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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실에서 누에를 돌보고 있는 노석용(71세) 씨
잠실에서 누에를 돌보고 있는 노석용(71세) 씨 ⓒ 서종규
6월 4일 오후 우리나라에서 누에고치를 가장 많이 치는 전라북도 정읍시 고부면 입석리를 찾았다. 1970년대엔 마을 주변이 모두 뽕나무밭으로 봄과 가을 두 철에 치는 누에농사에 분주하였단다. 전국적으로 많은 잠농인들이 견학을 와서 누에치는 방법을 배워가곤 하였던 곳이란다.

입석리 입구에는 현대식 건물인 농가들이 들어서 있고, 두승산 진입로 쪽으로 약간 올라가자 울창하게 보이는 뽕나무밭이 나타났다. 아직도 여기저기 많은 뽕나무밭에 탐스런 뽕나무잎들이 출렁거리고 있었다.

누에를 치는 잠실은 하우스 형태로 되어 겉은 검은 막으로 차단이 되어 있고, 보온이 되는 덮개로 덮여 있었다. 잠실 안엔 백열전구가 2m 간격으로 켜 있었고, 덕장 위에 이제 세 번째 잠을 자려는 누에들이 움직임을 멈추고 있었다.

누에는 알에서 태어나 네 번 잠을 자면서 탈바꿈을 한 후에 고치를 짓는다. 누에가 고개를 들면 잠에 들어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누에는 알에서 태어나 네 번 잠을 자면서 탈바꿈을 한 후에 고치를 짓는다. 누에가 고개를 들면 잠에 들어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서종규
누에는 알에서 태어나 네 번 잠을 자면서 탈바꿈을 한 후에 고치를 짓고, 그 고치 안에서 번데기가 되었다가, 다시 나방이 되어 고치를 뚫고 나와 알을 낳은 뒤 죽는 과정을 거친다. 그 고치가 바로 비단인 실크의 원료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 마을 잠실에서 길러진 누에로는 이제 고치를 생산하지 않는다. 80년대부터 외국에서 수입되는 실크로 인하여 우리나라 잠업은 크게 타격을 받았고, 정부에서 지원이 끊긴 뒤 타산이 맞지 않아서 모두 잠업을 포기하였단다.

그러다가 누에가 당뇨병, 항암제 등 여러 가지 건강식품으로 각광을 받자 다시 찾는 사람들이 생겨서 요즈음까지 누에 농사를 이어오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요즈음은 누에를 길러서 약재로 팔고 있다고 하였다.

잠실 안엔 백열 전구가 2m 간격으로 켜 있었고, 덕장 위에 이제 세 잠을 자려는 누에들이 움직임을 멈추고 있었다.
잠실 안엔 백열 전구가 2m 간격으로 켜 있었고, 덕장 위에 이제 세 잠을 자려는 누에들이 움직임을 멈추고 있었다. ⓒ 서종규
누에를 기르는 잠실에서 만난 노석용(71세)씨는 땅에 기어 다니는 개미를 열심히 쫓고 있었다. 개미뿐만 아니라 모기나 파리 등도 누에 성장에 큰 영향을 주기 때문에 그것들의 접근을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바닥에는 석 잠을 자려는 누에에게 뽕잎을 주려고 그 부인 임영애(67세)씨가 열심히 뽕잎을 썰고 있었다. 노용석 씨와 대화를 나누었다.

- 할아버지 지금 이 잠실에 얼마 정도의 누에를 치고 있는가요?
"예, 20 상자를 치고 있어요. 옛날에는 한 장이라고도 하고, 한 매라고도 하기도 했는데, 지금은 한 상자라고 해요. 한 상자에는 보통 2만개의 알이 들어 있어요. 그것을 부화하면 2만 마리의 누에가 태어나는 것이지요. 20상자이니 줄잡아 40만 마리의 누에게 자라고 있다고 보면 됩니다."

- 현재 누에가 얼마나 자랐는가요?
"예, 이제 석 잠 들어가려고 해요. 요즈음은 영이라고 하는데, 4영에 해당되지요. 누에는 4영부터 성장이 눈에 띄게 빨라지는데, 4영에서 깨어나게 되면 그 크기가 훨씬 커져서 뽕나무를 가지 채 올려 주어도 금방 다 먹어 치워요. 잠실 안에 들으면 누에가 뽕을 먹는 소리가 꼭 소나기 쏟아지는 소리로 들려요."

요즈음 치는 누에는 고치를 생산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모두 약재를 만들기 위하여 잠업을 하는 것이란다.
요즈음 치는 누에는 고치를 생산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모두 약재를 만들기 위하여 잠업을 하는 것이란다. ⓒ 서종규
- 그럼 언제 누에고치가 되어서 수확을 하는가요?
"요즈음은 누에고치를 생산하지 않아요. 누에가 5영에 들어 3일이 지나면 그대로 말려서 약재로 판매를 한답니다. 알에서 부화하여 약 21일이 걸립니다. 요즈음 치는 누에는 고치를 생산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모두 약재를 만들기 위하여 잠업을 하는 것이지요."

