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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길 민주노동당 의원.
권영길 민주노동당 의원. ⓒ 오마이뉴스 이종호
선거라는 국면에서 모든 정당과 후보자들은 마치 거짓말대회 또는 부풀리기대회이기라도 하듯 유권자를 자기 쪽으로 이끌기 위해 편견과 어거지 논리를 함부로 퍼뜨렸다.

너나 할 것 없이 똑같았다. 자기에게 유리한 것만 침소봉대하여 그것이 전부인 것처럼 반복해서 떠들었다. 바로 몇년 전 그 반대의 논리를 가지고 열변을 토했던 자신의 모습을 의도적으로 망각한 것처럼 보였다.

이번 지방선거는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의 '피습강풍' 덕에 기우뚱하게 흘러갔고 2004년의 총선은 열린우리당이 노무현 대통령 '탄핵태풍' 덕을 톡톡히 봤다.

한나라당의 "무능정권 심판하자"는 선동은 "부패한 지방정권 심판하자"라고 바꿔놓으면 영락없는 자살골이다. 열린우리당의 "싹쓸이는 막아달라"는 주장도 한나라당이 2004년 총선에서 들고 나왔던 '1당 독재 견제론'을 떠올리면 무단도용에 가까운 닮은꼴이다.

이런 점에서 이번 5·31 선거에서 가장 압권은 민주노동당이다. 지난 5월 28일. 민주노동당의 얼굴격인 권영길 의원은 해서는 안 될 말을 했다. "열린우리당 찍으면 사표다, 열린우리당은 선거 끝나면 깨질 정당이다"고 말했던 것이다.

그 보도를 접하고 나는 가슴이 와르르 했다. 그동안 민주노동당이 이른 바 '사표 심리'에 얼마나 시달렸고 '선거 끝나면 등록취소 될 정당'이라는 말에 얼마나 가슴에 멍이 들었는데 내 가슴에 박힌 대못을 남에게 박다니.

이때 나는 아름다운 꿈을 하나 꾸었다. 쓰라린 가슴에 꽃을 하나 피워봤다.

서울시장에 입후보한 민주노동당의 김종철 후보가 29일 서울시청 기자실에서 긴급기자회견을 열어 열린우리당에 정식으로 사과했다. 김 후보는 전날 자당의 한 의원이 열린우리당을 빗대 '선거 끝나면 깨질 정당'이라고 한 발언에 대해 대신 사과한다면서 "유권자의 한 표는 누구에게 던진 표든지 다 천금과도 같은 귀중한 민심의 표현이며 사표라는 것은 없다"고 말했다. 아울러 모든 유권자들이 소신에 따라 투표해 줄 것을 당부했다. 그는 붓뚜껑을 쥐고 유권자가 겪을 고심과 갈등에 진심으로 경의를 표한다고 덧붙였다.

나의 꿈은 TV의 후보자 토론회를 시청하면서도 계속되었다.

토론의 진행자가 각 후보에게 인간적인 약점을 물었고 후보들은 다투어 자기의 신체적, 또는 성격상의 약점을 소개하면서 부끄러워하는 모습이었다. '참신하고 획기적인 상대 후보의 정책공약 칭찬하기'도 토론 순서에 있었다. 또 '자신의 공약 중에서 가장 실현성이 낮다고 평가되는 공약 하나씩 소개하기'도 했다. 당선되면 꼭 해내고야 말겠다는 것을 가지고 후보끼리 논쟁도 있었지만, 절대 하지 않겠다는 것을 공개적으로 천명하는 순서에서는 후보자들이 자필 서명을 했다.

서로 칭찬하고 스스로 반성하는 토론을 기대한다

임종인 열린우리당 의원, 천영세 민주노동당 의원은 문정현 신부를 비롯한 사제단 신부들과 함께 지난 5월 4일 대추분교 옥상에서 농성을 벌였다.
임종인 열린우리당 의원, 천영세 민주노동당 의원은 문정현 신부를 비롯한 사제단 신부들과 함께 지난 5월 4일 대추분교 옥상에서 농성을 벌였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나는 당원으로서의 도리를 다 하고자 민주노동당 후보가 우리 면에 왔을 때 시골동네 구석구석을 함께 다니며 유세를 했다. 유세차량 밖으로 담배꽁초를 휙휙 내던지는 운동원을 보고 기겁을 하면서 야단을 치기도 했고, 선거날은 참관인으로 12시간을 투표소에서 보냈다.

선거기간 동안 내 눈에 띈 불법선거운동을 하는 후보는 모두 선관위에 신고했다. 신고당한 어떤 후보는 다음날 씩씩대며 산골의 우리 집을 찾아왔고 나는 선관위에 이를 항의했다.

'능력'보다는 '겸손과 성찰'이 몇배 더 소중한 지도자의 덕목임을 말하고 싶다. 선거에서 당선이라는 목표는 항상 인격과 양심에 앞선다. 그래서 정치인의 변절은 인간적 결함 때문이 아니라 권력의 속성에서 비롯된다. 권력에 다가갈수록 희열과 오만이 아니라 두려움에 머뭇거리는 그런 정치인, 그런 선거는 볼 수 없을까?

부패한 정치인이 남의 정당 소속이라고 해서 비웃고 욕하기보다 도리어 자신의 옷 가짐을 바르게 가다듬을 줄 아는 정치풍토를 꿈꾼다.

어지러운 우리 정치판에 한나라당의 고진화나 열린우리당의 임종인과 같은 '왕따' 국회의원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평택 대추리의 무너지는 농심 속에서 민주노동당의 천영세 의원과 함께 홀연히 버티고 앉아있던 임종인 의원은 참 보기 좋았다.

민주노동당에서도 가끔씩 당론에 반기를 들고 양심의 지시에 따라 당과 권력을 비웃는 왕따가 나타나면 숨통이 좀 트이겠다. 내 꿈은 예나 지금이나 이렇게 비현실적이다. 비현실적이지 않은 것은 꿈이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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