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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김영하가 진행하는 '문화포커스' 홈페이지 화면.
소설가 김영하가 진행하는 '문화포커스' 홈페이지 화면. ⓒ KBS
저녁인지 밤인지 구분하기 애매한 10시 무렵, 상당수 사람들은 이미 TV 앞에 앉아 있다. 이 시간대에 공중파의 주요 채널이 소리 없는 드라마 전쟁을 벌이기 때문이다. 믿음이 독실한 시청자들은 이들 방송사가 시청률을 위해 식상하게 맞춤제작한 이야기에 울고 웃는다. 그리고 다음날에도, 그 다음날에도 무늬만 바꾼 같은 드라마는 또다시 돌아온다.

혹 이런 와중에도 괜찮은 드라마가 아니면 TV를 켜지 않겠다고 생각하는, 그래서 이 시간대에 아예 색다른 뭔가를 바라는 분들이 있다면, 라디오로 한번쯤 그 손길과 귀를 돌리길 바란다.

물론 여러 프로그램이 있겠지만, 추천하고 싶은 건 김영하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가 진행하는 '김영하의 문화포커스'(아래 문화포커스)이다. 소설가인 그가 방송 마이크를 잡은 지도 이미 한 달이 넘었다. 그만큼 프로그램 진행이 서서히 궤도에 올랐다고 해야 할 것 같다.

지난 4월 24일 첫 방송에서 김영하는 "어려서 라디오를 처음 들었을 때 어떤 사람들이 모여서 만들고 어떤 경로로 라디오 방송이 내 귀에 들어올까 신기해했다"면서 "이제 세월이 흘러 제가 그런 전파를 내보내야 할 때가 왔다"고 진행 소감을 담담하게 밝혔다. 아울러 그는 "라디오가 고독한 사람을 이어주는 매개라는 점에서는 지금도 변함이 없는 것 같다"며 매체의 특징을 간결하게 정리하기도 했다.

문화 현장의 생동감을 전해주는 미덕

매일 밤 10시 10분, KBS 제1라디오에서 방송되는 '문화포커스'는 내용이 꽤 알차서 하루라도 놓치면 아까울 정도이다. 월요일에는 우리 문화에서 가장 화제가 되는 작품을 놓고 토론하는 '주목받는 화제작'과 문화계의 뜨거운 화제를 이야기하는 '문화를 말한다'가 격주로 방송을 탄다. 화요일엔 음악평론가 정만섭씨가 추천하는 '음악 속으로'가 방송된다.

'왜 피카소인가'라는 주제로 진행된 지난달 29일 방송은 전문가의 도움말을 비롯해, 서울에서 열리는 피카소 관련 전시회를 소개하고 전시장을 찾은 시민들의 전문가 못지않은 감상평을 내보냈다. 매체의 한계 탓에 미술 작품의 시각적 이미지를 전달할 수는 없었으나, 피카소의 현재적 의미는 물론 그를 둘러싼 뒷이야기 등 흥미로운 정보를 들을 수 있었다.

한편 수요일에는 세계의 다양한 문화계 소식을 전해주는 '우리 동네 이야기', 김동식 인하대 교수와 함께 근대성을 생각해 보는 '돌고 돌고 돌고', '박사, 이명석의 만화로망백서' 등이 진행된다. 목요일엔 미술평론가 박영택 경기대 교수가 추천하는 '전시장 가는 날'과 담당 피디가 직접 문화 현장을 찾는 '문화대행! 유피디가 간다'를 방송한다.

여기서 특히 '우리 동네 이야기'와 '문화대행! 유피디가 간다'는 주목할 만하다. 이 두 코너는 우리가 직접 접하기 어려운 세계의 다양한 문화계 소식과 우리 일상의 문화 현장을 생생하게 전해준다.

지난달 16일에는 현지 유학생이 요르단의 문학 흐름을 소개했고, 25일에는 서초노인종합복지관에서 팝송을 따라 부르며 젊게 사는 노인들의 문화교실을 현장감 있게 전달하기도 했다. 다만 앞으로는 세계와 서울의 문화 소식 못지않게 이른바 '지방'의 다양한 문화 소식을 보강해야 필요가 있다.

영화, 미술, 책, 고전이 공존하는 문화마을

이밖에도 금요일에는 '언제나 시작은 영화로'와 임근준 <아트 인 컬쳐> 편집장의 '용감한 그들, 당돌한 예술'이 청취자를 찾는다. 토요일에는 진행자 김영하가 표정훈 출판평론가와 함께 신간 이야기를 나누는 '장군 멍군 김소설 대 표평론', 책에 얽힌 청취자들의 소중한 추억을 소개하는 코너로 최재봉 한겨레신문 기자와 진행하는 '이 책만은 못 버려'가 방송된다. 그리고 일요일에는 조현설 서울대 교수와 함께 우리 고전 작품의 세계를 살펴보는 '고전아 놀아보자'가 방송된다.

책을 외면하는 시대에 의미 있는 신간을 소개하는 작업은 중요하다. 본인이 작가인 만큼 진행자 김영하는 책에 관한 추억과 애정이 사뭇 남달라 보인다. 또한 최근 방송 날짜를 바꾼 '고전아 놀아보자' 코너는 고전의 작품 세계에 잠깐이나마 빠져볼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이기도 하다. 이외에 '용감한 그들, 당돌한 예술'에서는 초대 손님의 독특한 입담을 즐길 수 있음은 물론, 색다른 미술계의 흐름을 귀동냥할 수 있다는 점도 충분한 매력이다.

21세기는 문화의 세기라고 떠들면서도 현재 문화 흐름을 밀도 있게 조망하는 프로그램이 턱없이 부족한 상황에서 '문화 포커스'의 고군분투는 찬란한 별빛으로 다가온다. 어쩌면 넓은 바다 한가운데서 고독하게 표류하는 이에게 이정표는 북극성 하나로 충분할지도 모르겠다.

'문화사진관'에는 방송에서 소개한 작품과 초대 손님의 사진이 실려 있다.
'문화사진관'에는 방송에서 소개한 작품과 초대 손님의 사진이 실려 있다. ⓒ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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