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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중고장터에서 5만원을 주고 구입한 '올림푸스 35DC'. 1971년 부터 생산되었으니 꽤 나이를 먹은 카메라다.
인터넷 중고장터에서 5만원을 주고 구입한 '올림푸스 35DC'. 1971년 부터 생산되었으니 꽤 나이를 먹은 카메라다. ⓒ 조경국
"아싸~~ 떴따~~아!"

뭐가 떴냐고? 중고장터에 '올림푸스 35DC'가 떴다. 자주 인터넷 중고장터를 들락날락 하지만 원하는 카메라는 딱 마주치기란 정말 힘들다. 남들이 먼저 예약 댓글을 달까봐 부리나케 글을 남기고 쪽지를 보낸다. 그리고 전화 연락을 한다. 외관은 깔끔한지, 렌즈와 셔터막에 상처는 없는지, 렌즈캡과 스트랩(어깨끈) 등 액세서리는 모두 있는지. 계좌번호와 주소를 주고 받고 구입하기로 결정한다.

소포 박스를 받는 순간까지 인터넷으로 과연 올 녀석이 어떤 성능을 가졌는지 다시 한 번 자료를 찾아본다. 아무리 생각해도 디자인과 성능에 비해 가격이 저렴한 것 같다. 1971년부터 생산되기 시작한 이 '똑딱이' 카메라의 값은 단돈 5만원. 택배비까지 포함하면 5만3천원이 든 셈이다.

이 카메라를 들고 아이들 앞에서 얄랑대면 아내는 또 "질렀냐"며 구박할 게 뻔하지만 이 순간만큼은 무조건 '삼불(三不)'해야한다. (아내와) 눈 마주치지 말고, (가격을) 말하지 말고, (다시 카메라 사지 않겠다) 약속하지 말라.

올림푸스 35DC로 촬영한 아이 사진. 코닥 TMX 400 흑백필름을 현상해 디카로 접사했다. 오래된 필름 카메라는 디카와는 또다른 재미를 선사해준다.
올림푸스 35DC로 촬영한 아이 사진. 코닥 TMX 400 흑백필름을 현상해 디카로 접사했다. 오래된 필름 카메라는 디카와는 또다른 재미를 선사해준다. ⓒ 조경국
이틀 뒤 드디어 '아기다리고기다리던' 카메라가 도착했다. 냄새부터 다르다. 오래된 카메라에는 뭔가 다른 냄새가 난다. 미끈미끈한 플라스틱 냄새가 아니라, 끈적끈적한 기름 냄새, 아니 끈적한 사람냄새가 난다. 누군가의 손때가 묻은 오래된 카메라를 손에 쥔다는 것은 매번 색다른 느낌이다. 그동안 이 카메라를 어루만졌던 이들의 체취가 손끝에서 전해져 온다.

그들은 지금은 뿌옇게 변해버린 파인더에 눈을 대고 사랑하는 아이와 아내, 멋진 풍경, 소소한 일상사를 바라보며 셔터를 눌렀을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의 손에 쥐어져 있었던 그 카메라가 어느 순간 자동카메라와 디지털카메라에 자리를 내어주고 이리저리 떠돌다 결국 나의 손에 싼값에 팔려온 것이다.

얼마나 많은 추억이 이 카메라의 렌즈와 셔터막 통과해 필름에 맺혔을까. 그것은 단돈 5만원이란 값으로 그 가치를 매길 수 없다. 낡은 카메라는 단순히 '찍는 도구'가 아니다. 적어도 나에겐 낡은 카메라는 세상을 진지하게 바라볼 수 있는 '창'이다. 닦고 조이고, 필름을 감아 넣고, 현상을 하고, 사진을 뽑는 그 과정엔 범람하는 디지털 이미지에서 찾아 볼 수 없는 정감이 남아있다.

낡은 카메라엔 끈적한 사람냄새가...

낡은 필름 카메라를 좋아하는 사진가들의 '오감'을 자극하고 '지름신'을 강림케 할 책이 한 권 나왔다. <낡은 카메라를 들고 떠나다 2>(이하 <낡카 2>). 형 만한 아우없다는 속설을 뒤집고, 한층 업그레이드된 사진과 글(절대 첫 번째 권이 좋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아니다)로 찾아왔다.

2004년에 출간됐던 전작 <낡은 카메라를 들고 떠나다>(이하 <낡카 1>)가 성공을 거두지 못했더라면 아마 빛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낡은 카메라를 찾아 헤매는 사진가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아 극심한 출판계의 불황에도 불구하고 4쇄까지 찍는 기염을 토했다.

역시 디카에 밀리긴 했지만 필름카메라가가 잊혀진 퇴물은 아니었던 셈이다. 아마 <낡카 2>를 본 독자들은 <낡카 1>을 분명 찾을 것이고, <낡카 1>을 읽었던 골수팬들은 벌써 <낡카 2>를 보고 있을 터이니 이번 책도 4쇄 정도는 너끈히 넘기지 않을까 싶다. 사진가 이상엽씨가 쓴 <낡카 2> 프롤로그 중 일부를 옮겨본다.

1편의 성공에 힘입어 2년 만에 후속편으로 출간된 <낡은 카메라를 들고 떠나다 2> 겉표지.
1편의 성공에 힘입어 2년 만에 후속편으로 출간된 <낡은 카메라를 들고 떠나다 2> 겉표지. ⓒ 청어람미디어
"디지털 카메라 사용자에 비한다면 정말 소수에 지나지 않겠지만 요즘은 디지털 카메라로 입문해 필름 카메라 한 대쯤은 서브로 장만한 사람도 많다.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필름 카메라 사용자는 상대적으로만 적어 보일 뿐 절대치로 본다면 수년 전에 비해 늘어난 느낌이다. 디지털 카메라가 사진에 관심 있는 사람들을 어마어마하게 늘려놓았기 때문이다. 그 덕분에 <낡은 카메라를 들고 떠나다>는 꾸준하게 사랑을 받아 4쇄까지 발행할 수 있었다."