- 그렇군요. 이 마을이 유명한 누에고치 생산지라고 들었는데요?
"내가 1963년부터 누에를 치기 시작했어요. 그 때만 해도 대단했지요. 저기 저 공장들 보이죠. 저 공장들 있는 곳까지 모두 뽕나무밭이었어요. 전국에서 뽕나무 단지로 대단했지요. 잠업의 선진지여서 전국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견학을 왔어요. 어쩔 때에는 대형버스 20여대까지 온 일이 있어요. 그런데 중국에서 실크가 수업되기 시작했어요. 누에고치 값이 떨어지더니 결국 수매도 그치고, 모두 망했지요. 어떤 집에서는 뽕나무를 뽑아내기 시작했고, 어떤 집에서는 그냥 저 혼자 자라도록 내버려두기도 하였지요."

바닥에는 석 잠을 자려는 누에에게 뽕잎을 주려고 그 부인 임영애(67세)씨가 열심히 뽕잎을 썰고 있었다.
바닥에는 석 잠을 자려는 누에에게 뽕잎을 주려고 그 부인 임영애(67세)씨가 열심히 뽕잎을 썰고 있었다. ⓒ 서종규
- 그런데 어르신은 지금까지 누에를 치고 계시네요?
"80 년대에 누에가 건강에 좋다는 소문이 퍼졌어요. 특히 당뇨에 특효약이라는 소문이 퍼졌지요.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누에를 찾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다시 우리 동네에서도 누에를 치기 시작했어요. 현재 우리 마을에서 약 20여 농가가 누에를 치고 있어요. 모두 누에를 말려서 약재로 팔고 있지요."

- 그럼 그때의 소득에 비하여 약재로 파는 지금의 소득은 어떠한가요?
"그때는 대단했어요. 모두 한몫씩 잡았지요. 지금은 약재로 파는 것이 그래도 나으니 억지로라도 누에농사를 지어야 하지요. 뽕나무밭 묵혀 놓는 것보다 더 나으니까요. 누에 한 상자를 치면 약 7kg 정도의 건누에를 생산해요. 1kg 당 5만 정도 하니 한 상자를 치면 35만원 정도 벌 수 있답니다. 1년에 봄누에와 가을누에 두 차례 누에를 치니 그런 대로 근근히 이어가고 있지요. 누에를 치지 않을 때에는 논농사도 짓고, 고추농사, 밭농사도 지어요. 그래도 누에고치로 팔 때가 좋았어요. 보람도 있었구요. 저 많은 뽕나무들을 파내 버릴 수도 없고, 또 마땅한 소득도 없으니 지금까지 43년 간을 누에를 치고 있는 셈이지요."

누에는 4영부터 성장이 눈에 띄게 빨라지는데, 4영에서 깨어나게 되면 그 크기가 훨씬 커진다.
누에는 4영부터 성장이 눈에 띄게 빨라지는데, 4영에서 깨어나게 되면 그 크기가 훨씬 커진다. ⓒ 서종규
- 요즈음 농촌의 생활은 좀 어떠신가요?
"말도 마세요. 요즈음 농촌에 가장 젊은이들은 60대에요. 그 아래 나이는 모두 도시로 나가서 제일 나이 어린 사람들이 60대이니 농사를 지을 수가 없어요. 여기저기서 농산물이 수입되고, 수입된 농산물은 모두 우리 것 보다 싸니 우리 것을 찾아야지요. 앞으로 어떻게 농업이 살아남을지 걱정이죠. 요즈음 FTA라는 말에 모두 화가 나 있어요. 그 양반들이 잘 살려고 하는 일이니 뭐라 말할 수 없지만 어찌 농촌을 희생양으로 만들려고 하는 지 통 모르겠네요. 우리 농촌 큰일났어요. 나라에서는 왜 자꾸 농민만 못 살게 만든대요?"

전북 정읍시 고부면 입석리 여기저기 많은 뽕나무밭에 탐스런 뽕나무잎들이 출렁거리고 있었다.
전북 정읍시 고부면 입석리 여기저기 많은 뽕나무밭에 탐스런 뽕나무잎들이 출렁거리고 있었다. ⓒ 서종규
- 그럼 누에를 계속 치는 것도 힘드시겠네요?
"그럼요. 한참 누에가 몸에 좋다니까 없어서 못 팔았는데, 요즈음은 팔려나가는 것도 시원치 않아요. 우리 마을은 모두 좋은 뽕나무에서 나는 뽕잎만 먹인 누에를 치고 있는데, 그것도 못 믿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아요. 누에가 당뇨에는 확실히 좋다는군요. 항암효과도 있대요. 기자양반 우리 동네 건누에 좀 팔아 주세요."

잠실 앞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 노용석씨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노용석 씨는 FTA라는 말을 하였다. 그 양반들이 잘 살려고 하는 일이니 뭐라 말할 수 없지만 어찌 농촌을 희생양으로 만들려고 하는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요즈음 농촌에서 60살 먹은 사람이 제일 어리다는 말보다도 앞으로 농촌이 어떻게 살겠냐는 반문이 눈가에 주름을 더 깊게 만들고 있었다.

어느 새 다가 온 부인 임영애씨는 누에를 길러서 고치를 생산하고, 그 고운 비단을 만들어야 하지만, 지금은 길러 놓은 누에가 약재로라도 잘 팔려 나갔으면 좋겠다고 한숨짓는다.

담배가 누에에게 해롭다고 잠실 앞에 나와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 노용석 씨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담배가 누에에게 해롭다고 잠실 앞에 나와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 노용석 씨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 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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