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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번기라 한창 바쁘실 어른들을 위해서 준비한 젓갈들입니다.
농번기라 한창 바쁘실 어른들을 위해서 준비한 젓갈들입니다. ⓒ 이승숙
선거일이었던 지난 수요일, 마당을 정리하며 남편에게 말했다.

"여보, 우리 젓갈 사러 소래포구 가자."
"젓갈은 왜?"
"응, 지난번에 어머님이 갈치속젓 맛있다고 하셨어. 좀 사서 내려 가자."
"젓갈 사러 소래포구까지?"
"싫어? 그럼 가지 말고. 나 먹자고 그러나 뭐, 아버님이 좋아하시니까 그런 거지..."

우리 시댁 식구들은 이상하게 젓갈을 참 좋아한다. 바닷가 사람도 아닌데 젓갈이 밥상에서 사라진 적이 없다. 우리 집도 항상 3가지 정도 젓갈을 기본으로 가지고 있다.

지난 겨울에 서해안 간월도에 놀러갔다 오면서 갈치속젓과 어리굴젓을 샀다. 마침 며칠 뒤에 시댁 갈 일이 있어서 그 젓갈을 반 덜어서 갖다 드렸다. 그 일을 두고 나중에 시어머니께서 "야야, 그기 무슨 젓이고? 너거 아부지가 좋아 하시더라"며 웃으셨다.

갈치속젓에 청량고추를 좀 다져 넣어 무쳐 먹으면 참 맛있는데 우리 아버님이랑 남편 그리고 아들까지 삼 대가 똑같이 그걸 좋아한다.

삽으로 흙을 파서 외발 수레에 싣던 남편은 내 말에 아무 말도 안 한다. 아버님이 좋아 하셔서 사러 가자는데 달리 뭐라 할 말이 있겠는가.

"그럼 차이나타운에 가서 자장면도 한 그릇 사먹자."

자장면을 좋아하는 남편은 벌써 입맛이 당기는지 외발 수레를 힘차게 밀며 소래포구 행을 결정했다. 소래포구는 인천광역시와 시흥시 사이에 있는데 젓갈과 해산물이 많은 곳으로 유명하다. 서울과 인천 그리고 부천 등 인근 대도시에서 가까워 소래포구는 주말이면 사람들로 넘쳐난다. 우리도 가끔씩 나들이 삼아 소래포구로 가 젓갈을 사거나 생선회를 먹는다.

아침 먹고 그냥 심심풀이로 시작한 꽃밭과 마당 정리를 대충 마치고 투표하러 갔다. 투표를 마치고 소래 포구로 향했다. 가는 길에 인천 북성동에 있는 차이나타운에 들러 원조 자장면을 먹기로 하고 남편과 기분 좋게 나선 것이다.

짜장면의 발생지인 인천 차이나타운입니다.
짜장면의 발생지인 인천 차이나타운입니다. ⓒ 이승숙
차이나타운은 색깔부터 다르다. 온통 붉은 계통의 색이다. 간판과 가로등 그리고 건물 외벽도 모두 붉은색이다.

쉬는 날이라서 차이나타운은 사람들로 넘쳐 났다. 음식점에도 사람들로 가득했다. 겨우 빈자리를 하나 차지하고 앉아서 원조 자장면과 짬뽕 한 그릇씩을 시켰다.

점심을 먹고 밖으로 나와서 이 곳 저 곳 기웃대며 구경을 했다. 차이나타운에는 중국 옷과 신발, 그리고 차와 다기들까지 온통 중국 물건들뿐이었다. 우리는 이것저것 구경하다가 앙증맞게 생긴 수저받침을 식구 수대로 샀다.

다시 길을 달려 소래포구로 향했다. 소래포구에도 역시 사람들로 넘쳐 났다. 어딜 가나 사람들의 물결이다.

젓갈을 살 때면 항상 가는 그 집 '옹진상회'를 찾아갔다. 벌써 10년 이상 우리가 찾아가는 단골 젓갈집이다. 갈 때마다 덤을 얹어주던 할머니는 뒤로 물러나 앉아 있었고 딸인 듯한 30대 여인이 장사를 하고 있었다. 명란젓과 창란젓, 갈치속젓에다 청어알젓 그리고 낙지젓까지 한 보따리를 샀다.

우리 부부는 해마다 6월 6일 현충일 무렵이면 경북 의성 본가로 간다. 그 때 쯤 의성은 마늘을 캐느라 온 동네가 바쁘다. 마늘을 캐면 한 단씩 묶어서 벽에 걸어두고 말렸다. 그 무거운 마늘을 한 두 접도 아니고 수백 접씩 달아 올리려면 힘 좋은 젊은이가 필요하다. 그러나 시골에는 노인들만 계시고 힘을 써야 할 젊은이들은 없다. 그래서 우리는 해마다 의성 본가로 가서 마늘 거는 일을 도맡아 해왔다.

나는 마늘 농사짓는 모습을 보며 자랐지만 일을 잘 할 줄 모른다. 그래서 그냥 어른들 따라 다니면서 잔심부름이나 하고 머리가 떨어진 마늘이나 줍곤 한다. 올해는 특별히 카메라를 들고 가서 일하는 어르신들 모습을 찍을 생각이다. 또 아버님께 옛날 살아온 이야기들을 들어볼 작정이다.

내 나이 마흔이 넘고, 이제서야 어른들이 보인다. 어른들이 살갑게 대하시진 않지만 항상 우리를 든든하게 여기고 미더워하시는 게 느껴진다. 어렵기만 했던 시어른들이 어느 때부터는 편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지금은 아버님과 남편이 집에서 술 한 잔을 하면 그 옆에 누워 둘의 이야기를 듣는다. 가끔 깜빡 졸면서 말이다.

그러면 남편이 "이 사람이, 여기서 자면 우짜노?"라며 나를 쿡 찌르고, 아버님은 "놔둬라, 집에 온다고 곤해서 그러는데 그양 놔둬라"며 말리신다.

올해는 막내 동서네랑 시누이네도 의성에 온다고 하니 낮에는 마늘 캐고 밤에는 이런저런 이야기하면서 술도 한 잔하고 정도 나눠야겠다. 이번 주말이 은근히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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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일을 '놀이'처럼 합니다. 신명나게 살다보면 내 삶의 키도 따라서 클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오늘도 뭐 재미있는 일이 없나 살핍니다. 이웃과 함께 재미있게 사는 게 목표입니다. 아침이 반갑고 저녁은 평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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