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선거 결과 최대 위기 상태에 놓인 열린우리당이 쉽사리 수습책을 강구하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강금실 전 서울시장 후보의 역할론이 급부상하고 있다.
강 전 후보는 31일 개표 중간 패배를 인정하고 기자회견을 열고 향후 자신의 거취에 대해 "시간을 두고 천천히 생각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강 전 후보가 선거를 치르면서 "정치인의 길을 가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는 게 주변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지난 30일 한 측근은 "선거에서 이기면 좋지만 지더라도 정치인이 되겠다는 결심을 굳혔다"며 "현장의 시민들을 만나면서 정말 정치를 바꾸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고 (본인 스스로도) 해볼만한 영역이라고 자신감을 얻은 것 같다"고 전했다.
선거기간 막판, 강 전 후보가 벌인 '72시간 릴레이 유세'가 잔잔한 감동을 낳았고 마지막 명동 유세에 3000여명의 지지자들이 모여들어 패색 짙은 열린우리당에 한가닥 희망을 불어넣기도 했다.
강금실 "정치인의 길 가겠다"
강금실 캠프에서 선거기획을 담당한 민병두 의원은 "지방선거에서 동원이 아닌 자발적으로 시민 3000명이 모여든다는 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라며 "졌지만 진정한 승리자"라고 치켜세웠다.
이어 민 의원은 "(강 전 후보가 정치를 해야 한다는 것에) 일정한 요구가 형성되고 있다"면서도 "강 전 후보가 진정성을 추구하는 사람이니 당장 나서기 보다 준비와 고민을 할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조직을 담당했던 이인영 의원은 강 전 후보를 "피터팬 같은 정치인"이라고 칭하기도 했다. 정의감으로 무장한 '로빈 훗' 같은 정치인에 견줘 '순수함'을 강조한 표현.
강 전 후보는 최근 유세 마무리를 "시민들과 끝까지 함께 가겠습니다"라는 말로 맺어왔다. 또 현장을 돌고 시민들을 직접 만나면서 그는 "내가 다시 태어났다, 나의 영혼이 깊어졌다"며 "나를 키워준 건 여러분"이라는 표현도 자주 사용했다.
열린우리당 내에선 당장 '지명직 최고위원' 자리가 거론되고 있다. 사실 지도부는 서울시장 경선이 끝난 뒤 강 전 후보에게 이 같은 제안을 이미 했지만 본인이 거절했다는 후문이다. 당헌·당규에 따라 당의장은 2명의 최고위원을 지명할 수 있는데 현재까지 공석이다.
한 여당 관계자는 "지금은 열린우리당이 정계개편이든 개헌이든 어떤 정치적 제안을 해도 바로 역풍으로 이어진다"며 "차분하게 국민의 피부에 와닿는 개혁 정책으로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선거기간 '교육 시장'을 표방해온 강 전 후보에게 당 '교육 정책'을 맡기는 것도 방안이라고 말했다.
비상대책위원회가 꾸려질 경우 위원장을 맡는다는 얘기도 거론되고 있다. 김근태 최고위원은 강 전 후보의 향후 역할론에 대해 긍정적으로 반응을 보이며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 폭넓게 열어놓고 의견을 교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대권 주자로 나서야 한다"는 얘기도 나온다.
하지만 당장 결론이 날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강 전 후보의 한 측근은 "서울시장 후보를 수락할 때와 달리 이제는 준비된 정치인으로 보다 책임있는 행동이 필요한 때"라며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한 강 전 후보의 입장을 대변했다.
한편 정동의 의장이 사퇴의사를 밝힌 가운데, 비대위 체제로 갈 것인지 김근태 최고위원이 의장직을 승계할 것인지를 놓고, 1일 오전 10시 30분 현재 지도부 회의가 계속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