반대'라는 노 대통령의 복심을 확인했다. 가치맹목적인 영남의 눈으로 역사를 보는 그들에게 '반한나라당 연대'는 '역3당합당'이며 '도로난닝구'의 굴욕에 불과할 것이다.

한나라당에 대연정을 제안한 사람들, 한나라당에 정권이 넘어가도 일종의 정치발전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영남인들은 한나라당에 열심히 투표하지만 아무 잘못도 없으므로 그들은 99마리의 양보다 더 중요한 길 잃은 1마리의 양이라고 믿는 사람들, 한나라당이 앞으로 백년을 지배하더라도 반한나라당 연대는 과거회귀일 뿐이라며 '관념으로 현실을 재단'하려는 사람들과 '반한나라당 전선'을 구축하는 작업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울 것이다.

31일 저녁 5.31지방선거 방송사 출구조사 결과가 열린우리당의 참패로 나타나자, 정동영 의장과 김한길 원내대표가 굳은 표정을 짓고 있다.
31일 저녁 5.31지방선거 방송사 출구조사 결과가 열린우리당의 참패로 나타나자, 정동영 의장과 김한길 원내대표가 굳은 표정을 짓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앞으로 열린우리당은 다수당으로 존속할 수 있을까? 없다! 그들의 통합논의는 동시에 분열논의이기도 할 것이기 때문이다. '영남개혁세력=꼬마민주당=양비론=노무현 이데올로기'로 무장하여 호남을 표찍는 도구로 사용하면서 영남에 정의를 구걸하려 했던 열린우리당의 몽환적 정치실험은 분명히 실패했다. 그러나 이데올로기는 아직 살아 있다. 다만 앞으로도 '그들 분파'가 역사와 싸울 무기가 '양비론'이라는 사실이 유감일 뿐이다.

미래를 말하기 전, 현실부터 직시해야

덧붙여 민주노동당에 대해서도 할 말이 있다. 울산을 기반으로 성장해온 민주노동당도 호남에 관한 한 '노무현 이데올로기'로 무장한 열린우리당의 양비론과 한 치도 다르지 않다. 그들은 한나라당을 반개혁ㆍ수구정당이라고 규정하면서도 바로 그 반개혁ㆍ수구정당을 노동계급보다도 더 철저히 거부하는 차별지역 호남과의 연대를 거부한다. 연대는커녕 호남이라는 지역관념의 극복이 곧 그들이 융성해지는 길이라고 믿는다.

이는 노동 '계급'이든, 식민 '지역'이든, 피지배 '인종'이든 피차별 '여성'이든 약자들과의 연대가 모든 정치투쟁의 필연적 전제조건일 수밖에 없는 전 세계 진보역사에서 유래를 찾기 힘든 기이한 사태다. 나는 이 유래 없는 사태를 자랑하는 이 나라 개혁ㆍ진보세력의 이데올로기가 한없이 부끄럽다. 개혁ㆍ진보세력에 의한 호남 해체가 아닌 호남과 개혁ㆍ진보세력의 연대만이 한나라당을 극복할 수 있다는 상식을 믿기에 그렇다.

이 모든 위선적 정의에도 불구하고 어쨌든 결과만 좋았다면 정의는 역사의 숙제로 남겨질 수도 있었다. 그러나 결과는 참혹하다. 한나라당으로 발현되는 영남패권주의 이데올로기에 '무릎 꿇고 반항하는' 식의 영남개혁세력의 이 사이비 개혁정치는 호남을 개혁 이데올로기와 철저히 분리시켰으며, 그 분리된 호남은 다시 불가피하게 양분되어 소수로의 전락을 자초했고, 그 결과는 당연하게도 '노무현 식 개혁정치'의 참담한 실패로 귀결됐다.

한 마디로 열린우리당의 비참한 몰락은 아주 오래된 논쟁, 즉 '호남 없는 개혁'이 가능한가에 대한 역사경험적인 냉혹한 응답이다. 니체를 인용하면 병자가 된 열린우리당은 "예전에 자신이 탐닉했던 가장 고귀하고 가장 사랑스러운 환상들을 경멸과 함께 상기"할 것이다. 그러나 역사를 추동해왔던 호남과 개혁세력의 미래는 반드시 계속되어야 한다. 이미 늦었지만 깨달은 바가 있다면 지금부터라도 현실을 직시하고 정도를 걷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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