자~ 그럼 <낡카 2> 소개된 늙수그레한 카메라들을 살펴보자. 사진가들의 영원한 로망 '라이카 M6'와 '라이카 IIIf', 1980년대 사우디로 일하러 갔던 건설 노동자들이 많이 사가지고 들어와 카메라 대중화에 앞장선 '펜탁스 ME', 정방형 사진의 매력을 고스란히 전해주는 중형카메라의 '핫셀블라드 500CM'과 '마미야 6', 구소련에서 나온 걸물 '페드 1' 등등등. 필름 카메라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한 번쯤 써보았거나 써보고 싶은 카메라들이다.

아마 벌써 탐독을 한 '낡카' 마니아라면 여기저기 온라인 카메라 중고장터에 이 카메라들이 나왔는지, 시세는 어떤지 알아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혹시 운 좋게 <낡카>에서 점찍었던 카메라가 장터에 나왔다면 주머니 사정 염두에 두지 않고 과감하게 '질렀을지도'. <낡카>를 읽은 직후 이거나 읽는 중이라면 바로 장터를 들락거리면 안 된다.

지름신이 강림했을 가능성이 높고 이 상태에선 이성적인 소비는 '절대 불가능'하다. 잘못 지르기라도 한다면 한 달 동안(카메라의 가격이나 재정상태에 따라선 더 길 수도 있겠다) 손가락 빨고 지낼 수도 있다.

사진가의 로망, '라이카 M6'부터 구소련 '페드 1'까지

'염불보다 잿밥, 사진보다 카메라'라는 표현이 알맞은 '장비병'을 이겨내지 못하는 아마추어 사진가이긴 해도, 그 병을 앓는 것이 즐겁다. 고치지 못할 바에야 즐기기로 마음먹은 지 오래다. 물론 병이 심할수록 주머니 사정이 아주 곤란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낡카와 밀고 당기기를 한지도 꽤 시간이 지나 어느 정도 카메라 보는 눈썰미가 생겼다는 것이 그나마 위안을 삼을 일이다.

사진은 늘지 않고 카메라 보는 눈썰미만 업그레이드시키고 있는 나 같은 장비병 환자를 위해 <낡카> 저자 중 한사람인 노순택씨(그는 얼마 전 평택 미군기지 확장 문제를 다룬 '얄읏한 공'이라는 사진전을 열었었다)가 쓴 글은 가슴을 콕 찌른다.

초판 매진된 성남훈씨의 사진집 <유민의 땅>. 불황에 허덕이고 있는 출판계에선 이례적인 일이다.
초판 매진된 성남훈씨의 사진집 <유민의 땅>. 불황에 허덕이고 있는 출판계에선 이례적인 일이다. ⓒ 눈빛
"사진기계 중독자들은 있지만 사진집 중독자는 없거나 적고, 장비 편력기는 넘쳐나지만, 사진책 편력기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찾을 수가 없는 현상을 뭐라고 진단해야 할까? (중략) 현대미술에서 사진은 가장 뜨거운 조명을 받고 있다. 토마스 루프와 안드레아스 거스키, 토마스 스트루스의 사진값이 왜 수억 원에 거래되고 있는지. 이갑철과 배병우와 아타김의 사진이 어떤 이유로 각광을 받고 있는지 사진기계는 설명할 수 없다. 명색이 사진 장비병이 걸린 사람이라면, 강운구 사진집 한 권쯤은 갖추는 게 상식처럼 통하는 날을 기대해본다."

그래도 희망은 보인다. 2005년 12월 출간된 사진가 성남훈(그도 <낡카> 저자 중 한명이다)의 다큐 사진집 <유민의 땅> 초판 1000부가 모두 매진되었다는 소식이 지난 5월 국내 사진계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불황에 시달리고 있는 출판시장에서 '5만원'이나 하는 비싼 책이, 그것도 전혀 팔릴 것 같지 않은 사진집이 그렇게 빨리 매진됐다는 것은 분명 일대 사건이다.

1996년 출간된 성남훈씨의 첫 사진집 <소록도> 초판본을 얼마 전까지 교보문고에서 구입할 수 있었다는 사실(표지가 너덜너덜해진 것을 기자가 구입했다)과 비교해 본다면, 1996년과 2006년 그 10년 사이에 사진도 돈이 될 수 있는 규모의 시장이 만들어진 것이다. <유민의 땅> 뿐 아니라 <낡카>도 그 규모의 시장에 들어가는 상품 중 하나다. 마음 같아선 <낡카>가 세상 모든 필름 카메라를 총망라해 실릴 수 있도록 오랫동안 독자들에게 사랑받는 시리즈물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낡카 2>를 덮고 나니 몸이 근질근질하다. 역시 사진가는 아마추어라 할지라도 '필드'에서 놀아야하는 법이다. 솔직히 이야기 하자면 <낡카 2>가 아무리 재밌다 할지라도 골목길 어귀에서 낡은 필름 카메라를 들고 셔터를 누르는 재미가 '훠~얼씬' 더 크다.

덧붙이는 글 | * 낡은 카메라에 대한 이야기를 더 듣고 싶다면. <낡카> 저자들이 둥지를 틀고 있는 이미지프레스(www.imagepress.net)을 방문하면 된다.


낡은 카메라를 들고 떠나다 2 - 단순하고 아름다운 시선, 필름 카메라

이미지프레스 글.사진, 청어람미디어(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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